김태원
김태원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을만한 질문을 던졌다. “역대 부활 보컬리스트들의 특징을 말해 달라!” 부활을 거쳐 간 보컬리스트는 초기에 잠시 머물렀던 김종서를 포함시키면 이승철, 김재기, 김재희, 박완규, 김기연, 이성욱, 정단, 정동하까지 무려 아홉 명. 멤버교체가 많았던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도 많다. 김태원은 뜸들이지 않고 각 보컬리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말해줬다.

1.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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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요. 창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그 자체로써 말이죠.”

이승철은 부활의 1집 ‘Rock Will Never Die’(1986), 2집 ‘Remember’(1987)에 참여하며 80년대 후반 부활을 대중적인 인기를 가능케 했다. 김태원의 말처럼 이승철은 음색 자체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거기에 곱상한 외모까지 겸비하면서 당시 여성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승철 재적 당시 부활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았다는 것이 김태원의 회상. 김태원과 이승철이 록발라드에서 이룬 궁합은 한국 록 역사에서 군계일학이라 할 만큼 찬란한 순간이었다.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이승철의 노래와 김태원의 노래가 겹쳐지는 순간은 단연 백미. 참고로 부활을 상징하는 곡 ‘희야’는 김태원이 아닌 양홍섭이 만든 노래다. 김태원은 원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타이틀곡으로 염두에 뒀으나 대중성을 고려해 외부 작곡가에게 곡을 받았다. 지금은 부활도, 이승철도 각자의 콘서트 하이라이트에 ‘희야’를 노래한다.

2.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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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는 보컬로서 재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나죠. 제 성격상 분석을 다 마쳐야 평가를 하는데, 김재기는 제가 아직 그 진가를 전부 확인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예요. ‘삼국지’로 치면 관운장과 같이 전설이 된 존재라고 할까? 그의 동생 김재희 역시 아직 자신의 목소리만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어요.”

김재기는 부활의 3집 ‘기억상실’(1993)에 참여하면서 부활의 극적인 ‘부활’을 이끌었다. 이승철이 밴드를 나가고 오랜 ‘방랑기’를 보낸 김태원은 김재기의 보컬에 반해 부활에 들어올 것을 직접 권유했다. 김태원은 김재기가 나자레스의 노래 ‘Love Hurts’의 고음부를 기막히게 소화하는 것을 보고 매료됐다고 한다. ‘사랑할수록’이 담긴 3집은 당시에만 12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부활 역대 앨범 중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1993년 당시 길거리에서 복사 테이프를 판매하는 가판대마다 이 노래가 흘러나왔으니 불법복제 음반 판매까지 추산하면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기는 레코딩 후 비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친동생 김재희가 무대에서 형의 노래를 대신 불렀다.

3. 박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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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목소리에 소울(영혼)이 있죠. 박완규는 자신의 소울을 자기가 직접 건드리면서 노래를 하는 보컬이에요. 흔히 그것을 진정성이라고들 말하죠. 때문에 박완규의 목소리는 처절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박완규는 5집 ‘불의 발견’(1997) 단 한 장에 참여했지만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활은 김태원이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평하는 4집 ‘잡념의 관하여’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며 다시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Lonely Night’가 히트하면서 다시금 부활의 물꼬를 트게 된다. 이 곡은 낚시광인 김태원이 낚시터에서 만든 곡이다. 박완규는 부활 역대 보컬리스트 중 가장 파워풀하고 하이 톤의 노래를 들려줬다. 이승철이 ‘네버 엔딩 스토리’로 다시 부활에 복귀했을 당시 공연을 할 때 박완규의 레퍼토리는 피해갈 정도였다고. 김태원은 박완규의 대단한 가창력에 자극을 받아 난이도 높은 음악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의 발견’에는 부활 앨범 중 단연 깔끔하고 정교한 연주가 담겼다.

4. 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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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단은 앨범을 녹음 당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나 노래를 잘 할 수 있지?”라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 보컬리스트예요. 가히 노래 교과서, 노래의 신이라고 할 만하죠.”

정단은 부활의 9집 ‘Over The Rainbow’(2003)에 참여했다. 부활 역대 보컬리스트들 중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테크닉 등 실력 면에서는 단연 최고로 평가받았다. 전작인 8집이 이승철이 복귀한 8집 ‘새, 벽’이었다. 정단의 부담감은 상당했을 터. 하지만 그는 선배들에게 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다. 정단이 노래한 ‘아름다운 사실’은 부활의 역대 록발라드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 이 곡에서 정단은 발성, 호흡, 고음, 음을 끄는 길이 등에 있어서 완벽한 노래를 들려준다. 정단은 올해 초 솔로 3집 ‘내 마음이 그래’를 발표하며 건재한 실력을 과시했다.

5. 정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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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하는 부활의 최장수 보컬리스트로서 긴 시간의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의 예를 가장 정확히 보여줬어요. 대개 보컬들을 보면 굴곡이 심하거나 초반에 잘 되지 못하면 중간에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죠. 동하는 음악에 대한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드디어 진가를 알리게 됐어요. 보컬리스트들이 하루아침에 뜨고 사라지는 요즘 같은 때에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본보기예요.”

정동하는 10집 ‘서정’(2005)부터 13집 ‘Purple Wave’(2012)까지 넉 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작업한 부활의 유일무이한 최장수 보컬리스트다. 최근에는 ‘불후의 명곡’에서 맹활약하고 인기 뮤지컬의 주연을 꿰차면서 김태원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로 스타 보컬리스트로 성장했다. 정동하는 이승철, 김재기, 박완규 등 선배들이 보여준 시원하고 카랑카랑한 쇳소리 보컬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탁한 음색을 지녔다. 초기에는 여기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으나 결국 자신의 스타일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또 한 명의 대표적인 부활 보컬리스트로 우뚝 섰다.

김태원이 자동차로 이동 중에 작곡용으로 사용하는 통기타
김태원이 자동차로 이동 중에 작곡용으로 사용하는 통기타
김태원이 자동차로 이동 중에 작곡용으로 사용하는 통기타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와 같은 곡들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록발라드로 남았다. 앞으로도 그런 곡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김태원도 동의했다. “그것은 추억에 비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에 음악의 진화를 단순히 기술력의 발달로 결정한다면 과거의 음악은 다 없어져야 할 거예요. 그런데 옛날 곡들이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멜로디, 아름다움의 극이 나와도 옛 노래에 이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추억이 아닐까요?”

부활은 개천절인 10월 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콘서트를 갖는다. 공연에서 부활은 주옥과 같은 히트곡들을 비롯해 정동하가 ‘불후의 명곡’과 뮤지컬에서 선보인 노래들을 함께 선사할 예정이다.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부활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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