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980년대 헤비메탈 3대 기타리스트, 한국 최고의 록발라드 작곡가, 그리고 예능 늦둥이. 김태원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최근 TV에서의 이미지와 다르게 김태원은 1980년대 후반 팀 내에서 리더로서 매우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김종서, 이태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 쟁쟁한 이들이 함께 했던 부활의 전신 ‘디 엔드’(The End)에서 음악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살벌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고. 이후 김태원은 이승철 탈퇴 후 오랜 ‘방랑기’(이제 누구나 아는 ‘흑역사’, 김태원은 ‘방황’이 아닌 ‘방랑’이라고 표현했다)를 거친 후 1993년 ‘사랑할수록’으로 다시 돌아올 때 한결 부드럽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사람이 돼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김태원은 약 20년 후 TV에서 예능 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더구나 부활로 13집까지 내고 미국, 중국 투어를 다니는 모습은 말이다.김태원에 이어 요새는 정동하도 인기가 많아졌다.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태원에게, “부활은 지금 ‘제2의 전성기가 아니냐’”고 말하자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가장 높이 비상하고 있다. 더 높이 난 적이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사실 부활은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히트한 초기 시절에는 지금의 아이돌그룹과 같은 스타였다. 앨범도 수십만 장 씩 팔았다. 사실, 그때가 지금보다 더 록 스타가 아니었나?
“그건 의미가 다른 거예요. 1980년대에는 우리가 지금 아이돌 가수들처럼 나이가 어렸으니까. 지금 우리 평균연령이 예능으로 치면 ‘남자의 자격’ 정도인데 아직도 큰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이것은 1980~90년대 내가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위치인 거죠. 1986년에 ‘희야’, 1993년 ‘사랑할수록’, 2002년 ‘네버 엔딩 스토리’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올해처럼 해외에서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하지는 못했어요. 부활은 지금 가장 높이 날고 있습니다. 아티스트는 종이비행기처럼 혼자서는 날 수 없거든요. 팬들이 우리를 높이 날려준 것이지요.”
김태원은 작년에 나온 13집 ‘Purple Wave’를 냈을 때 “20대로 돌아간 것 같다. 더불어 1980년대에 연애를 했을 때처럼 진취적인 몸 상태”라고 말했다. 대중의 사랑 덕분이었다. “우리가 사랑을 받으면서 새 앨범을 만든 지가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작가로서 새 앨범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큰 기대를 받은 적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요.”
‘Purple Wave’에는 김태원의 오랜 숙원이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편곡한 연주곡 ‘부활’도 수록됐다. 대중들은 ‘희야’, ‘사랑할수록’과 같은 록발라드를 좋아하지만 사실 부활은 장대한 스케일을 가진 아트 록 성향의 곡들을 때때로 만들어 넣었다. 이는 김태원의 클래식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클래식과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을 함께 좋아했다고 한다.
“클래식에 관심이 많아진 이유는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어요. 영화에서 감동을 주는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늘 음악이 흐르는 거야. 장면에 음악이 겹쳐지지 않으면 눈물이 흐르지 않는 거지. 제가 그걸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현악 위주의 오케스트레이션 음악에 심취했죠. 클래식은 가사가 없어서 듣는 이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그런 음악들과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록을 함께 좋아했고, 레드 제플린 존 보냄의 드럼 소리를 들으면서 록의 리듬에 더욱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김태원은 고(故) 김재기의 동생 김재희가 보컬로 나선 4집 ‘잡념에 관하여’에서 실험적인 아트 록 앨범을 만들어보려 했다. 100만 장이 넘게 나간 3집 ‘기억상실’에서 번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돌아온 것은 흥행 참패. “김재희가 함께 했던 4집은 저 개인적으로 부활의 앨범 중 가장 자신이 있는 명반으로 꼽아요.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죠. 난해한 앨범이라고요? 제가 좀 난해한 사람이에요. 대중의 눈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부 쏟아 부은 앨범이에요.”
김태원이 자동차로 이동 중에 작곡용으로 사용하는 통기타
김태원이 타고 온 자동차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통기타 한 대가 있다. 김태원이 이동 중에 작곡용으로 쓰는 기타라고 한다. “내 직업이 작곡가니까. 평소에는 혼자서 가만히 앉아 곡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아요. 방송도 하고, 공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니까. 그러다가 차 앞자리에 앉으면 비로소 혼자가 되죠. 매니저가 운전을 하면 눈앞에는 풍경만 지나가는데, 그 시간이 작곡을 하기 딱 좋은 시간이에요.”김태원이 다른 음악을 아예 듣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 그래서일까? 부활의 노래에는 확실히 김태원의 개성이 배어있다. 그는 국내 록계에서 대중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시킨 몇 안 되는 작곡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80년대 LA메탈, 하드록까지는 들었어요. 1990년대 들어오면서 다른 뮤지션 음악을 안 듣게 됐어요. 그렇다고 클래식을 듣는 것은 아니고, 음악 자체를 아예 안 듣는다. 부활 노래도 안 들으니까. 이동 중에도 차에서 음악을 트는 법이 없어요.”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와 같은 곡들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록발라드가 됐다. 앞으로도 그런 곡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김태원도 동의했다. “그것은 추억에 비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에 음악의 진화를 단순히 기술력의 발달로 결정한다면 과거의 음악은 다 없어져야 할 거예요. 그런데 옛날 곡들이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멜로디, 아름다움의 극이 나와도 옛 노래에 이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추억이 아닐까요?”
김태원은 오랜만에 등장한 부활의 스타 보컬리스트 정동하에 대한 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정동하는 부활의 역대 가장 최장수 보컬리스트로서 긴 시간의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의 예를 가장 정확히 보여줬어요. 대개 보컬들을 보면 굴곡이 심하거나 초반에 잘 되지 못하면 중간에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죠. 정동하는 음악에 대한 일념으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드디어 진가를 알리게 됐어요. 4~5년 전쯤에는 정동하의 탁한 음색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동하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고유의 목소리로 노력해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버렸죠. 보컬리스트들이 하루아침에 뜨고 사라지는 요즘 같은 때에 정동하는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본보기예요.”
부활은 개천절인 10월 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콘서트를 연다.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부활. 30주년 계획을 묻자 그는 ‘김재기 가요제’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올해 고(故) 김재기의 20주기를 맞아 ‘김재기 가요제’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부활 30주년에는 김재기를 기리고 후배 록 보컬리스트들을 발굴하는 의미에서 ‘김재기 가요제’를 꼭 개최하고 싶어요. ‘유재하 가요제’처럼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부활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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