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건우를 연기하는 옥택연

옥택연. 아이돌그룹 2PM의 멤버 택연은 무대 위에서 예외 없이 섹시하다. 짐승돌이라는 표현은 애당초 그를 위한 것이었으니. 그런 옥택연이 브라운관에서 만큼은 좀처럼 섹시한 자신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꺼내놓은 것은 마냥 사람 좋을 것만 같은 해사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보통의 청년.

우리로서는 행복한 일이다. 무대 위 카리스마와는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한없이 다정하며 때로는 귀여운 고집불통의 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일관된 작품 선택 방식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이미 검증된 아이돌스타의 화려한 이미지를 등에 업지 않고 그의 진실한 노력만으로 진정한 배우가 되고자하는 욕심이 바로 그것이다. 꿈에 근접하기 위한 그의 성실한 태도를 설명하는 근거도 된다.

현재 출연 중인 케이블채널 tvN 월화드라마 ‘후아유’ 역시도 이런 선택의 결과물이다. 욱하는 성미 탓에 형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뭉치가 돼버린 경찰청 유실물센터 차건우 경장으로 살아가는 옥택연에게서 무대 위의 거친 카리스마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 스스로는 훗날 내 첫 주연작으로 기록될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이 큰 작품이다.

어쩌면 안정적으로 아이돌스타로서의 이미지를 이용할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지없이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차건우를 그의 첫 주연 캐릭터로 맞은 이유를 따라 가보았다.

경기도 파주시 하지석동의 ‘후아유’ 세트장은 음습한 분위기다. 유령을 보는 여인 시온(소이현)과 평범하지만 재능 있는 건우가 살인사건을 추적해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는 드라마의 내용과 어울린는 그런. 세트 전체에 울려퍼지는 조현탁 PD의 ‘액션!’ 싸인만 터지면, 모두가 숨을 죽이며 배우들을 바라본다. 분위기는 진지하고 무겁다.

그러나 ‘컷!’ 사인과 함께 다시 온기가 돈다. 분위기 메이커는 단연, 옥택연. 어쩌면 누구도 그에게 요구하지 않은 역할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돌스타로는 데뷔 5년. 셀 수없이 많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뜨고 지는 가요계에서 그도 제법 선배 뻘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드라마 현장에서는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촬영 틈틈이 조현탁 PD의 상황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오밀조밀 이야기 하고, 다른 배우와의 액션 리액션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며 차건우의 삶에 자연스럽게 밀착해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보이는 얼굴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모든 태도에 면밀하게 신경을 써야하는 신인배우 못지않다.

배우로 성장해가고 싶다는 꿈을 말해오던 옥택연은 현장에서도 그의 꿈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곳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연기자로서의 기량을 기르고 있었다. 타고난 성품과 밝은 에너지도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차곡차곡 또 다른 꿈을 다져가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노크했다.

Q. 매 신마다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이래서 당신이 아이돌스타로서도 정상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옥택연 : 에이, 아니에요(그는 큰 손을 번쩍 들어 손사래를 치더니, 쑥스러움을 가리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며 미소를 지었다).

Q. 오늘이 5회분 촬영인데, 차츰차츰 차건우가 되어가는 과정은 어떤가요?
옥택연 :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1~2회 모니터를 해보니 제가 얼마나 긴장했었던지 다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는 풀렸어요. 감독님이 해주신 말씀 때문이었죠.

Q. 조현탁 PD님이요? 어떤 말씀을 해주셨어요?
옥택연 : ‘촬영 나갈 때 재미있니?’라고 물어보셨어요. 전 ‘아직 재미는 모르겠고 긴장이 돼요’라고 답했죠. 감독님은 ‘생각해보렴. 얼마나 재미있어? 연기라는 것은 한없이 풀어져 있다가도 액션 사인과 함께 집중하는 작업이잖아. 그러다 다시 컷을 하면 풀어지면 되고. 그런 풀렸다 돌아왔다의 매력을 잘 생각해봐’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나도 풀어지는 느낌을 느껴도 되겠구나, 내가 계속 긴장만 한다고 해서 더 잘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Q. 다정한 격려였군요.
옥택연 : 네.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옥택연

Q. 같이 연기하는 소이현 씨가 방금 증언을 해줬어요. 현장에서의 옥택연은 “호흡이 너무나 잘 맞는데다 너무나 밝아 현장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친구”라고 말하더라고요.
옥택연 :
아이고. 누나가 워낙에 잘 리드해줘서요. 누나도 이제 거의 데뷔 10년차에요. 작품만 20개째고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게 이것저것 알려줄 때도 있고, 도움을 굉장히 많이 주세요. 전 넙죽 넙죽 받아갈 뿐이죠.

Q. 차건우라는 인물, 연기하기에 앞서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밑그림을 그렸었나요?
옥택연 : 처음에는 1회와 2회, 그리고 시놉시스 정도만 볼 수 있었어요. 읽으면서 캐릭터 성격부터 밑그림을 그렸죠. 다혈질에다 다시 강력반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야망, 욕망, 갈망이 있는 그런 캐릭터에요. 그런데 시온 팀장을 만나 그 기대가 꺾이기 시작하죠. 업 앤 다운이 큰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감정의 온도차를 잡아가는 것에 신경을 썼어요.

Q.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이죠. 지금까지 택연 씨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은 한결같아요. 무대 위 강렬한 짐승돌 이미지, 남성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공통점 때문에요. 일부러 이런 일관된 선택을 하는 건가요?
옥택연 :
네.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해왔어요. 만약에 연기를 하면서도 짐승돌, 강렬함, 남성적인 이미지를 고집했더라면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는 국한돼있었을 거예요. ‘신데렐라 언니’ 때에도 순정남 캐릭터를 택했는데, 물론 작가님과 감독님이 잘 만들어주신 탓이 가장 크지만 저 역시도 무대에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Q. ‘후아유’는 택연 씨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고요. 배우로서의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점이 있다면 자세히 설명 해주세요.
옥택연 :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제가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신데렐라 언니’의 경우, 소속사 사장님이 이거 해야한다고 했던 경우였죠. 지금은 저의 의견이 반영이 되는데, 첫 번째는 내용이 재미있냐이고, 두 번째는 내가 맡게 될 역할이 어떤 인물인지에요. 그리고 세 번째로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역시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지금까지 택연 씨가 연기한 캐릭터 중 실제 택연 씨와 가장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옥택연 : ‘결혼전야’라는 영화에서 원철이라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소심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에 표현을 잘 못하는 그런 캐릭터에요. 그가 저와 가장 닮았어요.

‘후아유’ 현장에서 만난 택연

Q. 의외네요. 굉장히 밝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옥택연 : 저 소심해요. 하하.

Q. 참, 드라마 초반에 굉장히 재미있었던 대목이 의경인 성찬(노영학)이 가수 연습생 출신이라고 하니 건우가 ‘아이고, 이거 완전히 인생 띄엄띄엄 살다온 놈이구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실제로 연습생 출신인 택연 씨는 어떤 기분으로 이 대사를 했을까라는 궁금증도 들고. 실제로 연습생은 띄엄띄엄 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데 말이죠.
옥택연 :
그렇죠. 연습생들 절대 띄엄띄엄 안 살죠(웃음). 그렇지만 잘 모르는 분들이 보시기엔 가수 하겠다 하면 또 그렇게 보시기도 하니까요. 그 대사 자체를 흥미로웠어요. 제 자신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고.

Q. 함께 ‘드림하이’에 출연했던 수지(미쓰에이)나 김수현 씨는 지금 모두 배우로 대세가 되어 있어요. 혹시 조급해지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을까요.
옥택연 :
자극은 항상 되죠. 그렇지만 나보다 더 잘 됐으니 나도 조바심이 들어 빨리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아니에요. 내가 있는 위치는 여기이고, 더 열심히 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죠. 차인표 선배님이 방송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도 있고, 저런 연기를 하는 배우도 있다라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대세가 되어야지’가 제 배우로서의 목표가 아니라, ‘내 갈 길을 잘 밟아가야지’가 제 목표이니까요.

Q. 멤버들끼리는 아무래도 경쟁보다는 서로 응원하는 관계겠죠? 어쩌면 너무 가까운 사이라 연기 이야기는 안할 것 같기도 하고, 어떤가요?
옥택연 : 맞아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일 이야기는 잘 하지 않죠. 하지만 지금 제가 맡은 역할이 워낙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다른데다, 주연이라 분량도 많아요. 부담이 커서 콘서트 할 때도 틈틈이 대본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럴 때 멤버들은 저와 같이 대본을 외워주곤 했어요. 캐릭터를 잡아갈 때도 감독님의 디렉션을 놓고 함께 고민도 해주기도 했고요.

Q.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줬나요?
옥택연 :
감독님이 ‘건우는 껄렁한 느낌이 있었으며 좋겠어’라고 하니, 우영이는 ‘껌을 씹어’라고 말해주는 식이죠. 그러면 발음이 잘 안될 텐데(웃음). 멤버들이 많이 도와줘요. 그 과정이 재미있고요.

‘후아유’ 현장에서 만난 택연

Q. 이번에 준호 씨는 영화 ‘감시자들’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또 찬성 씨도 꾸준히 연기에 도전하고 있죠. 멤버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옥택연 :
특별하게 다른 기분은 들지 않아요. 오글거리지도 않고요(웃음). 요즘은 한 명 한 명 각자의 기량을 펼쳐 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것이 솔로 앨범이 됐든, 연기가 됐든 우리는 다 걸음마 수준이에요. 일취월장을 바라는 마음도 아직은 어린 것 같고, 서로 격려하면서 다독이곤 하죠.

Q. 참, 극중 건우에 대한 설명에 의미심장한 것이 있었어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남자라는. 아직은 건우에게서 그런 사연을 눈치 채진 못하고 있는데, 힌트를 준다면요?
옥택연 :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라는 것이 현장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많아서 과연 건우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될까는 아직은 예상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큰 그림 속에 조금씩 그려질 것 같긴 해요. 그러니까 저도 잘 몰라서 힌트를 드리지 못하겠네요(웃음).

글, 편집.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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