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에 조금 늦어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오는 김수아 PD의 얼굴에서 세찬 활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요즘 핫한 예능 프로그램인 JTBC <썰전>의 연출자다. <썰전>을 두고, 여러 PD들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었다. 연출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연출자에게 어떤 의미일까.Q. <썰전>이 이렇게까지 잘 될 것이라 예상 했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겠다.
<썰전>이 방송을 시작한 지 100일이 조금 더 넘은 현재, 시청률을 떠나 체감 반응이 꽤 뜨겁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여러 여자PD들의 입을 통해 개방적인 방송계에서도 여자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는 점을 배웠고, 종합편성채널 JTBC로 이적해 개간하는 일 역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김구라와 강용석이라는 논란의 주인공을 과감히 선택해 호감도 높은 인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니 김수아 PD는 여러모로 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김수아PD : 젊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썰전>은 우리가 술 마시면서 혹은 카페에서 하는 이야기의 전문화된 버전이다. “요새 어떤 프로그램이 재미있더라”라던가, “만약 안철수로 단일화 됐다면 어땠을까” 등. 사적인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유독 TV 속에서만 하지 않았는데, <썰전>이 한 것이다. 반응은 미디어를 비롯, 업계 관계자들이 먼저 보였고, 첫 날 방송 나간 뒤 트위터 반응도 괜찮더라. 그 때 느꼈다. ‘아, 이런 부분에 대한 니즈가 있긴 했구나’라고. 지금은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종편으로 이적하면서 제일 답답했던 것이 시청자들의 리액션이 안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런 갈증은 많이 해소됐다.
Q.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사실 KBS에서 JTBC로 이적한다는 것부터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수아 PD : 워낙에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다. 처음 김시규 국장님(현 JTBC 예능국 국장, 전 KBS CP)이 같이 가자고 말씀을 꺼내셨는데, 그 때 이야기를 들으며 거의 결정했다. 국장님은 “열흘 있다가 다시 답을 다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말이다. 같이 가기로 결정된 선배들도 내가 KBS를 좋아하는 이유가 됐던 선배들인 터라 결정이 쉬웠다. 신랑은 “선배가 밥 먹여주냐”고 하더라(웃음). 물론 아이 육아문제로 고민이 되긴 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게 되면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도 조직이 큰 KBS에서는 방송 외적인 일도 많이 해야 했지만, JTBC에서는 오로지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Q. 흔히 종편이 정치적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우려는 처음에 없었나.
김수아 PD : 막연히 김시규 국장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 콘텐츠에만 집중하고 외압에 흔들리지 않게 해줄 것이라는 그런 믿음. 와보니 여기서 만난 다른 선배들도 너무나 좋았다. 여운혁 선배, 임정아 선배, 성치경 선배 등. 정말이지 지금 이 조직의 PD들은 모두 콘텐츠 지향적인 PD들이다.
Q. 그러나 <썰전>은 또 지상파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오히려 종편이기에 가능한 기획이기도 했다.
김수아 PD : 사실 종편이라 서라기보다, 이 시장에 들어와 있으면 모두들 무조건 달라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채널이 많은데, 비슷한 프로그램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특히 젊은 층 시청자들은 이 콘텐츠를 봐야하는 이유가 없으면 굳이 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소재, 없던 조합을 떠올린 결과가 바로 <썰전>이다.
Q. 프로그램의 출발은 김구라 였다고.
김수아 PD : JTBC 개국 이후 첫 프로그램이 <아이돌 시사회>였는데, 그 때부터 김구라 씨와 했다. 연출자와 연기자로 꽤 잘 맞았다. 특히 김구라 씨는 본인과 잘 맞는 연출자를 비롯해, 프로그램 메이킹에 있어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연기자다. 방송 나가고 나면 ‘이런 자막 좋더라’, ‘이런 편집 좋더라’라고 일일이 코멘트 해준다. <아이돌 시사회>를 통해 서로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김구라 씨의 그 사건이 불거지면서 잠시 방송을 떠나있었지만 복귀하면 꼭 같이하자 했었다. 그리고 마침 그 타이밍에 회사에서는 2049 세대를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김구라’와 ‘2049’를 동시에 생각하다 <썰전>을 떠올리게 됐다. 여기에 워낙에 섭외 시장이 포화상태인 만큼 섭외하지 않고도 가능한 토크쇼로도 생각이 옮겨졌다. 김구라가 가장 잘 털 수 있는 것은 뉴스와 연예였고, 셀레브리티가 아닌 이슈 그 자체를 게스트로 가져온 것이 바로 <썰전>이다.
Q. 뉴스 중에서도 정치를 건드리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수아 PD : 정치라기보다는 뉴스를 하려고 했다. 연예게 뉴스 뿐 아니라 모든 면의 뉴스 말이다. 다만 섭외가 된 분들이 정치 쪽으로 정통하신 분이나 보니…실은 나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그 쪽의 뉴스들을 많이 접하게 됐다. 심지어 내가 이런데, 이제는 정치를 소재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중장년층들의 전유물이 아니구나, 20~30대도 많이 알고 싶어 하는 시장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던 탓도 있다.
Q. 그런데 왜 하필 이철희와 강용석 이었을까. 사실 작년만 해도 진중권, 김어준, 정봉주 등이 더 뜨거운 관심인물이었고 오히려 강용석은 위험한 선택이었을 텐데.
김수아 PD : 일단은 좌와 우, 양쪽 진영이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용석 씨의 경우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보면서 이 사람이 말 하나는 진짜 잘 들리게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여겨봤다.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을 재미있게 말하는 솜씨를 가졌다. 김구라 씨에게 이야기 했더니 <화성인 바이러스>로 만났을 때도 느낌이 괜찮았다고 하더라. 오히려 두려워했던 것은 강용석 측이었다. 예능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 설득하는데 시간이 꽤 들었다. 또 진보 쪽 인사들은 종편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 많더라. 이철희 소장님 역시도 처음에는 까칠했다. 역시 공들여 설득해 같이 하기로 했다. 이철희 소장님이 좋은 것은 프로그램 콘셉트 상 장난으로 놀리거나 해도 삐치지 않으신다(웃음). 워낙에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조합들은 사실 우리가 정치 쪽으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뭘 알았더라면 접근하는 우리 쪽에서도 어려웠을 텐데, 잘 모르니 여기저기 찔러보다 얻게 된 결과다. 초선 의원은 초선 의원끼리, 또 재선은 재선끼리 이런 식의 정치 쪽 나름의 룰 같은 것이 있었다는데 우린 그런 것을 아예 몰랐다.
Q.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강용석 의원의 출연을 두고는 여전히 말이 많다. 예능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시각 탓이다.
김수아 PD : 나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믿는다. 대중이 강용석이라는 사람을 방송인으로 받아들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중에 정치를 할 때 (유권자들이) 표를 줄지 안 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것 역시 대중의 마음이다. 제작진은 대중이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집할 수 없다.
Q. 그러나 예능의 영향력이 커진 시대에 제작진의 책임의식이 커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수아 PD : 대중이 강용석이라는 사람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그를 출연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로 시간이 흘렀고 방송인으로 검증받은 상태였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흐름을 읽어 방송에 도움이 된다 판단되면 출연시킬 수 있다고 본다. 제작진이 ‘누구는 방송에 출연시켜도 돼’ 라거나 ‘누구는 안돼’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도 위험하다고 본다. 그렇게 따지면 PD가 신이어야 하지 않나. 장기적으로 보면 대중의 판단이 옳은 것 같다.
Q. 사실 PD의 입장에서는 정치를 소재로 한 1부 보다는 타사의 방송을 비교하고 분석해야하는 2부가 더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든다.
김수아 PD : 최근에는 JTBC <히든싱어>를 도마 위에 올렸었다. 그러면서 조승욱 선배의 전 프로그램인 <메이드인유>를 까는 이야기를 출연자들이 했다. ‘선배가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오히려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저와 친한 분들은 그렇게 리액션을 해주신다. 물론 정말로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사실 방송하는 사람들은 자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제일 잘 안다.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는데, 어찌 모르겠나. 그러나 또 그 안에 매몰돼 있기에 안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토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적정선을 분명히 지키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Q. 많은 PD들이 <썰전>을 들어, 꼭 한 번 연출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그럴 때 기분은 참 좋았겠다.
김수아 PD :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 아닐까. 아니면 섭외를 안 하는 점에서 그렇게 느낄지도,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것이고(웃음).
Q. <썰전>이 잘 되고 있는 만큼, 이제 2부에서 <썰전>에 대한 자체 평가도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닐까.
김수아 PD : 자체평가를 일정한 주기마다 하자는 아이디어는 나왔다. 해야죠. 하지만 아직은 프로그램이 낸 성과가 미비하다. 좀 떠 쌓여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은, 종편 성적을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끼리 매일 하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해보니 재미있었는데 시청률은 낮았다. 아직은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구나 생각했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는 <썰전> 자체 평가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Q. 이제 종편 시장에 뛰어든 지도 2년이 가까워지는데, 주변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나.
김수아 PD : 방송이라는 것에 완전히 다시 생각하게 됐다. 플랫폼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알게 됐다. 종편에서는 그냥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기에 다른 곳의 두 세배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리고 방송계는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자극적이라고 해서 다 보는 것이 아니고 점점 더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어야만 한다. 경쟁력은 역시 콘텐츠에서 나오는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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