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활약이 전방위적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연기도 곧잘 한다. 실력과 끼도 겸비했다.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안방이나 스크린을 두드리는 아이돌이 어디 한 둘인가. FT아일랜드의 멤버 이홍기도 음악과 연기를 넘나든다. 영화 <뜨거운 안녕> 주연까지 꿰찼다. 그의 인기 덕에 일본 개봉까지 앞두고 있다. 이쯤되면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돌’이란 타이틀에 기대 ‘어설픈’ 실력으로 이것저것 한다는.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봐왔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이홍기라고 다를까.

그의 이력을 들여다 봤다. 그의 시작은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다. 아역 배우로 활동하던 이홍기는 우연한 기회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이후론 ‘아이돌밴드’로 인기를 모았고, 틈틈히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그가 보여준 솔직하고 털털한 말들은 화제를 일으켰다. 이런저런 ‘굴욕’과 ‘악플’도 스스럼없이 먼저 얘기하고, 웃음으로 넘길만큼 의연했다. 아이돌이면서 아이돌답지 않은, 이 점이 이홍기를 규정 짓는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잘 몰랐던 어린시절의 이홍기, 지금은 ‘연기와 음악’, 할 줄 아는 건 오직 두 가지 뿐이다. 이렇게 이홍기는 변해갔다. 동시에 이홍기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졌다. 웃음 속에 진지한 강단을 지닌 그, 제법 매력적이다.

Q. 아역 배우 출신이고, 가수 데뷔 후에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나. 영화 출연에 대한 기회는 있었을 것 같은데.
이홍기 : 시나리오가 들어오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이번에도 음악에 전념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건네주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Q. 처음엔 거절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결국 출연했다. 그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이홍기 : 뭔가를 느끼게 해줬다. 호스피스에 관해 찾아보고, 여러 번 다시 읽으니까 뭔가 오는 게 있더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도 들고,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 등도 깨닫게 됐다.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는 그 감정들이 더 커졌다.

Q. 그런데 극 중 맡은 충의 역할이 아이돌 아니냐. 누가 보더라도 조금은 손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이홍기
: 처음엔 당연히 그런 생각이 있었다. 거절했던 이유도 그거였고. 그리고 그동안 해 왔던 캐릭터이지 않나. 그런데 결과가 어떻든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Q.어떤 관점에서 보면, 연기를 못해도 문제고 잘해도 문제다. 연기를 잘하면 이홍기의 실제 모습이라고 오해를 할 것 같고, 못하면 ‘아이돌이 다 그렇지’라고 하지 않을까.
이홍기 : 하하. 그래도 충의 캐릭터를 감독님이 잘 잡아주신 것 같다. 경험에서 나온 것을 더 살렸다면 진짜 밉상이 됐을 거다. 처음에는 반항기를 제대로 보여줘야 변해가는 모습이 부각될 거라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 하시는 말이 ‘충의는 마음이 순수하고, 맑은 아이인데 사회적인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항기가 생긴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영화 처음 부분에 나오는 클럽 장면 찍을 땐 감독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더라. 그랬더니 조금만 수위를 줄여달라고 하더라. 하하. 그런 고민들이 쉬워보였지만 의외로 어려웠다.

Q. 그래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실제로도 아이돌스타고, 극 중에서도 아이돌스타인데.
이홍기
: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Q. 지금은 아이돌스타지만 사실 아역 배우로 먼저 활동하지 않았나. 이홍기 팬들이야 알겠지만 그 과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역 배우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단계를 설명해 달라.
이홍기 : 어릴 때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는데 당시 삼촌이 패션모델을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눈에는 매일 밤 늦게 들어오고, 헤어스타일도 이상하고. 또 키는 엄청 크고. 그래서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랬더니 삼촌과 어머니가 패션쇼장에 데려갔다. 그 곳에서 우연찮게 눈에 띄어 지면 광고도 찍고, 쇼에도 서게 됐다. 그러던 중 연기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시작하게 됐다.

Q. 잠깐.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삼촌이 패션모델이어서 어머니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어린 이홍기를 패션쇼장에 데려가고, 광고도 찍고, 연기까지. 어쨌든 어머니가 다 허락했을 것 아니냐.
이홍기 : 그것 보다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셨던 것 같다. 한 번은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일주일 만에 그만 뒀다. 그땐 피아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리곤 태권도를 다니겠다고 했다. 태권도는 6~7년을 했다. 이처럼 좋아하는 걸 해야 열심히 하는 성격이다. 어머니도 그걸 아신 것 같다.

Q.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다시 말을 이어달라.
이홍기
: 여하튼 그렇게 연기를 하게 됐는데 누구나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왔다. 사춘기 때 연기를 쉬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놀았다. 그때 중학교 친구들하고 노래방에 자주 갔는데 노래를 부르면 친구들이 잘한다고 하더라. 그냥 잘 하나 보다 생각만 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음악, 가요 관련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고,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하게 된 것이다.

Q. 참 잘 풀린 인생이다. 누구는 죽으라고 해도 안 되는데.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운 좋게 술술 잘 풀렸다.
이홍기 : 사실 점이나 사주를 봐도 이쪽 계통을 하지 않았다면 내 복은 51세 이후에 들어온다고 하더라. 하하하.

Q. 한편으론 연기를 죽도록 하고 싶었다거나, 음악이 미치도록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란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홍기 : 지금은 미쳐있다. 이거 밖에 없다. 다행히 어릴 때 기회를 잘 얻었고, 계속해서 그 운을 잘 받아온 것 같다. 내 끼가 어느 정도 잘 맞아떨어졌고.



Q. 인생 이야기를 들었으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수로서 팬들 앞에 섰을 때와 영화로서 팬들을 만날 때, 어떻게 다른가.
이홍기 : 가수로 만날 땐 다소 편안한 느낌이다. 그런데 영화로서는 뭔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처음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영화할 때마다 그럴 것 같다. 작품마다 역할이 틀리고, 매번 달라지니 않나. 그래서 어떻게 봐줄지도 궁금하고. 가수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긴 하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는 같으니까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Q. 첫 영화가 개봉됐는데 팬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이홍기 : 이모 팬 한 분이 보내주신 게 있다. 그 분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장애우 단체에서도 왔나 보더라. 그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고, 극 중 상황에 몰입해서 봤다는 거다. 그 팬 분의 말이 두 번째 보는 건데 새로운 감동을 받게 해서 고맙다고 보내왔다. 막 자랑하고 다녔다. 하하.

Q.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가. 그리고 이번 영화를 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홍기 : 영화는 9.5점, 이홍기 연기는 5점이다. 첫 영화라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연기를 봤을 때 아역 때 하던 버릇들이 나오더라. 사람들이 오글거린다고 하는 부분도 그런 것 때문인 것 같다. 매번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그래도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감정은 나름 잘 잡은 것 같다. 참.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 착한 것보다는 나쁜 게 잘 어울린다는 거. 하하.

Q. 일본에서도 6월 7일 개봉됐다.
이홍기 : 그런데 그날이 7년 전 한국에서 가수 데뷔한 날짜다.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Q. 더욱이 일본 개봉 판에서의 엔딩 곡을 직접 작사, 작곡 했다고 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음악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이홍기 : 국내에선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점프>란 노래가 나오는데 직접 가사를 써 보려고도 했는데 시간상 도저히 할 수 없더라. 다만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부분은 최대한 감정이입을 넣은 것 같다. 무엇보다 연기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다. 음악적인 부분은 평소에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니까.

Q. 사실 이홍기, 그리고 FT아일랜드가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 개봉도 있지만 일본에서 투자가 된 것으로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홍기의 인기에 기대 만들어진 영화란 시선도 있다. 이런 시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홍기 : 인터뷰 하면서 많이 물어보는데 사실 잘 모른다.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시작할 땐 영화 자체만 봤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알게 되면, 상업적으로 변할 것 같아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있다.

Q.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시선과 오해에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하겠다. 이홍기의 본질은 아니지 않는가.
이홍기
: 그렇기도 한데 때론 ‘내가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나’란 생각도 들고. 여하튼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한다.

Q. 이홍기가 가진 또 다른 고민처럼 들린다. 그에 앞서 연기와 음악, 각각의 분야에 대한 이홍기의 본질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이홍기 : 음악적 고민에 대해서는 풀어나가는 시점이다. 예전엔 만들어진 음악을 했다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많이 하려고 한다. 곡도 쓰고, 회의도 많이 하고. 음악을 계속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다. 반면 연기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뭘 고민하고 그럴 단계는 아니다. 이제 시작이고, 배워가는 단계다. 다만 여러 가지 매력과 색깔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

Q. 음악과 연기, 다른 분야 같지만 또 한 편으론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기도 하다.
이홍기 : 맞다. 음악과 영화, 여러 가지로 연결돼 있다. 두 분야 모두 감정을 전달하는 거다. 다만 음악과 달리 배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시나마 살면서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웬만하면 내 경험을 토대로 하고 싶다. 노래든 연기든.

Q. 경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말하는데 그럼 충의처럼 소중한 사람을 보낸 적이 있나.
이홍기 :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있는데 FT아일랜드 데뷔를 앞두고 쇼케이스 하는 날,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 절반은 장례식장에, 절반은 쇼케이스 하는 곳에 왔더라. 쇼케이스 끝나고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울고불고 난리 났다. 친구들 말이 ‘노래 못할까봐’ 일부러 끝나고 말했다고 하더라. 얼마 전이 그 친구 기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정말 소중했던 사람이…말 못하는 일이 또 있다. 여하튼 누굴 보낸다는 게 굉장히 어색하고, 믿기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Q. 어릴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해오다 보면 일반적인 학창 시절의 경험이 부족하지 않나.
이홍기 : 충분히 경험했기에 아까 말했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엄청 놀았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고. 또래에 비해선 경험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지금도 자주 보는 친구들은 중학교 때 친구들이다. 과거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프로그램에 나왔던 사람도 중학교 선배들이다. 시간도 없었는데 많이 놀고, 많은 일도 있고, 추억도 있다. 뭐 사고도 치고 했겠지만 후회는 없다. 그게 다 자양분이 될 테니까.

Q. 음악에 대한 욕심은 언론을 통해 제법 말한 것 같은데 연기에 대한 구체적인 욕심은 못들어 본 것 같다.
이홍기 : 연기는 아직 초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느끼고 싶다. 그런 입장이다.



Q. 그래도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싶다거나 뭐 그런 구체적인 욕심 없나.
이홍기 : 하하하. 작품으로 부산영화제라도 가 봤으면 좋겠네요.

Q. 앞으로 하고 싶은 역으로 흡혈귀를 꼽았다.
이홍기 : 그런 영화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단 이야기다. 정말 하고 싶은 건 많은 사람들이 일단은 알고 있는 내 이미지와는 다른, 상반된 이미지의 인물을 해보고 싶다.

Q. 그런데 자신의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그 이미지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연예인도 많은 것 같다.
이홍기 : 물론 그렇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너무 비슷했다. 아이돌과 가수가 아니면 된다. 하하. 크게 바뀌진 않더라도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Q.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텐데.
이홍기 : 좋아하는 게 두 개인데, 그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없는 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게 그런 의미다. 내가 봐도 배우와 가수, 동시에 잡긴 힘들다. 하나도 제대로 잡기 힘든 게 사실이다. 다만 연기할 땐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가수 활동을 하지 않고, 가수 활동을 할 땐 연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도 영화 홍보 활동과 일본 공연 준비가 동시에 맞물렸는데 너무 힘들다.

Q. 방송에서의 모습 등을 봤을 때 뭔가 아이돌답지 않게 자유분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려서부터 연예계 활동을 해와서인지, 좀 의연한 모습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홍기 : 어쨌든 아이돌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10대들의 우상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착한 짓이나 멋있는 짓을 잘 못한다.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더 이슈가 됐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느끼는 건 아이돌이면서 동시에 밴드로도 성장하고 싶다. 아티스트와 아이돌, 그 경계를 잘 유지하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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