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성강
‘한국계 배우’라는 수식어에서 ‘계’자를 빼도 될 것 같았다. 옆에 앉은 통역사는 그가 취재진의 질문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만 한국어를 영어로 옮겼고, 모든 답변은 본인이 직접 한국말로 했다. 능숙한 한국어도 한국어지만 답변 내용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성강은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목표를 ‘오스카상’ 수상이라고 했다. 그 이유의 중심에도 다름아닌 ‘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Q. 작년과 올해 배두나(<클라우드 아틀라스>), 이병헌(<지.아이.조.2>) 등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성강(한국 이름 강성호)은 할리우드에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착실히 경력을 쌓고 있는 배우다. 특히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는 2006년 주연을 맡았던 <패스트&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부터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22일 개봉되는 <분노의 질주:더 맥시멈>에도 어김없이 출연한 그는 영화 홍보차 14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영화 시장이 커져서 나도 이렇게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웃는 성강,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속 깊은 이야기는 물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들었다.
성강: 나도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 걸 보면 나도 너무 좋다. 영화가 개봉하면 표 사서 바로 본다. 특히 이병헌은 <지.아이.조2>에서 멋있게 나오지 않나. 동양 남자도 몸 좋고 섹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병헌은 연기도 잘한다. 내 생각에 이병헌은 운이 좋았던 게 아니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런 배우가 미국에 와서 성공하는 건 당연하다.
Q. 과거에 비해 한국 배우의 입지가 높아졌다고 봐야 하나.
성강: 맞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일하는 동양 사람은 거의 한국 사람이다. 할리우드에서 한국 사람이 살아남는 건 내 생각엔 한국인 특유의 고집 때문이다. 이런 일 하려면 고집도 세야 하고, 멀리 봐야 한다. 배우를 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백 번 도전해서 하나씩 얻어야 하는 직업이다. 한국 사람들 피가 그렇지 않나. 물론 나는 오백 번, 천 번 도전해서 하나씩 얻는다.(웃음)
Q. 한국에 건너와서 활동할 계획은 없는지.
성강: 요즘 한국 감독들이 영화를 워낙 잘 만든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도 하고 싶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일하던 배우랍시고 데려와서 맡기는 게 전형적인 교포 역할이라면 사양한다. 나랑 맞는 좋은 역할에 캐스팅돼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면 당연히 한다. 그런데 한국계 배우다 해서 CF 몇 개 찍고 마는 건 멀리 내다보고 할 행동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온 배우라는 그것만으로 인정해 달라는 건 한국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과 같다.
Q. 만약 한국에 온다면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는.
성강: 송강호. 연기 정말 잘 한다. 닮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송강호가 연기를 잘하니까 고맙기도 하고, ‘송강호가 잘생긴 얼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노의 질주> 다음 편에 송강호가 ‘한’(극 중 성강이 맡은 역할)의 아빠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영화 <아저씨>의 감독(이정범)과도 같이 일해보고 싶다.
Q. 여배우는 없나?
성강: 난 아내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다.(웃음)
Q. 그런데 이력이 독특하다. 법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성강: 난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다. 꼬마 때부터 연극을 했다. (공부를 최우선시하는) 한국 부모 다들 잘 알지 않나.(웃음) 하지만 우리 부모는 그냥 열심히 하라고,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동양 사람도 예전보다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걸 아시기 때문에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Q. 할리우드에서의 목표는?
성강: 오스카상을 받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도 있고, 미국 대학의 학장이 된 한국 사람도 있다. 한국 사람이 오스카상을 받으면 다른 한국배우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내 목표는 오스카상이다.
배우 성강
“오백 번, 천 번 도전해서 하나씩 얻는다”는 그의 말처럼 성강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진주만>, <다이하드 4.0> 등 의 단역에서부터 드라마까지 연기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수많은 도전 끝에 성강이 얻은 하나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합류한 것이다. 대학 때부터 그를 눈여겨 보던 저스틴 린 감독은 <패스트&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의 주연 ‘한’으로 성강을 선택했다. 동양인으로서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급으로 캐스팅된다는 건 파격이었다.Q.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합류해 달라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성강: 저스틴 린 감독과 나는 시작을 함께 했다. UCLA에 다닐 때 그가 만든 독립영화에 내가 출연했는데, 그 때의 캐릭터가 바로 한이다. 그래서 <도쿄 드리프트>에 합류할 때도 린 감독의 도움을 받았다. 원래 한은 멋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동양인이 맡을 수 없었고, 남은 건 악역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양인에 대한 시선이 그랬다. 그 때 린 감독이 예전의 그 독립영화를 보여주면서 동양인도 ‘쿨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도 동양인이지 않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겐 행운이다.
Q.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가족’이라는 테마를 중시한다. 실제 촬영 현장도 가족적인 분위기였는지.
성강: 실버스타 스탤론이랑 영화를 찍을 때 그가 나한테 가르쳐줬던 게 있는데, ‘카메라는 거짓말 안 한다는 것’이다. <분노의 질주>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가족이라는 테마다.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저스틴 린은 캐릭터가 나오자마자 모든 배우를 붙잡고 조언해 준다. 어떻게 하면 화면에 멋있게 나올 수 있을지. 본인이 들러리라고 느껴지면 ‘난 이걸 왜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그런 것 없이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만 한다.
Q. 탱크, 비행기 등 위험한 액션신이 많았다.
성강: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 배우들은 그렇게 힘든 일 아니다. 하지만 스턴트 팀은 인정해 줘야 한다. 그 사람들은 촬영하다 죽을 수도 있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 (그들에 비하면) 내가 하는 건 노는 거다.
Q. 영화에서 지젤과의 러브라인이 암시되긴 하지만, 스킨십이나 깊은 애정을 드러낼 만한 장면은 별로 없다. 아쉽진 않은가.
성강: 아쉽지 않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신이 있으면 집에 가서 아내한테 혼난다. 5편에 지젤과의 키스신이 있었는데 와이프, ‘뚜껑’ 열렸다. “이번에도 키스신 있냐?”며 맨날 잔소리다. 사랑하는 사이에 질투하는 건 당연하다. 나라도 아내가 그런 촬영을 하면 질투할 것 같다. 질투를 안 하면 오히려 그게 문제 아닌가?
Q. <분노의 질주> 3편부터 6편까지 함께 했는데, 다음 편에도 ‘한’이 등장하나. 이번 영화 마지막 신만으로는 판단이 힘들다. 레티처럼 부활하는 건가.
성강: 얘기를 들은 바는 없다. 그런데 난 벌써 네 편이나 찍었고, 사실 이렇게 멋있게 작품에서 퇴장하는 건 배우로서 선물받은 거다. 죽고 살아나는 걸 반복하면 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멋있게 나가는 게 낫다. 그래도 <분노의 질주> 팀원들이 계속 함께 하자고 한다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다, 너무 친하니까.
글. 기명균 kikiki@tenais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영화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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