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정년이' 원작과 다른 결말, 여성 서사는 어디로
여성 캐릭터들은 결혼, 국극단은 요정 집으로 팔려
사진=텐아시아DB, tvN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1950년대 여성 국극단을 조명하면서 현실적인 시대상도 반영하고 싶었던 걸까. 쇠퇴하는 여성 국극에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는 맥없이 사라졌고, 주체적인 여성들의 모습은 결국 결혼으로 점철됐다. 주인공들의 성장과 성공은 지워진, 허무한 결말뿐이다.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가 마지막회에서 최고 시청률 16.5%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년이'는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에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등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 국극 무대로 방송 내내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제공=tvN


처음부터 '정년이'가 순탄하지는 않았다. '정년이'는 tvN 편성이 확정되기 전 '정년이' 편성을 검토했던 MBC가 업무상 성과물 도용으로 인한 부정경쟁방지법 및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근거로 '정년이' 제작사들에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며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MBC는 작품 제작을 위한 자료 조사, 촬영지 섭외, 배우 캐스팅 등 사전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편성이 불발되며 막심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정년이' 제작사 측은 "MBC는 제작사들과 '정년이'와 관련된 구두 합의를 포함 어떠한 계약도 체결한 사실이 없고, 제작사는 명시적인 편성 확정을 고지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하며 논란을 일단락 했다.


각색 과정에서 퀴어 코드를 삭제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원작에서 윤정년과 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부용이 캐릭터가 삭제된 것. 퀴어 코드에 거부감을 표하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리수 각색이 아니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제작진은 방대한 원작 내용을 12부작으로 축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삭제됐고, 부용이 캐릭터가 지닌 정서를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방식으로 극을 풀어 나갈 예정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제작진의 말대로 부용이가 지닌 퀴어 정서는 주란이에게 녹아 들었다.

정년이 캐릭터를 향한 시청자들의 불만도 컸다. 오지랖에 제 멋대로이고, 주변에 피해만 입히는 '민폐' 행동이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탓에 작품을 향한 대중의 호불호 역시 나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논란은 '정년이'의 결말이다. '정년이'의 결말은 원작과는 길을 달리했다. 정년이, 영서, 주란이 모두 '쌍탑전설'의 흥행으로 국극 스타가 되고 매란 국극단 역시 새 건물을 지어 이사하는 해피엔딩이지만, 드라마 결말은 열린 결말을 내세운 새드 엔딩이다. 에필로그에는 국극단의 쇠퇴에 마당극 배우, 소리꾼, 영화 배우 등으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매란의 새로운 왕자가 된 정년이는 '쌍탑전설' 한 회차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단장 소복(라미란 분)이 돈을 구하기 위해 매란 국극단 건물을 일본식 성매매 업소인 요정으로 판다는 점, 주란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결혼하며 국극을 떠나는 모습은 쌓아왔던 여성 서사를 처참히 무너트렸다. 원작에서는 부용이 결혼하지 않고 정년이와 재회하는 모습으로 수동적이었던 당시 여성의 모습을 탈피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드라마 '정년이'는 주란과 영서 언니 모두 자신의 커리어를 끊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어 허무함을 자아냈다. 또 매란 국극단 건물이 요정이 된다는 설정은 불편함을 안겼다. 해당 건물을 사려는 사람이 돈 많은 남자의 후처로 들어간 국극단 출신 여성이라는 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그렇다고는 하나, '정년이'는 픽션의 드라마다. 원작 역시 시대의 흐름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걸 깨부수고 성장해나가는 여성들의 서사를 보여주고자 했던 원작자의 결말은 지워진 채 남은 건 여성들의 가혹한 현실뿐이다. '정년이'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게 이러한 결말이었는지 묻고 싶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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