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유아인 인터뷰
"'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지' 반응 기억 남아"
"원작 있는 작품,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죽음으로 퇴장, 일 덜해서 좋아…정진수 부활하길"
"'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지' 반응 기억 남아"
"원작 있는 작품,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죽음으로 퇴장, 일 덜해서 좋아…정진수 부활하길"
"정진수를 연기하며 저의 20대 시절이 떠올랐어요. 상당히 느끼한 겉멋과 허세에 찌들어서 '나는 서른쯤에 죽을거야' 생각하며 20대를 살았거든요. 그러면서 저를 좀 더 과감하게 던지고, 도전하고, 실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어요.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에너지로 살았고, 뒤가 없고 다음이 없는 것 같은 상태였죠. 지금도 꾸역꾸역 잘살고 있는 저를 보며 그 시절의 치기를 비웃기도 하고요."
3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배우 유아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속 정진수 캐릭터처럼 '20년 뒤 죽는다'는 고지를 받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 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극중 유아인은 지옥에 가게 될 날짜를 선고하는 천사와 이를 집행하는 지옥의 사자의 존재를 설파하는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유아인이 연기한 정진수는 '지옥' 초반의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정진수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냐고 묻자 유아인은 "사이비 종교 의장, 비교적 젊은 나이, 충격적인 전사가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 등 주어진 정보들을 구체화 시키고 입체화시키는 과정을 밟았다"며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 교주와는 동떨어진, 반전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들의 레퍼런스를 보면 '믿습니까!' 소리치는 분들이 없더라. 조곤조곤하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부분들에 소스를 따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 분량에 비해 핵심적으로 극의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는 인물이다 보니 수위를 어느 정도로 가져갈지 고민이 많았다. 다른 인물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진수는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조화롭게 녹여내려 했다. 촬영이 진행되고 다른 배우들과 합을 이루면서 그들의 호흡과 액션을 느끼며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려 했다"고 덧붙였다.
장르적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유아인은 "부담감이 컸다. 극의 향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어려운 인물이었고, 아주 최소한의 등장만으로 최대치의 효과와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며 "미스터리 속에 있으면서 극 전체의 마수를 뻗치고 있다는 에너지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평소 작업보다 훨씬 긴장하면서 촬영했다. 매 장면 조금의 실패 없이 미션들을 반드시 성취해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공개된 '지옥' 코멘터리 영상에서 연상호 감독은 유아인의 눈을 '저 눈빛 없는 무서운 눈'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유아인은 "흰자와 검은자만 존재할 수 있도록, 조금의 빛도 반사되지 않을 수 있도록 눈의 뜨임 크기를 연구했다. 정진수의 묘한 미스터리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블랙홀처럼 끌어당기는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옥' 속 정진수의 반전은 20년 전 이미 고지를 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정진수는 3부에서 지옥 사자에 의해 죽음을 맞아 충격을 안겼다. 정진수가 빨리 죽어 아쉽다는 반응에 유아인은 "저는 일 덜하면 좋죠"라고 웃으며 "적게 나오면서 최대치의 효과를 내는 인물이라 '올게 왔다' 생각했다. 많은 분이 아쉬워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진수가 시즌2에서 부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냐고 묻자 유아인은 "재등장을 가장 바라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며 "살아날 것 같지 않나요?"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넷플릭스 전 세계 TV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뜨거운 반응은 얻고 있는 '지옥'. 이러한 인기에 유아인은 "1위 너무 좋다. 오래오래 1등 했음 좋겠다"며 "대한민국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월드와이드로 소개될 수 있다는 지점이 가장 반가운 것 같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가 점점 치열해지는 과정 속 좀 더 폭넓은 반응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은 묻자 유아인은 "한국분이 유튜브에 남긴 댓글이었는데, '세계 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지'라는 말이다. 내가 국가대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으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며 "연기는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는 부담감이 있고,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관객들의 칼날도 느껴져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밝혔다.
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지옥'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유아인은 "나는 '지옥'이 전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괴수가 나오는 오락성 짙은 작품 속 기저에 깔린 메시지나 상징들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동시대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맹신하고 그것을 무기 삼아 공격하는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지 않나. 무거운 주제를 진지하게 풀어내지 않고, 오락성이 짙은 작품 안에서 간결하게 녹여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천사의 고지를 통해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는 게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지만, 괴물 같은 인간, 천사인 척하는 인간이라고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혐오나 폭력, 집단 광기들을 현실세계로 끌고 와보면 비슷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상당히 동시대적이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당장 마주하는 현실도 그런 것 같아요. '지옥'이라는 작품이 공개된지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리뷰를 올리며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더라. 그런 믿음과 신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포스러웠다. 어떤 믿음을 가지면 그런 액션을 하게 되는 걸까, 한번 스쳐간걸로 어떻게 상대방을 평가하고 마침표를 찍는 걸까, 어디서 주워들은 한줄의 정보를 믿고 맹신하고 떠들 수 있을까. 그런 현실들이 작품에 겹쳐 보였어요."
원작 웹툰을 봤냐고 묻자 유아인은 "미리 보지는 않고 시나리오를 본 후에 봤다.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며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꽤 많이 했는데, 원작이 있기 때문에 영상화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원작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벗어날 수가 없는거다. 보다 더 적극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도 원작과 다른 표현을 하고 싶어도 원작 팬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다르게 한 연기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원작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에 부담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부담을 떨쳐내기 위해선 원작을 멀리 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유아인은 신념이 무너지려는 위기 앞에서 신념을 택할까, 현실을 택할까. 유아인은 "나는 신념이 믿음을 만들고 믿음이 신념을 만들어 낸다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두 가지를 끝까지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편이다. 신념과 믿음은 계속 빚어져야 하고, 세공되어야 하고, 스스로 계속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신념과 믿음이 항상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가진 나름의 신념이나 믿음을 조금씩 세상에 던져보며 반응도 듣고, 그러면서 중심을 찾아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옥'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로 기억되길 바라냐고 묻자 그는 "바라는 바는 없다.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사도', '베테랑'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큰 사랑을 받았아요. 그게 한편으로는 저를 가두는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그래서 그 후 다른 시도들을 하면서 가능성을 넓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이번에 정진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의 업그레이드버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연기하며 체화된 에너지를 통제하는 방법, 그것들을 적절하게 작품에 녹여내는 방법들을 가지고 다시 한번 실험적으로 던진 시도였어요."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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