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잘해야 하는 시기에요.” 감정에 솔직하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았던 SBS 의 김나나를 연기한 박민영은 자신의 얘기를 거침없이 이어갔다. MBC 의 강유미, KBS 의 김윤희, 의 김나나까지, 소신을 갖고 행동하는 여자주인공을 연기한 박민영은 이미 그들과 닮아있는 듯 보였다. 으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어 KBS 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박민영은 “누가 나를 구름으로 날라주는 줄 알았다”고 그 당시를 담담하게 회상한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크게 생겼던 SBS 이후 작품을 만나지 못하면서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 이후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박민영은 이제 기회에 감사하고,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는 자세로 연기하려 한다. “1년 3개월 동안 연속으로 쉰 게 3일정도 밖에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에 이어 곧바로 KBS 을 선택하며 신나는 얼굴로 연기에 대해 말하는 배우 박민영을 만났다.

의 마지막 장면에서 윤성과 나나가 다시 만나지만 서로를 바라볼 뿐 어느 얘기도 하지 않는다. 결말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박민영: 워낙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멜로 말고도 끝내야 하는 얘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그래도 다시 만나지 않나. (웃음) 김나나는 이윤성에게 “내 감정은 내 것이다”고 말한다. 다른 여주인공과 차별화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에서부터 주체적이고 자기 소신이 뚜렷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왔는데, 본인하고도 잘 맞는 편인가.
박민영: 내 성격과는 많이 다른 캐릭터라 편한 건 없다. 먼저 고백을 하는 모습이 박민영의 생각에선 이해가 안가지만 김나나였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나나의 마음이나 생각으로 말하다 보면 나나의 말로 들린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다.

의 김나나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박민영: 만족을 못하니까 50점이나 40점. 아쉬운 부분이 많다. 윤성이와의 멜로도 과정이 좀 더 세밀하게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있고. 감정의 기반이 깔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었다. 후반부에 윤성과 나나의 감정이 반복되면서 연기하기 고민도 많았고 어려웠다. 나나와 윤성이 티격태격하다가 ‘아 사랑이구나’라고 느꼈을 때 그 앞으로 장애물이 닥치면서 둘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이 사람을 놔줘야 하는구나’에서 ‘다시 잡아야겠다’라고 느끼는 과정에서 조금 더 감정의 강약조절을 잘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노력은 했으니까 50점.

이민호는 박민영이란 배우에 대해 “내가 어떻게 표현하든 잘 받아줄 수 있는 배우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민호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박민영: 이민호와 연기 스타일이 비슷하다. 상대 말을 들어야 리액션이 나오고, 진지할 땐 한없이 진지하지만 장난칠 때는 또 장난치고. 이민호는 연기하는 상대방을 배려해준다. 그래서 본인 연기할 때보다 리액션 하는 장면에서 더 좋은 연기가 나오고, 나 또한 서로 주고받는 장면에서 더 연기가 좋다. 연기 스타일이 비슷해서 호흡이 잘 맞았던 만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기를 하면 할 수록 자꾸 호기심이 생긴다”
에서 당차고 씩씩한 간호조무사 재인 역할을 맡았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박민영: 내 나름대로 재인이의 캐릭터에 살을 붙이고 있는 상태다. 재인이는 간호조무사 시험도 봐야 하기 때문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말도 빠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자들도 챙겨야 하니까 손도 빨라야 하고, 목소리 톤도 높을 수밖에 없고, 목소리도 클 수밖에 없다고 설정을 했다. 처음엔 정말 밝지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게 될 것 같다.

재인과 김나나는 밝고 당찬 여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박민영: 비슷해 보이더라도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건 내가 할 몫인 것 같다. 1, 2화 때는 ‘박민영이 저런 역할 또 하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점차 역할에 몰입이 되면 3, 4회부터는 그냥 재인으로 봐주시기 않을까. 그래서 그런 점에 크게 부담을 안가지려 한다. 그리고 좋은 작가님이 계서서 괜찮을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할 때 전적으로 작가를 믿는다고 했는데, 작품 내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믿음이 가는 제작진을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겠다.
박민영: 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와의 사이에 쉬는 기간이 별로 없었는데도 이 작품에 무리해서라도 들어가려 했던 이유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강은경 작가님이 믿음직스럽다. 처음 뵀을 때 제일 좋았던 것은 내 연기 스타일을 파악하시고 재인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걸 추천해 주셨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 재인이라는 인물의 그림이 너무 확실하신 분이시다. 작가님의 머릿속에 있는 재인이를 같이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재인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은경 작가가 어떤 재인이 되기를 원하던가.
박민영: 목소리가 여자치고는 중저음인 것을 아시고 원래 갖고 있는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는 게 재인이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라. 목소리를 한, 두 톤 정도 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도 랩 하듯이 빠르게 얘기해서 영광(천정명)과의 호흡도 그 정도로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다. 어떤 게 재인이와 더 맞는지 먼저 의견을 얘기해 주시니까 너무 편하다. 그걸 해나가는 건 내 숙제이지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거기에 내 식으로 살만 더 붙이면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으니까 좋았다.

, , , 까지 작품을 연달아 하고 있다. 연기도 감정 노동인데, 그러다보면 자신이 너무 소모되진 않을까.
박민영: 다행히 장르가 다 달랐다. 그래서 선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영화 를 찍을 때까지 모터 단 것처럼 연기가 너무 재밌어서 또 하고 싶었다. 자꾸 호기심이 생기고, 연기에 대해 물음표가 뜨니까 계속 하고 싶었던 거지. 와 은 시간을 두고 싶었지만 주어진 상황이 시간이 얼마 없었다. 할까 말까하는 갈림길에 있었는데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못하는 거니까.

빠른 시간 안에 캐릭터에 몰입해야 하는데, 쉴 틈 없이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캐릭터에 빠져드나.
박민영: 우선 드라마가 끝나고 내 캐릭터는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보내주는 게 첫 번째 과정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채워야 된다. 오히려 하나하나 따로 하면 오래 걸리고 더 생각난다. 그래서 성급하지만 않게 보내고 들여오려고 한다. 성격이 빠른 편이 아니어서 새로운 캐릭터가 아직 흡수가 안됐으면 솔직하게 얘기한다. 첫 대본 리딩 때도 완전히 재인이가 아닐 거다. 재인이 흉내 내는 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님에게도 말씀 드렸다. ‘저는 천천히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랬더니 촬영 전까지만 하라고. (웃음) 난 기술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발음이 샐 때도 있고, 빨리 말하다 보면 마음이 앞서 말이 잘 안 나오기도 한다. 그냥 내가 가진 게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것보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내 캐릭터를 진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연기한다. “한번 슬럼프를 겪은 다음엔 어떠한 일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보통 어떤 시나리오에 끌리는 편인가.
박민영: 어느 인물의 감정에 따라가게 되면 좋은 대본이고, 아무에게도 감정이입이 안 되면 좋지 않은 대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맡을 역할이 아니라도 감정이입이 끝까지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의 경우에는 윤성이의 감정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고, 재밌었다. 반대로 은 인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윤희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어서 하고 싶었다. 내 캐릭터든 다른 사람의 캐릭터든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면 이입도 쉽고, 상대한테 내 캐릭터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면서 접근이 쉬워진다.

부터 성장세가 빠른 편이다.
박민영: 운이 정말 좋았다. 대학에 입학한 것부터 소속사에 들어가게 된 것, 에 캐스팅 된 것, 그리고 그 시트콤이 잘된 것도 운이었다. 그리고 으로 바로 주연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신났겠나. 누가 나를 구름으로 날라주는 줄 알았다. 근데 운은 거기까지더라.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 없이 구름의자를 타고 가니까 벽에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 작품을 정말 하고 싶었을 때 운이 안 따라줘 한동안 쉬었다. 아마 그런 시절이 없었고,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지 않았으면 ‘어렸을 때 즐겁게 했었지’라고 다른 일을 찾았을지도 모르지. 우여곡절 끝에 을 만났고, 아껴왔던 걸 다 쏟아 부으니까 치열해졌다. 연기를 하면 궁금증이 생기고, 또 하나씩 깨뜨리면서 재밌게 하고 있다. 지금은 운이 좋다. 가진 것에 비해 큰 역할을 주시고, 또 많은 성과가 있었으니까.

스스로에 대해 엄격하거나 혹은 만족을 느끼는 기준점이 높은 것 같다.
박민영: ‘가진 것보다 큰 역할을 주시는데 이걸 어쩌지’를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못하면 또다시 벽에 부딪힐 수가 있으니까. 한번 슬럼프를 겪은 다음에는 어떠한 일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고 해도 열심히 안하면 또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들뜨지 않으려 평정심을 갖는 편이다. 이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를 더 괴롭히려고 한다. 정말 잘해야 하는 시기니까. 스스로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다고 계획해 놓은 것이 있나.
박민영: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캐릭터로 불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확고하게 계획해놓고 움직이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하려 한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가 있었는데 그걸 버리고 나니까 연기를 할 때도 몰입이 빨리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생각했을 때 재밌을 것 같고, 무언가를 했을 때 제일 행복 할 것 같은 길을 간다. 을 할까 말까만 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가는 거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배우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 ‘패셔니스타’여야 하면서도 연기를 잘해야 하고, 행동의 제약도 심하다.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박민영: 여배우로서 감내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까지?’란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에만 몰입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진다. 오히려 쉴 때 그런 걸 느낄 것 같다. ‘언제까지 이렇게 바쁜 여배우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계속 작품을 할 수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기분 좋고 감사하다. 안 그런 분들도 많고, 나도 그 중 하나였으니까.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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