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이 대세다. 많은 사람들이 MBC 을 통해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미친 예능감, 치명적인 사랑스러움을 영접했다. 하지만 그의 매력을 먼저 알아보고, 가꾸고, 꽃 피우게 한 곳은 TV가 아닌 라디오다. KBS (이하 )의 유희열과 정재형, 최근 DJ 데뷔를 한 EBS (이하 )의 신재평과 이장원. EBS (이하 )의 前 DJ 루시드 폴과 EBS 의 DJ 박새별. 이들은 모두 안테나 뮤직 소속 싱어송라이터다. 유희열을 중심으로 구성된 안테나 뮤직의 아티스트들은 라디오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가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가장 사적인 매체’인 라디오에서 친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농담으로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고, 보편적인 예능감을 키우는 동시에 각자의 음악적 취향을 세련되게 드러내며 든든한 팬덤을 얻었다. 은밀한 코드를 공유하는 이 팬덤이 있었기에 정재형 같은 독특한 캐릭터가 TV에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Video kill the radio star’라고 했지만, 적어도 이들은 다르다. ‘Radio make the video star’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안테나뮤직의 라디오 스타들’을 소개한다.
정재형
누가 나를 평가해? 속세의 잣대로는 감히 평할 수 없는 ‘재형스러운’ 가래요정89.1 Mhz 월 밤 12시-2시 KBS ‘라비앙 호~~즈’ 메인 DJ
‘심야 라디오의 원빈’ 유희열도 한 순간에 쩌리로 만드는 음악요정, 그리고 대세. 정재형은 의 에스쁘리, ‘라비앙 호~~즈’의 메인 DJ다. ‘라비앙 호~~즈’의 시작은 프랑스 13구역 차이나타운의 왕자님이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남아공, 태국, 필리핀 등등 세계 방방곡곡 오대양 육대주 외국에 있는 해외 동포들과 여행을 꿈꾸거나 준비하고 있는 고국에 있는 사천만 동포들을 위해 준비한 ‘글로벌’하고 ‘코스모폴리탄’적인 방송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남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토라지고, 감히 메인 자리를 넘보며 멘트를 정리하려 드는 보조 DJ 유희열에게 “야! 너!”라고 욱하고, 김동률과 이적 등 타 뮤지션에 대한 노골적인 비방으로 일관하며, 맘에 안 드는 사연을 올린 청취자에게는 “멍!충!이!”라고 외치는 새침데기, ‘개차남’(개에게만 차갑게 구는 남자)이 진행하는 맥락 없고, 논리 없고, 근본 없는, 하지만 치명적으로 사랑스러운 방송이다. “언변의 마술사,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유희열의 평가로 그 가치를 다 칭송할 수 없는 그는 ‘음악의 신이자 라디오의 신’이다. 2주 전 청취자의 ‘암컷 까만색 개’에게 ‘암까’라는 언뜻 듣기엔 성의 없고 몹시 수준 낮아 보이지만 그 심연엔 ‘불어적인 엘레강스’가 흘러넘치는 이름을 지어주고 훌쩍, 파리로 떠난 가래요정님. 오빠, 가래 끓는 “으헝헝헝헝헝”이 그리우니 얼른 돌아와서 “뾰로롱~” 한 번 해 주세요~~~
유희열
‘음도민’, ‘더올민’, ‘라천민’까지 15년간 솔로 여성들을 조련한 ‘SM 라디오계’의 대부 89.1 Mhz 매일 밤 12-2시 KBS DJ
‘고품격 음악방송’이라고 쓰고 ‘개미지옥’이라고 읽는 의 식충식물, 감성변태 메인 DJ 유희열. 자칭, 타칭 아이돌의 임금님이자 인디 뮤지션의 길잡이인 유희열. 그의 이름 석 자가 곧 심야 라디오인 ‘심야 라디오의, 라디오에 의한, 라디오를 위한’ 스타. 1997년 MBC 를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그의 얼굴과 세치 혀에 놀아나 연애도, 결혼도 못한 채 나이 먹어 간 여자들의 영원한 오빠이자 정신적 지주. 지나친 비주얼로 인해 음악성을 과소평가 받은 불운한 ‘어좁미’(어깨 좁은 미남). 유희열은 딱 하나를 꼬집기도 어려울 정도로 선곡, 진행, 사연 낭독, 게스트 어시스트, 심지어 라이브 실력까지 라디오 DJ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타고난 ‘라천(라디오 천재)’이다. 음악요정 정재형도 유희열을 만나지 못했다면 한낱 ‘페스티벌 레이디’에 불과했을테고, 심야 DJ계의 자라나는 새싹 신재평도 유희열을 만나지 못했으면 교육방송의 위엄 있는 메인 DJ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너를 속이지 마라. 너무 예쁜 모습만 보이려 하지 마라”라는 금과옥조 같은 조언으로 라디오 계의 차세대 기대주, 이장원의 눈을 뜨게 한 선견지명까지 그의 업적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후배 신재평이 의 DJ가 된 첫날, 첫 곡으로 그가 부른 ‘여름날’을 선곡하는 하해와 같은 마음의 소유자인 동시에 방송 시간이 일부 겹치는 경쟁 프로그램임을 알자마자 “싹을 밟아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카리스마 폭발하는 ‘남자 중의 남자’다. 오빠, 이런 칭찬 듣는 것도 이제 지치지?
신재평
고3 때도 안 듣던 교육방송을 듣게 만드는 ‘조마조마 수줍수줍 DJ계’의 뉴 페이스104.5 Mhz 월-토 밤 11-12시40분 EBS DJ
한 때 인디계의 아이돌, 페퍼톤스의 신재평이 숨 막히는 뒤태, 아니 진행을 자랑하는 비음 DJ가 되어 돌아왔다. 는 기존 청취자들은 ‘오늘은 제대로 하는지 한 번 들어 보고’ 싶어서, 새로운 청취자들은 “진짜 웃기다. (재평 DJ) 떠는 거 한 번 들어 봐”라는 추천으로 발을 들이게 되는 ‘본격 서스펜스 다단계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본을 맹렬하게 또.박.또.박. 띄어 읽고, 숨 쉬는 것을 까먹어 아가미로 호흡하고, 긴장해서 목소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서 뒤집어지고, 심지어 방송 중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내는, 이 허술하고 사랑스러운 DJ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온갖 실수와 돌발 사고에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발가락에 피가 안 통할 정도지만, 잦은 음이탈에 몹시 부끄러워하며 “잠깐만 물 좀 마실게요”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당장 어깨에 18.9L 생수통을 들춰 메고 우면동 스튜디오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과도한 긴장과 좀처럼 늘지 않는 진행 솜씨는 ‘우쭈쭈쭈’ 하고 싶게 만들어 여심을 자극하고자 하는 고도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게 하기 위해 신재평을 괴롭힐 임무를 띠고 게스트로 출연한 박새별도 결국 감싸주고 싶은 마음에 그의 편이 되어 돌아갔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낫씽 벗 어 송(Nothing But a Song)’을 ‘낫씽 벗어’라고 (야하게) 읽는 건 좀 너무하다 싶다. 오빠, 야심한 밤의 오그라듦은 정녕 듣는 자의 몫인가요…
이장원
‘논리의 징검다리’로 정재형과 유희열의 아성을 위협하는 차세대 라디오 스타104.5 Mhz 목 밤 11-12시40분 EBS ‘심야의 행진곡 – 뮤직 프로파일링’ 고정 Guest
라디오의 대세, 라디오의 神, 정재형에 대적할만한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페퍼톤스의 이장원이다. 그는 짝꿍, 신재평이 진행하는 의 목요일 코너, ‘심야의 행진곡’과 코너 속의 코너 ‘뮤직 프로파일링’에 출연한다. 로 섭력한 논리력과 “당나귀가 난다고 해도 믿게 만드는” 똑똑해 보이는 얼굴로 담당 PD는 물론, 청취자들의 내면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7월 6일에는 의 수요일 코너, ‘라이벌 열전’에 특별 출연하여 ‘일개’ 영화배우 정준일(메이트)과 벌인 ‘가창력 대결’을 통해 심야 라디오 게스트 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새로운 라디오 스타의 탄생을 온 천하에 알렸다. 이 대결에서 그는 에릭 클랩튼의 언플러그드 버전을 연상시키는 연주와 노래로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를 멋지게 소화해내며 4385표 vs 265표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떠오르는 라디오 스타, 이장원의 매력은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함에 있다. 아랍 왕자와 사우디 거지를 넘나드는 외모와 상냥함과 느끼함이 공존하는 목소리의 이장원은 본인 위주의 방송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정재형의 사랑스러운 이기주의를 닮았다. 동시에 자신의 멘트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한 큐에 보내는 ‘논리력+순발력’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유희열의 적자이기도 하다. 특히 신재평을 승냥이처럼 물어뜯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동시에 불쌍한 신재평을 보는 여성 팬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팬을 늘리는, 고도의 전략가이기도 하다. 오빠, 나도 좀 난도질해줘요. 하악하악.
루시드 폴
스위스 개그로 학위 딴, 매력 Fall Fall 풍기는 씨에스타 DJ前 104.5 Mhz 월-금 오후 3-4시 EBS 평일 DJ
음유시인 루시드 폴이 고저를 분간하기 어려운 잔잔한 어조로 진행한 은 마치 한낮의 고즈넉한 카페 테라스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방송이었다. 스스로 밝혔듯이 “목소리에 윤곽이 없고 고음부가 선명하지 않아” 방송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항의 문자를 많이 받기도 했지만, DJ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월드뮤직이라 가사도 못 알아듣는 본격 B.G.M 방송이라 아기 재우려는 어머니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한낮의 심야 방송, 낮잠 방송’이었다. 생애 처음 맡은 라디오 DJ임에도 첫 방송부터 조금도 떨지 않고 자연스럽고 능숙한 진행을 선보인 그가 후배 신재평의 DJ 데뷔 방송에 위엄 있는 게스트 겸 조교로 초빙되어 ‘나는 선배다’를 진행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긴장감에 벌벌 떠는 후배 DJ를 갖고 노는데 적극 동참하고 “멘트 하나를 위해 3일을 연습하는 정재형과 달리 나의 모든 스위스 개그는 애드립”이라고 말하며 선배를 디스하는 루시드 폴의 모습은 낯설지만 매력적이다. 오빠, 공연하느라 바쁜 거 알지만 돌아와 주면 전라남도 영광일 것 같아요!
박새별
‘라디오계의 뽀통령’을 노린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라디오의 귀요미
104.5 Mhz 일 오전 11-12시 EBS DJ
91.9 Mhz 수 저녁 8-10시 MBC ‘기타와 피아노와 친한 친구’ 고정 Guest
안테나 뮤직의 선배, 페퍼톤스는 박새별을 두고 ‘여자 정재형’이라고 말한다. 물론 본인은 이에 대해 “정말 정말 기분 나빠요”라고 정색하지만 말이다. 지난 3월, 어린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른에게는 동심을 선물하는 을 통해 라디오 DJ로 데뷔한 박새별은 주 청취층의 연령대가 일곱 살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탓에 상냥하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MBC (이하 )나 MBC 등에 게스트로 출연할 때는 똘망똘망한 그녀지만 안테나 뮤직 선배들의 라디오에서는 오빠들의 애정 어린 갈굼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물론 훈남 아티스트의 집결지, 안테나 뮤직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는 수천만 여성 팬들의 어쩔 수 없는 질투 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새별 씨, 에서는 장동민과 미묘한 러브 라인을 형성하더니 알고 보니 폴님의 애정을 독점하는 분이더군요. 쳇, 부…부러우면 지는 거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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