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하면 멀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친구처럼! 아닌가요?”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이라서 졸다가 깨다가 하며 KBS 을 보고 있다가 인피니트의 리더 성규 군의 말에 소리 내어 웃고 말았습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지 뭐에요. 흔히 아이돌들이 외워서 하는 모범 답안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의아하다는 얼굴로 관객에게 되묻다니 원. 그렇게 한참을 웃게 만들어 놓고는 신곡 ‘추격자’를 들려주는데 세칭 ‘칼군무’가 역시나 멋지더군요. 제 시선은 어느새 성규 군을 ?고 있었습니다. “원래 가족끼리는 그런 게 있잖아요. 청소를 안 해도 봐주기도 하고. 어머니가 대신 해주기도 하고.” 멤버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 한번을 제대로 하는 걸 못 봤다’고 앞 다투어 리더 공격에 나서자 어물거리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일단 노래가 시작되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요. 물론 ‘그녀를 지켜라 날 잊지 못하게’라는 남자 냄새 물씬 나는 가사 때문에 또 한 차례 피식거리며 웃기는 했어요. 그러나 그건 이른바 ‘엄마 미소’였답니다.

선배들 틈에서 귀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하더군요

스스로 진단했듯이 그룹 인피니트의 경쟁력은 친근함, 맞습니다. 아이돌로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상황일지도 모르지만 지난 주 연달아 두 번이나 ‘김종민 같다’는 소리를 들었죠? 에서 유희열 씨가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종민이가 왔나 했어요”라고 했고 KBS ‘불후의 명곡2’에서도 자막이었지만 같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얼마 전 SBS 에 출연해 그룹 내에서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는 하소연을 했을 때만해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돌발 질문이 던져졌기 때문일까요? 레코드판이 튀듯 멍하니 음소거 상태였다가 더듬거렸다가 하는 모습이 과연 비슷하긴 하더라고요. 그러나 제 보기에는 김종민 씨보다는 엠블랙의 이준 군 쪽에 더 가깝던 걸요. 이준 군도 무대에만 서면 눈빛부터 춤사위 하나하나, 사람이 확 달라 보이잖아요. 어쨌거나 지난 주 ‘불후의 명곡2’ 대기실은 처음 출연하는 가수들이 여럿이었음에도 유난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요. 이른바 김종민스러운 화법의 주인공 성규 군의 공이 컸지 싶어요.

Mnet 첫 회 ‘짝 패러디 편’ 자기소개 때 6호돌 호야 군에게서 나쁜 남자로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나름 카리스마를 풍기던 성규 군이 선배들 속에서는 귀염둥이 노릇을 톡톡히 하더군요. 하지만 훈훈한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시종일관 초초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러게요. 왜 아니 그렇겠어요. 그룹에 속해 있으니 완곡을 불러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혼자 무대에 선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부담이었을 텐데요. 이번 ‘양희은 특집’에 참여한 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있어야죠. 위로는 홍경민 씨며 소냐, 케이윌이 버티고 있고 신인이라고 해도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거머쥔 울랄라 세션, 허각 군과 겨뤄야 하는 상황, 그 심정이 어떨지 짐작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게다다 같은 아이돌이라고는 해도 슈퍼주니어의 려욱 군보다는 경력이 워낙 일천하잖아요? 그러니 어느 누구 뒤에 나온대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 신동엽 씨가 노란 공을 들어 올릴 때마다 오죽이나 두근두근 떨렸을까요. 성규 군, 긴장하지말고 차근차근 올라가도록 해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묘합니다. 한번 정이 가고 나니 자꾸만 마음이 쓰이네요. 카메라가 대기실을 비출 적마다 지금 심정이 어떨지 성규 군의 표정을 살피게 되더라고요. 너무나 빤한 조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한 회, 한 회 경쟁보다는 기회로 여긴다면 마음이 한결 편하지 싶다는 말, 이 말이 정답이 아닐까요? 리더임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한 채 몇몇 멤버들의 활약을 뒤에서 지켜봐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그 뒤에 이번엔 버겁다 싶은 큰 숙제가 주어졌네요. 돌덩이라도 얹어진 양 마음이 무겁겠지만 동료 우현 군처럼, 샤이니의 태민 군처럼 한 걸음 씩 또박또박 걷다보면 성규 군 또한 스스로 만족할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미 녹화는 다 끝났겠으나 다음 주 성규 군의 도전 기대하겠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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