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기대 좀처럼 변하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거의 모든 질문에 툭툭 말을 내뱉고 무덤덤하게 말한다. 마치 바위를 마주한 것 같은 인상. 윤제문은 마치 SBS 의 유성준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웃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딱딱하고 강한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고,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스스로 ‘조폭 3부작’이라고 하는 영화 (2006), (2006), (2007)를 통해 “조폭 보다 더 조폭 같다는 말”을 듣게 된 것도 이해가 됐다. 굳고 딱딱한 모습으로 자기 주장을 밀어 붙일 것 같은 고집스런 무소의 뿔. 그게 윤제문의 얼굴이었다.

현장의 느낌으로 시작하는 배우

그러나 윤제문의 힘은 카메라 앞에서 굳은 얼굴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풀 수 있는 유연함이다. 에서 유성준은 유인혜(김희애)와 김도현(장혁) 사이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상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때로는 조폭보다 더 무서운 사업가가 되고, 때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를 이끄는 강력한 힘이었다. 윤제문은 자칫 악역으로만 쉽게 묻힐 수도 있었던 유성준을 다양한 결로 풀어냈고, 김희애와 장혁은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다양한 결을 가진 윤제문의 연기는 그가 “연기론이 없는 게 내 연기론”이라고 할 만큼 유연함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윤제문은 캐릭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밀고나가지 않는다. 대신 촬영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연기를 즐긴다. 에서 유성준이 술에 취해 아버지에게 찾아가 손을 싹싹 비는 동작은 “작가가 써 주는 대로 충실하게” 한 장면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기 도중 “캐릭터에 대해 그려놓지도 않아요”라고 한다. 어차피 현장에서는 느낌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느낌이 받아들여지고 현장성이 살아야 상대역, 연출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게 그의 연기다. 예전부터 연극을 통해 같은 대사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재미를 아는 윤제문에게 연기는 “재밌는 게 연기 밖에 없더라”고 할 만큼 재미있는 것이고, 촬영 현장은 그 재미있는 일을 시작하는 출발선이다. 그는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며 연기하는 대신, 연기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연기를 배워 나간다.

그래서 윤제문은 캐릭터를 자신에 맞춰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냥 ‘그게 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에서 한 때 재벌 아버지의 후계자로 무서울 게 없었던 유성준이 동생인 유인혜 앞에서 비굴해질 때도 윤제문은 “화날 때 소리 지르다가도 나보다 센 놈 앞에서는 비굴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내 안에도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드라마 초반 중국집에서 가족들이 다 모여 있을 때 형 유기준(최정우)에게 소리치는 부분을 꼽았다. “원래 대본에 없던 건데 내 느낌에 현장에서 기준이 말을 하면 성준이가 짜증날 것 같더라”라는 그는 자신을 놓고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힌듯 했다.

“먼 꿈, 그런 건 없다” 바위 같은 얼굴에 숨겨진 물 같은 유연함. 그래서, 그는 반전이 있는 배우다. 에서 그저 악역일 것 같았던 유성준이 다채로운 감정을 보여준 것도, 조연에 그칠 줄 알았던 유성준이 의 중요한 한 축이 된 것도 윤제문이 보여준 반전이다. 하지만 가장 큰 반전은 그가 연기에 대한 꿈은 있어도 욕심은 없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먼 꿈 같은 건 없고 그냥 꾸준하게 작업 해나가는 게 바람이에요” 연기자로서 대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다음 연기를 하고 싶어할 뿐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윤제문은 “나중에 여차여차해서 홍대 인디밴드와 엮여 공연을 하는 9급 공무원”을 연기하는 의 쫑파티로 향했다. 재벌의 아들에서 9급 공무원으로, TV 드라마에서 저예산 영화로. 그는 그렇게 살고, 연기한다. 연기를 언제나 즐거워하며.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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