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가수 윤종신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2017년의 마지막인 12월 31일,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는 엑소 트와이스 워너원 방탄소년단 비투비 레드벨벳 자이언티 아이유 등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가수들이 주를 이룬다. 팬덤이 탄탄한 가수, 특히 그룹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1990년 데뷔한 가수 윤종신이다.

10대들에겐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의 MC로 알려졌을지 모르겠지만, 윤종신은 1990년부터 꾸준히 ‘음악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다르게, 음악을 할 때 그는 웃음기를 싹 뺀 얼굴이다. 진지하고 안주하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2010년 3월부터 시작한 음반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도 그중 하나다. 이를 통해 매달 신곡을 발표했다. 2017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윤종신의 연차가 쌓이고 세월이 흐른 만큼 곡의 깊이도 깊어졌다. 7년 간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간 윤종신’을 통해 윤종신의 지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월간 윤종신’ 커버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 1월~4월 : “창작물은 세로로 줄세우지 말고 가로로 봐달라”

2017년의 시작을 알리며 내놓은 1월호 ‘세로’는 윤종신이 작사, 작곡했다. 피아노 선율이 돋보이는 발라드 곡으로, 오랜 기간 쉼 없이 창작 활동을 해온 윤종신의 속마음이 담겨 있다.윤종신은 “내게 ‘세로’의 이미지는 서열이나 순위인데, 언젠가부터 콘텐츠들도 세로로 움직이는 것 같다. 순위가 매겨지면서 위, 아래가 나뉘고 불필요한 경쟁을 하며 연연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여러 창작자들이 어느 순간 다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일을 한다”고 지적했다.

데뷔 28년 차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지며 발표한 노래다. 그는 “창작물은 가로로 나열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월호 ‘와이파이(Wi-Fi)’는 그룹 블락비 지코와 협업했다. 이별한 남자의 심경을 녹인 곡인데,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부를 부분의 가사를 썼다. 이별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른 두 남자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완성됐다. 평범한 발라드곡이 아니라 전자음을 가미해 색다른 느낌이다. 소리가 뚝뚝 끊기는 부분은 곡의 제목처럼 마치 인터넷 주파수가 멀어지는 것 같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윤종신, 지코의 목소리도 묘하게 어우러져 호응을 얻었다.윤종신은 지난해 12월 방송된 KBS스페셜 ‘앎’을 보고 3월호 ‘마지막 순간’을 만들었다. 삶의 마지막을 맞는 아내, 엄마,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는 “암 투병 끝에 임종을 맞은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가사를 썼다. 나의 엄마, 아내, 연인이 얼마나 강하고 의미 있는 존재인지, 그들은 더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노래의 심오한 내용은 JTBC 음악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훈정, 김현수, 손태진, 이벼리가 불러 더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을 맡은 윤종신은 당시 크로스오버 음악에 매료돼 가창을 부탁했다.

4월호는 ‘살아온 자 살아갈 자’로, 윤종신이 ‘살아온 자’를 자처해 ‘살아갈 자’인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윤종신은 “‘내가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누려야지’가 아니라 ‘그동안 잘 살았으니 배려해야지’가 되면, 살아온 자들과 살아갈 자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윤종신은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소재를 빠른 리듬에 녹여 기성세대와 청년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월간 윤종신’ 커버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 5월~8월 :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어쩜 이렇게 덧없을까?”5월호 ‘여권’은 가수 박재정이 불렀다. 윤종신은 연인과 이별하고 여행을 떠나는 상황을 가사로 지었다. 홀로 남은 남자의 쓸쓸함을 녹인 윤종신은 “박재정은 발라드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상반기의 끝을 장식한 6월호 ‘끝 무렵’은 이별을 예감했을 때 사람들이 갖는 두 가지 감정을 담았다.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악역을 맡기 싫어서 결코 먼저 끝을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 그러다 서로 원망하는 시간, 과거에 매달리다가 문득 관계가 끝났다는 걸 확신하는 순간 등이 이 곡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윤종신은 “사랑이라는 게 당시에는 열렬했는데 지나고 나면 인생의 소중한 추억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이렇게 덧없을까?’라며 가사를 썼다”고 말했다.

7월은 한 여름인 만큼 시티팝(City Pop) 장르의 ‘웰컴 섬머(Welcome Summer)’로 정했다. 시티팝은 19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장르로, 윤종신은 여름 음악 특유의 빠르고 신나는 느낌 대신 설레고 로맨틱한, 꿈결 같은 분위기를 담았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사운드를 살린 8월호 ‘홈 메이드(Home Made)’는 연인을 집으로 초대한 한 남자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노래한다. 윤종신은 그간 ‘월간 윤종신’의 8월호를 통해 ‘Love Scanner’ ‘Age’ ‘사라진 소녀’ ‘팥빙수’ ‘여자 없는 남자들’ 등 실험적인 노래를 만들어왔다. ‘홈 메이드’ 역시 그 연장선이다.



◆ 9월~12월 : “고집과 타협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어요”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이하며 내놓은 9월호 ‘아마추어’는 가수 장재인이 나섰다. 세월이 흘러 계절이 변하듯, 뜨겁게 사랑한 연인과의 이별도 곧 익숙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전자음이 가미된 시티팝 장르의 곡이다. 윤종신은 독특한 음색을 지닌 여성 가수가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장재인을 떠올렸고, 그는 자신의 목소리의 장점을 잘 살렸다.

10월호 ‘나는 너’는 가수 겸 작곡가 이규호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았다. 이규호, 윤종신의 협업은 2012년 ‘월간 윤종신’의 9월호 ‘몰린’에 이어 두 번째다. 어느덧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과거 연인들에게 바치는 노래로, 고상지의 반도네온 연주와 편곡이 더해져 늦가을과 잘 어울리는 탱고풍의 발라드로 태어났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 외에도 올해 자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있는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음악 채널 ‘리슨(LISTEN)’을 통해 지난 6월 ‘좋니’란 곡을 내놨다. 서서히 입소문을 타 음원차트과 음악방송 1위를 휩쓸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멜론차트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1월호 ‘좋아’는 ‘좋니’에 대한 답가 형태의 노래다. Mnet ‘슈퍼스타K7’에 출연한 민서가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를 냈다. ‘좋니’가 연인과 헤어지고 힘들어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면, ‘좋아’는 그런 그에게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답하는 여자의 말이다. ‘좋니’에 이어 이 곡도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윤종신은 2017년 ‘월간 윤종신’의 마지막을 ‘추위’로 장식했다. 직접 작사, 작곡한 발라드 곡으로 노래는 정인이 불렀다. 1월호를 창작자로서의 고민으로 시작했고, 12월호 역시 그들의 애환을 녹였다.

윤종신은 “분야를 떠나 창작을 하고 있는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창작을 하며 겪는 시련과 고난을 겨울의 추위에 비유해 고민과 애환을 생생하게 녹였다”고 소개했다. ‘추위’는 고집과 타협 사이에서 방황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창작자, 윤종신의 이야기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