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퀸이 있었다.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로저 테일러의 드럼, 거기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아담 램버트까지. 그것은 다름 아닌 퀸이었다. 무대 뒤 영상으로 프레디 머큐리가 등장해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에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누군가를 미치게 하고, 누군가를 울게 하고, 누군가를 뮤지션으로 이끈 음악들이 삼태기로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진짜’ 챔피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만한 공연이었다.

퀸은 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슈퍼소닉’을 통해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슈퍼소닉’ 초반에는 현장에 한산했지만, 퀸의 무대가 시작하는 오후 8시 반이 가까워지자 팬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약 1만5천 명이 모였다. 장막이 쳐진 보조경기장에서 귀에 익은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가 살짝 들리자 관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장막이 걷히고 ‘나우 아임 히어(Now I’m Here)’의 기타 전주가 깔리자 감동의 함성이 이어졌고, 그것은 곳 어마어마한 떼창으로 이어졌다.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Another One Bites The Dust)’ ‘팻 바텀드 걸스(Fat Bottomed Girls)’ ‘킬러 퀸(Killer Queen)’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등 히트곡들이 이어지는 장면은 실제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 감동적이었다. 무대 위에 프레디 머큐리는 없었지만,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현장에 모인 모두가 어렸을 때부터 닳도록 들어온 곡 아닌가. 떼창은 기본이었다. 앨범에서 듣던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감동은 배가 됐다. 메이는 젊은이처럼 열정적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특유의 톤을 선보였다. 전체적으로 기타 볼륨이 큰 편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스크린으로는 동전 피크도 보였다.

‘킬러 퀸’에서 아담 램버트는 소파에 누워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퍼포먼스가 정말 대단한 ‘쇼 맨’이었다. 옛 라이브 영상에서 보던 프레디 머큐리처럼 무대 위를 휘젖고 다녔으며 여유로움도 느껴졌다. 소파 위에서 마치 백작부인과 같은 자태로 노래해 페로몬이 흘러나오는 듯 했다. 그런 양성적인 모습이 퀸의 음악과 찰떡궁합을 이뤘다.

브라이언 메이는 우주물리학 박사답게 첫 내한임에도 여러 한국어를 구사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그는 “한국은 너무 아름다운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몇 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한국말로 “함께 불러요”라며 혼자 통기타를 치며 ‘러브 오브 라이프(Love of Life)’를 노래했다. “프레디를 위해 함께 부르자”고 했다. 여기서 요 근래 들었던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떼창이 펼쳐졌다. 그때였다. 스크린으로 갑자기 생전의 프레디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노래하는 라이브 모습이 등장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렇게 프레디와의 합창이 끝나자 브라이언 메이는 한국말로 “기분 좋아요? 나도!”라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아들 루퍼스 타이거 테일러가 함께 세컨드 드럼 주자로 함께 했다. 둘이 함께 드럼 앙상블을 펼친 후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의 베이스 연주가 들려왔다. 이 곡에서 로저 테일러는 아담 램버트와 함께 노래해 마치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빗 보위의 듀엣을 보는 것 같았다. 퀸은 전 멤버가 리드 보컬이 가능한 밴드인 만큼 브라이언과 로저의 노래도 훌륭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 동안 감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담 램버트 덕분이었다. 공연 초반에는 눈앞에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있다는 것, 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단순히 존재감만으로 감동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아담 램버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정말로 훌륭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출중한 보컬을 들려줌으로 인해서 프레디 머큐리의 부재에 대한 걱정을 자연스럽게 떨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보다 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간에 브라이언 메이가 “이 새로운 소년의 노래가 어떠냐?”고 묻자 관객들은 진심으로 함성을 질러댔다.

‘아이 워즈 본 투 러브 유(I Was Born To Love You)’과 같이 보컬의 비중이 큰 곡에서 아담의 활약은 빛났다. 그는 원곡의 드라마틱한 노래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타이 유어 마더 다운(Tie Your Mother Down)’에서는 싱얼롱을 한 후 “미국 관객들보다 한국 관객들이 노래를 훨씬 잘 따라 부른다”며 엄지를 올리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떼창 뿐 아니라 퀸 공연에서 벌어지는 대형 관객 퍼포먼스들도 볼 수 있었다. 가령 ‘라디오 가가(Radio Gaga)’의 ‘올 위 히어 이즈 라디오 가가, 라디오 구구, 라디오 가가(All We Hear is Radio gaga, radio googoo, radio gaga)’ 가사에서는 손을 앞으로 내민 동작과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크레이지 리틀 씽 콜드 러브(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가 나오자 계속 되는 히트곡에 어안이 벙벙했고, 너무 노래를 따라 부른 탓에 목이 아파올 정도였다.

마지막 곡은 모두가 기다려온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였다. 이 곡은 무대 위의 아담 램버트와 영상 속의 프레디 머큐리가 함께 불렀다. 프레디와 아담, 그리고 브라이언 메이 등의 연주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쏟았다. 첨단과학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망자와 산자의 합창은 이날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다.

이날의 떼창은 여느 다른 공연의 떼창과는 느낌이 달랐다. 울음 섞인 목소리, 애틋함이 담긴 떼창이었다. 앵콜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따라 부르고 정신을 못차리던 관객들은 앵콜을 외치는 대신 ‘위 윌 록 유’를 합창했다. 여기에 응답하듯 로저 테일러가 먼저 무대로 나와 베이스 드럼을 쿵쿵 연주했다. 거기에 맞춰 심장도 쿵쾅거렸다. 마지막 곡은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 과장을 더해 오만 번은 들었을 법한 노래이지만, 이날 퀸과 함께 부르는 이 곡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퀸이 마지막 인사를 하자 뒤로 ‘갓 세이브 더 퀸(God Save The Queen)’이 깔리며 애잔함을 남겼다.

‘슈퍼소닉’은 퀸의 첫 내한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도중에 공연장을 잡지 못해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퀸의 공연 하나로 여름 록페스티벌 중 최고의 장면을 만들었다. 퀸의 공연은 무대, 음향, 조명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른 부족한 부분을 상쇄시켜버리는 ‘절대 음악’의 힘은 대단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나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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