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의 김혜은, 그녀가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JTBC 드라마 ‘밀회’ 첫 회, 주인공 오혜원(김희애)의 뺨을 세차게 때렸던 김혜은은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성공했다. 그가 연기한 서영우, 모든 것을 가졌던 여자다. 미모의 재벌2세, 무엇이 부러울까 싶지만 ‘밀회’의 세상에서 까발려진 서영우라는 여자의 인생은 지독하게 불운하고 불행했다. 그 여자의 비극을 연기한 김혜은. 아마도 앞으로 그의 연기 인생에서 ‘밀회’와 서영우는 대표작 그리고 대표 캐릭터로 기록될 것이다.여전히 ‘밀회’를 불륜극으로 치부하는 이가 있을지언정, 많은 애청자들에게는 인생의 드라마로 꼽히는 ‘밀회’가 종영한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종영 이후 마주한 김혜은은 아직도 ‘밀회’ 속에 속했던 순간을 기억하면 가슴이 뭉클한 듯 보였다. 그런 그와 만나 못다한 ‘밀회’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김혜은은 음대 재학 시절 서영우보다는 오혜원에 오히려 가까웠다고도 했다
Q. 우선 ‘밀회’에 합류하게 된 과정부터 들려달라.김혜은 : 안판석 PD님께서 미팅을 제안하셔서 하게 됐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나를 보고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그러나 처음 제의 하셨을 때는 역할이 서영우가 아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게 될 줄도 몰랐다. 다만, 안판석 PD님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6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었고, 꼭 이 드라마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던 미팅이었다.
Q. 결국 서영우가 된 것은 김혜은에게서 그녀의 어떤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까.
김혜은 : 만약 내게 그런 이미지가 없었다면 캐스팅 자체가 안되었겠지. 그렇지만 내가 안 PD님의 머릿속을 다 알 수 있는 노릇은 아니다. 연기할 때는 대본에 충실했었고, 최대한 상상력이나 내가 가진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을 동원해서 서영우를 표현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서영우와의 접점이 그닥 없는 것 같다.Q. 당신과 전혀 다른 서영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상상을 했나.
김혜은 : 서영우의 외로움과 상처. 성숙(심혜진)을 만날 때, 준형(박혁권)을 만날 때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결핍이 있는 캐릭터였다. 사랑의 결핍. 애정의 결핍 말이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여자라, 애정을 구걸하는 수준도 보여준다. 마지막 회 우성과의 육탄전 신에서는 어리석게도 돈을 주고라도 그의 사랑을 샀음에도 배신을 당하는 여자의 덧없음과 감정적 결핍이 사실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도 완전히 이성을 잃고 싸웠다. 나중에 보니까 정말 내가 휘청거리면서 연기를 하고 있더라. 이외에도 혜원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혜원보다 더 가졌음에도 늘 아버지(김용건)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컴플렉스도 있는 그런 여자라고 생각했다.
Q. 그런가하면 그 육탄전 장면 뒤로, 남편(장현성)의 말에 상처입는 모습도 안쓰러웠다.
김혜은 : 그렇다. 만약 남편이라도 영우에게 조금의 관심을 보였더라면 영우는 아마 남편에게 더 잘하지 않았을까. 애정결핍인 사람들이 원래 조금만 잘해줘도 확 빠져버리니까. 그런데 영우의 세계에서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실속을 위해 머리 굴려가며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편은 그런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인간이었다.
김혜은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다. 클래식계를 다룬 ‘밀회’는 그녀가 이미 경험한 세계이기도 하다
Q. 1회 변기 신을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물론 화장실에서 싸우니까 변기였겠지만, 새삼 왜 변기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상류세계의 굉장히 추악한 이면을 상징하는 거겠지.김혜은 : 그 생각은 나도 미처 해보지 않았는데, 마작을 하는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은 화장실이었고,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추악함이 곧 변기 육탄전 아니었을까. 굉장히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인 설정이다. 사실적이면서 드라마틱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 신을 이야기하나보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영우의 대사는 서로를 끌어 안는 선재(유아인)와 혜원(김희애)를 보고 ‘진짜 좋아하나봐’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김혜은 : 서영우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장면이었다. 짧은 대사 한 마디에서 ‘누구를 진짜 좋아해보는 것’을 보고 마냥 부러워하는 영우의 마음이 담겼다. 그 대본을 보면서 서영우의 결말이 참 슬프더라. 결국, 영우는 참된 사랑을 못하고 말았으니까. 여하튼 서영우의 허탈한 인생 전체가 그 대사에 녹아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성주 작가님은 글을 참 잘 쓰신다.
Q. 100% 동의한다. 너무나 사실적인 표현 탓에 혹시 정성주 작가가 ‘정말로 이런 사랑을 해보진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
김혜은 : 작가님의 인생을 알지 못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처절함이 본인의 인생에 있었기에 그 처절한 대사들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대사들, 어찌나 주옥같던지. 평상시 인문학적 소양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자기성찰과 관련한 경험이 없다면, 회개나 반성 등으로 삶을 돌이켜본 경험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대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Q. 정성주 작가를 직접 만났을 것 아닌가. 어떤 인상을 받았나.
김혜은 : 대본 리딩 때와 종방연 때 그렇게 만났고, 나머지는 작품으로 만나 뵌 것이 전부다. 대본을 받을 때마다 깜짝 놀랐다. 이런 인간성찰의 드라마가 있었나 싶었다. 또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음악도 대단했다. 대사에도 ‘음악이 갑이다’가 나오는데, 음악의 위대한 힘을 알지 못하면 결코 쓸 수 없는 드라마였다. 또 인간의 더러움의 끝을 보지 못했더라면 결코 쓸 수 없는 대사들이었다. 실제로는 굉장히 여리여리하신데, 그 안에 내제된 에너지, 삶에 대한 통찰력, 좀 더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누구보다도 강한 분 같았다.
김혜은,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제라도 ‘연기가 갑’인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Q. 안판석 PD와는 첫 만남이었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다들 팬이 되고 말더라.김혜은 : 안판석 PD님의 리더십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어느 감독도 자기 스태프들을 저만큼 아끼고 배려하고 존중해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 스태프들도 프로의식이 강하다. 현장에서 다 날아다닌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일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늘 생각했었으니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다. 잊을 수 없는 작품이고, 팀워크였다.Q. 김희애 씨는 학창시절 순수하게 작업했던 순간이 떠오른다고도 하더라.
김혜은 : 맞다! 마치 연기 스터디 한 것 같다. 그리고 ‘밀회’에는 단역인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대단한 연기자였다. 언젠가는 다 빛을 발할 배우들이다. 연기 구멍이 없었으니까. 정말 나만 잘하면 되는 드라마였다. 그런데 참, 감독님은 언제 그런 배우들을 다 봤을까.
Q. 클래식 계를 다룬 이 드라마를 하면서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라는 점이 유독 부각이 됐다. 전공자로서 제작진들이 펼쳐보인 음악세계는 어떻던가.
김혜은 : 일단 이만큼의 훌륭한 작가님, 감독님은 예술가적 성향이 없을 수가 없다. 특히 감독이라면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을 리 없다.그래서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또 두분이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는 드라마를 통해 이미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Q. ‘썰전’에 출연해 실제 학창시절 직면한 클래식계의 비리에 대해서도 언급했었다. 정말로 그것이 음악을 포기한 이유인가.
김혜은 : 왜곡이다. 내가 음악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도 왜 이야기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재능의 한계 탓이다. 언론이 그것을 퍼나르는 과정에서 왜곡됐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 한계 때문에 그만둔 것이지, 내가 재능이 있으면서 주변 세계 때문에 그만둔다? 말이 안된다. 다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는 과정에서 학생인 내가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 정의롭지 못한 부분을 많이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클래식계 사람들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것이다.
Q. 우문이겠으나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정말 ‘음악이 갑인가’.
김혜은 : 음악이 갑이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연기도 갑이다. 그것은 진실이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음악이 갑이다’라는 대사는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나 역시 같은 의미에서 스스로를 북돋았다. 내 연기가 비록 갑은 아니지만, 연기가 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알고 있기에 전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음악도들이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밀회’ 김혜은은 이 작품이 자신과의 밀회였노라고도 말했다
Q. 연장선상에서 묻겠다. ‘밀회’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돌이키게 됐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김혜은 : ‘밀회’를 하면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내 스스로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돈이 답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답을 내는 사람에게 어찌 아니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내린 결론이 그것인게.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에서는 돈도 명예도 사회적인 지위도 답이 아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연기였다. 그 가치를 일찌감치 발견했기에 이제까지 올 수 있었고 아무도 몰라주지만 계속 파이팅 할 수 있었다. ‘밀회’를 하면서 나와의 밀회를 하게 되었는데, 연기하기 참 잘했다 싶었다. 또 이런 좋은 드라마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이 내게 큰 위로가 됐다. 내게 ‘밀회’는 일종의 바이블과도 같았다. 정말이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의 죄, 욕망에 관한 이야기, 또 욕망으로 사로잡힌 사람들. 다시 한 번 이런 드라마에 참여한 것이 뿌듯하고 감사하다.
Q. 고백하는데 마지막 회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안판석 PD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김혜은 : 나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안 감독님께, 희애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Q. 사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좀 오글거리기도 했다.) 나는 이 순간을 참지말자 했다. 이런 감동적인 순간을 참지 말고 감사를, 내 마음을 표현하자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왜곡되니까. 표현을 자제하고 시간을 보내면 감정이 희석되지 않나. 그게 아싸워서 문자를 보냈다.
Q. 참, 박혁권 씨는 역시 안판석 PD와 함께 했던 ‘하얀거탑’ 이후 한 동안 후유증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런 증세는 혹시 없나.
김혜은 : ‘밀회’라는 대본을 받는 그 순간, 바로 ‘이 드라마 끝날 때 나는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했다. 찍기 전부터 이 드라마 끝나면 어떻게 살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연막을 쳤다. 그래도 아쉽다. 이런 드라마 과연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런데 박혁권 씨가 그러더라. 자신 역시 ‘하얀거탑’ 이후 ‘밀회’를 만날 수 있었다고.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