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잘 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잘 돼보니까 드는 생각인데…. 나름대로 원치 않던 목표까지 가보니 잘 될수록 고통도 컸어요. 새로운 것을 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면서 욕 안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차라리 중간만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이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제 이야기는 뭐냐면, 구차하게 되지도 않는데 억지로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이젠 춤 잘 추는 후배들도 많잖아요. 운동선수도 20대 지나면 꺾이는데…”(2013년 1월 26일 기자회견 中)
지난달 26일 제대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 비(정지훈)는 조금 초조해보였다. 제대 후 새 앨범으로 돌아오기까지 한시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기 때문일까? 3년 9개월의 공백을 깨고 정규 6집 ‘레인 이펙트(Rain Effect)’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걱정이 조금 앞섰다. 조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론은 그의 적이었고, 언론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비의 한 측근은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을 맡아서 이미지 변신을 하고 가수로 컴백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말하기도 했다.1월 2일 새 앨범을 공개했을 때 음원차트 정상은 비의 것이 아니었다. ‘써티 섹시(30 Sexy)’, ‘라 송(La Song)’은 10위권에 겨우 턱걸이했다. ‘뮤직뱅크’에서는 역대 최저 음원점수로 1위에 올랐다. 아쉬운 성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라 송’이 중독됐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태진아의 무대 영상에 ‘라 송’을 입힌 패러디물이 돌기 시작했다. 이것이 화제가 되면서 ‘라 송’의 음원 역주행 현상이 일어났다. 급기야 비진아(비+태진아)는 순위프로그램에서 합동무대를 갖게 됐고, 이것이 비에 대한 이미지를 호감 형으로 바꿔 놓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비는 예정됐던 미국 스케줄 전까지 꽤 성공적으로 음반 활동을 마무리하게 됐다. 천운이었을까?
이번 비의 컴백은 생각보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는 보아, 세븐과 함께 1세대 아이돌 솔로가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한때 정점을 찍었다. 비가 ‘나쁜 남자’로 데뷔한 2002년은 음반시장이 붕괴해가던 시기다. 가요계가 아이돌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노래보다는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그 시기에 비는 스타덤에 올랐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비에 대해 “스타는 있는데 노래는 없던 시대의 대표 아이콘”이라고 했다. 이 말처럼 비가 최고의 스타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의 히트곡을 하나 대보라면 딱히 떠오르는 대표곡이 없다. 그런 그가 제대 후 과거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주목해볼만한 문제였다. 아이돌 출신 가수 수명의 가늠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비가 상징적인 이유는 더 있다. 그는 지금의 아이돌그룹에게서 일반화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공식을 체계화시킨 존재이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먼저 유명세를 떨친 후 가수로 성공하고, 이어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도 인정받은 후 드라마, 노래를 통해 한류로 진출하는 ‘아이돌 소비양식’을 실체화시켰다. 기존의 아이돌 팬덤이 10대에 머물렀다면 비는 20~30대 여성들에게까지 매력을 어필했다. 물론 이런 성공 뒤에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있었다. 비는 박진영의 페르소나였지만, 박진영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비가 다른 아이돌가수와 다른 점은 뭐였을까?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에서 “빈약한 출신 배경과 아이돌스럽지 않은 신체(큰 키와 작은 눈)가 역설적으로 비라는 스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진정성의 원천이 되었다”며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라고 썼다. 여성들은 무대에서 옷을 찢어재끼는 비, 드라마 ‘풀 하우스’에서 귀여운 비에 똑같이 열광했다. 신 교수는 책에서 “비의 신체가 특별했던 것은 그가 체현한 모호하고 양가적인 섹슈얼리티 때문이었는데, 이는 예쁘장한 소년과도, 마초적인 남자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의 섹슈얼리티는 ‘소년의 얼굴을 가진 남자의 신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지금의 비는 어떠한가? 그의 얼굴에서 소년이 느껴지는가? 사실 과거의 매력은 제대 후 한풀 꺾였다. 가요계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비는 우리 나이로 서른셋이 됐다. 데뷔 12년차. 이제는 무대 위 표정에서도 나이든 티가 난다. 음악은 어떨까? 나이 때문인지 새 앨범 ‘레인 이펙트’에서는 과거와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다. 음악적으로도 전작보다 나은 완성도를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서티 섹시’ ‘라 송’에서 알 수 있듯이 안무는 격렬함보다는 느낌을 살리고 있으며, 음악은 전에 비해 성인 풍이 물씬 풍긴다. 마치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섹시 백(Sexy Beck)’을 통해 어린 티를 벗은 것처럼 말이다.
‘라 송(LA Song)’에서는 마치 리키 마틴과 같은 라틴 댄스를 선보이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이 곡은 월드컵을 겨냥해 만든 곡으로 비에게 그다지 어울린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이슈를 타면서 비를 되살려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재밌는 세상이다. 비는 참으로 힘들게 대중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차기 활동에 동력을 얻었다. 이대로라면 서른 중반까지 충분히 댄스가수로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박진영처럼 마흔이 넘어서도 무대에서 계속 춤을 출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사진제공. 큐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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