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
탕!탕!탕! 적막한 촬영현장에 묵직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촬영화면을 지켜보던 민진기 감독은 “아이, 진짜!”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총소리 끝나고 다시 갈게요”라는 말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았다. 드라마 촬영과 동시에 진행되는 사격훈련이라니. 실제로 군부대 안에서 촬영이 진행되기에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지난 16일 tvN 〈푸른거탑〉의 18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경기도 양주의 모 군부대 촬영현장, 막사 안은 성큼 다가온 초여름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30명가량의 제작진들이 빽빽이 들어선 좁은 복도엔 잘 익은 고구마 향을 닮은 땀내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작년 tvN 〈롤러코스터〉의 코너로 방영되었던 푸른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지난 1월 23일 독립 편성의 쾌거를 이루며 순항 중이다. ‘국내 최초 군 시츄에이션 드라마‘를 표방하는 〈푸른거탑〉의 인기요소는 두 가지다. 소품·상황·캐릭터 설정에서 타 프로그램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디테일과 군 생활에서의 미묘한 감정선을 능청스럽게 재현해내는 배우들의 호연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배우들 모두 방송생활 10년을 넘긴 중고신인들이다. 그래서 일까. 그들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푸른거탑〉의 이면엔 군필자만이 할 수 있는 연기와 팀워크가 녹아있었다.
촬영현장
“너 오늘 분장이 좀 빠져보인다?” 촬영을 준비하는 김호창에게 김재우는 군대식 말투로 농담을 건낸다. 카메라가 꺼진 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배우들의 모습은 실제 군대 생활관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발 뻗고 누운 최종훈과 침상 끝에 걸터앉은 김재우, 그리고 전투복 매무새를 가다듬는 백봉기까지, 모두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나누는 대화 내용도 군대 이야기 일색이다. 김재욱이 “난 분대장 달았는데도 축구 못한다고 엄청 깨졌어”라는 말로 포문을 열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의 무용담을 쏟아 냈다. 단순히 촬영 때만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짧게 깎아 올린 머리와 어느새 몸에 익숙해진 군복은 그들의 몸과 마음 모두를 각자의 군 시절로 되돌려놓았다.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군필자이기에 가능한 디테일도 돋보였다. 총기 손질을 하며 사격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신에서 미술팀이 준비한 사격표적용지를 보자마자 민진기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 영점사격용 말고 북한군 표적있자나, 그걸로 가야돼지 않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술팀 스태프는 눈썹이 휘날리게 막사복도를 뛰어가더니, 이내 북한군 표적을 구해왔다. 촬영진의 찰떡같은 호흡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실제 군생활관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촬영엔 소품의 디테일도 살아있었다. 관물대 곳곳에 붙은 걸그룹 사진이나, 적당히 사용한 흔적이 남은 세면도구·화장용품들은 부러 꾸며낸 흔적이 없었다. 소품의 디테일이 좋다며 미술감독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수줍은 미소를 띄우며 “저도 군필자니까 생각을 많이 했죠. 그냥 아무거나 갖다 놓을 수는 없어요. 군대갔다온 사람들은 딱 보면 알거든요”라고 답했다. 괜히 ‘리.얼.하.게.보.여.주.마!’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이 아니었다.
촬영현장
빈틈없이 잘 짜인 판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정도 대단했다. 볼을 꼬집힌 후의 신을 준비하는 김호창에게 이용주가 스윽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거 볼 꼬집힌 건데 좀 빨갛게 칠하는 게 디테일이 살지 않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의견을 내는 배우들을 보니, 〈푸른거탑〉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영창을 갔다가 돌아온 최종훈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듯 매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TV 테이블 모서리에 실제로 부딪히는 연기를 십여 차례 반복하면서도 표정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횟수를 거듭함에도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열연하는 그에게, 민진기 감독은 “좋훈이형 연기 좋아! 굿! 굿!”하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열정이 넘치는 건 배우들뿐만이 아니었다. 민진기 감독은 생활관 밖 한편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다가도 순간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배우들에게 직접 연기를 몸으로 재현해 보이며, 넘치는 연출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촬영이 진행되는 막사 바로 옆에선 여느 때와 같이 사병들의 일상이 이어졌다. “하이! 액션!”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고요한 막사 안엔 민진기 감독의 외침이 메아리쳤고, 어느덧 진짜 군인이 되어버린 배우들은 그렇게 부대 속 풍경에 녹아들고 있었다.
글, 편집.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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