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잔잔한 롤러코스터.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5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2005년에 만나 이듬해 첫 데모 앨범 를 냈을 때만 해도 오디션에서 여러 차례 탈락했던 그들은 2007년 첫 EP 앨범 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1집 앨범 는 리스너들의 입소문만으로 무려 3만장(2009년 기준)이 판매되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1집 발매 후, “취향 차이”로 인해 계피(보컬)만 소속사에 남고 덕원(보컬, 베이스), 류지(드럼), 잔디(키보드), 향기(기타)는 자체 레이블인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만들어 독립했다. 동시에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앨범 발매나 추후 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만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지난 10월 25일 발매된 2집 앨범 은 브로콜리 너마저가 다시 오르막길을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우리 페이스를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던 그들은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지난 달 29일부터 3일 동안 단독 콘서트를 했다. 2집 발매 후 첫 무대였는데, 어땠나.
덕원: 음반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연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앨범을 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2집 앨범에 있던 사운드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엔지니어와 세션 연주자까지 불렀다.
향기: 공연 후반부에 타이틀곡 ‘졸업’을 연주했다. 연주자와 관객들 모두 서서히 감정을 쌓아온 상태에서 그것들이 맞부딪히다보니 감정이 고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디: 실제로 향기는 울었다. (웃음)
덕원: 앞으로도 ‘졸업’을 부를 땐 감정이 울컥하지 않을까? 안 그러면 슬플 것 같다.

류지는 단독 콘서트를 끝내고 본인 트위터에 ‘문명5를 해볼까’라고 썼다. 문명하셨습니까? (웃음)
일동: 아하하하하
류지: 그날 딱 6시간 한 게 전부다. 막상 해보니까 소문처럼 확 중독되는 것 같진 않던데.
잔디: 이게 패턴이 뻔해서 처음에는 중독되다가 또 쉽게 빠져나온다고 하더라.

“KBS 심의에 걸려 진짜로 본격 록밴드가 된 기분이다”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지난 9일 KBS 녹화 때, 앙코르곡으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故 이진원)의 노래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잔디: 녹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못 불렀다.
덕원: ‘행운아’를 부를 생각이었고, 사실 멘트까지 준비했다. (웃음) 동시대에 그 분의 음악을 듣고 또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으로서 나는 너무 행운아고, 이걸 관객들과 함께 듣고 기억하면서 당신을 행운아로 만들어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향기: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트위터 타임라인에 부고소식이 도배가 됐는데,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 전에는 앨범이 나오든 어떤 노래가 있든 관심이 없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주목을 받는 게 씁쓸하다. 지속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데, 인디 음악계나 대중들이 너무 감정적인 방향으로 쏠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무대에서 타이틀곡 ‘졸업’도 안 불렀더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
류지: 감정을 많이 들여야 되는 곡이라 내가 반대를 했다.
잔디: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방금 인터뷰 오는 길에 그 노래가 KBS 심의에 걸렸다고 들었다.

아니, 왜? (웃음)
향기: 선정적이라고. 하하하.
덕원: 그렇다고 가사를 수정할 마음은 없다.
향기: 진짜로 본격 록밴드가 된 기분이다. 뿌듯합니다. (웃음)

그 곡을 만들면서 ‘혹시 이 곡이 심의에 걸릴까’라는 생각을 했나.
잔디: 올해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면서 약간 진지하게 걱정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덕원: 아무래도 ‘미친 세상’이라는 가사가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졸업’을 이번 앨범의 타이틀로 정하게 됐나.
덕원: 곡을 쓸 때는 몰랐는데 다 만들어놓고 보니까 우리가 20대를 보내면서 했던 고민들이었다. 그걸 다 포괄하는 단어가 뭘까 라고 생각해보니 졸업이었다. 졸업이라는 게 성장의 단계인데, 보통 그런 과정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잔디: 입학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위로가 되지 않는 아픈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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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발매 이후 보컬 계피가 빠졌고, 자체 레이블인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성장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을 겪는 건 어땠나.
덕원: 많은 분들이 계피가 탈퇴했다고 생각하시는데, 정확히 말하면 우리 네 명이 회사를 나온 거다. 정말 나이브하게 얘기하면 취향 차이 때문이다. 1집도 거의 우리 넷이서 만들었다. 우리는 1집 이전부터 록킹한 느낌을 유지해왔는데, 회사는 여성 보컬 위주에 가벼운 톤을 요구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독립 후에도 꾸준히 곡 작업을 했지만, 밖에서는 활동을 무기한 연기한 거냐 혹은 아예 밴드가 해체된 거 아니냐 등의 소문들이 많았다.
덕원: 그런 말이 한 번 퍼지면 잡는 게 어렵다. 그렇다고 매체를 통해 반박하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 아닌 음악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멤버들이 주5일제로 합주실에 모여 작업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나 ‘마음의 문제’처럼 유독 말, 진심을 이야기하는 곡들이 많다. 앞에서 언급했던 경험들이 반영된 건가.
덕원: 사실 외적인 자극이나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쓰진 않는 편이다. 좀 더 단순하고 이성적인 부분을 많이 건드린다. 사람이 헤어지고 관계가 끝나고 돌이킬 수 없는 그런 비가역적인 상황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간결하게 쓰고 싶었다. 그런 말일수록 엄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이 말을 이렇게 하면 오해하지 않을까 이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결국 제일 안쪽에 있는 말을 하게 되더라.
향기: 빼면 뺄수록 감정이입이 더 잘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는 ‘위로의 노래’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덕원: 그렇게 불리는 게 사실 부끄럽다. 위로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위로가 되지 않는 아픈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이 각자의 행복을 찾게 되면 그런 감정들을 잊고 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불편하고 힘드니까 깊숙이 넣어놓고 싶은 건데, 불편하더라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도 위로할 수 없는 먹먹함 자체를 얘기하는 곡이다.

가사를 쓸 때 최대한 덜어내는 작업을 한다면, 그 위에 사운드를 입히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덕원: 기본적인 노랫말과 길이를 최소한으로 가늘게 만들어오면 그걸 가지고 다 같이 달린다.
잔디: 덕원오빠가 곡을 만들어 와서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만 어떤 감정이나 스타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굳이 그걸 토론하지도 않고.
덕원: 최소한의 상태에서 출발하더라도 운율감이나 리듬감은 있으니까 그걸 서로가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그게 생각보다 웬만큼 맞다.
향기: 몇 년 동안 밴드를 함께 해 온 시간의 힘이다.

‘환절기’는 메인 리프만 던져놓고 즉흥연주를 통해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런 조율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즉흥연주라는 실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건가.
덕원: 평소보다 최소화된 멜로디에서 각자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 과정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리프를 반복하면서 계속 변주를 할 수 있으니까. 한 명이 변주하면 거기에 맞춰서 계속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잔디: 되게 재밌었다.
향기: 정신차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고. (웃음)

마지막 히든트랙은 여러 명이 ‘다섯 시 반’을 함께 부른 것 같던데.
잔디: 지난 9월 상상마당 공연에서 관객들이 따라 불렀던 걸 녹음했다.
덕원: 처음 들려드린 곡이었는데 따라 부르시더라.
류지: 그 때 울 뻔했다.
향기: 너무 노래를 잘하시더라.
잔디: 음정 박자 다 정확하고.
덕원: 왜 나보다 관객들이 노래를 잘 부르는 거지? (웃음)
향기: 분위기가 되게 따뜻했다.

“앵콜곡으로 무조건 ‘앵콜요청금지’를 부르는 것도 웃기는 것 같다”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인디 10│⑪ 브로콜리 너마저 “1집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덕원이 메인 보컬로 앞에 나서고 류지가 함께 노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이렇게 달라진 작업방식은 어땠나.
류지: 음… 아무래도 원래부터 노래를 쭉 해온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일단 화려하게 부를 수 있는 보컬은 아니니까 최대한 편하게 부르려고 했다.
향기: 우리 밴드에서 막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신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덕원: 곡 뒤로 숨는 것 같다.

다들 남 앞에 나서거나 튀고 싶어 하는 성격이 아닌 것 같다.
향기: 나는 기타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솔로타임을 제일 싫어한다. 보통 기타리스트는 밴드 앞에 나와서 화려한 기교 보여주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타임이 없으면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다. 근데 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덕원: 다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냥 각자의 감성을 가지고 노래한다. 그게 우리의 장점인 것 같다.

각자의 감성을 모아담은 2집 앨범을 대중들이 어떻게 들어줬으면 좋겠나.
덕원: 1집을 들을 때보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퍼지는 것도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
향기: 많은 사람이 듣는 앨범보다는 여러 번 듣는 앨범이 됐으면 좋겠다.
류지: 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듣는?
일동: 아하하하하하.
향기: 그것은 베스트!
덕원: 그래, 희망은 넓게 가져야지.

마지막 질문이다. ‘앵콜요청금지’는 언제쯤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덕원: 안 그래도 공연할 때마다 그런 요구를 많이 받는데, 그 곡을 발표했을 때와 지금의 세션 구성이 달라서 연습을 안 해놓은 상태다.
향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곡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금 시기를 보고 있다.
덕원: 이번 단독 콘서트 마지막 날에도 모든 앙코르가 끝났음에도 이 곡을 불러달라고 하시더라. 이렇게 극한까지 요구받으면 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결국 ‘아, 아니야’라며 접는다. 사실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무조건 ‘앵콜요청금지’를 부르는 것도 웃기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만든 최고의 히트곡이긴 하지만! (웃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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