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유준상을 만나기 전 이런 고민을 한 것은 결코 인터뷰를 위한 주제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영화 와 를 거쳐 현재 뮤지컬 에 출연하며 본인의 말대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과연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인터뷰 안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모든 작은 물줄기는 결국 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로 시작한 대화는 결국 영화 뿐 아니라 그의 연기관 전체를 아우르는 배우 유준상의 이야기로 소급했다. 다음은 그 하나씩의 물줄기가 모여드는 과정의 기록이다.

어제 새벽까지 OST를 녹음했다고 들었다. 피곤하겠다.
유준상 : 그렇긴 한데, 원래 평소에도 새벽 4시 쯤 잔다.

정말?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나.
유준상 :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미디나 피아노로 음악 만들기도 하고, TV도 보고. 그러다 아들 학교 보낼 때 한 번 깼다가 한 두 시간 더 자고. 보통 대여섯 시간 정도 자는 거 같다.

“공연 할 때는 재밌으니까 노는 거 같다”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최근 영화 와 , 뮤지컬 까지 소화하고 있는데 그 정도 강행군에 잠도 부족하면 많이 피곤하지 않나.
유준상 : 지금 많이 쉬고 있다. 공연이 많지 않아서. 하하하하. 사실 공연할 때가 쉬는 거다. 일단 재밌으니까 노는 거 같다.

하지만 이번 의 앤더슨 역할은 다른 역할에 비해 자신의 욕망을 확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 오히려 연기하기 어려울 거 같던데.
유준상 : 어렵다. 많이 어렵지. 하지만 어려운 만큼 재밌고. 뮤지컬을 보면 알겠지만 극의 흐름을 계속 이어주면서도 앤더슨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재밌다. 또 앤더슨이 살인마 잭을 잡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해 장미를 폴리에게 줄 때 관객들이 “그럼 폴리 죽는 거야? 어떡해!” 이런 걸 보는 것도 재밌고. 진짜 몰입해서 보시는구나 싶어서.

그렇게 다니엘이나 잭, 먼로 등에 비해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인데, 그럼 과연 앤더슨은 무엇으로 움직인다고 보나.
유준상 : 처음에는 살인범을 잡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가다가 나중에는 돈 때문에, 코카인 중독 때문에 흔들리는데, 앞이 안 보이는대로 무턱대고 가는 그런 사람인 거 같다. 앤더슨이 부르는 노래 중에 ‘도망갈 곳 없어 걷고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그냥 걷는 거 같다.

앞서 말한 부분 외에도 앤더슨이 마음에 드는 이유가 있다면.
유준상 : ‘회색 도시’를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그 장면이 들어가면서부터 앤더슨이 왜 고민하고, 왜 이 사건을 파헤치는지 느낌이 사는 거 같다. 그 장면 생기면서부터 좋았다. 그리고 나중에 과거 연인이었던 폴리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나. 노래 아닌 대사로 디테일하게. 뮤지컬에서 그런 연기를 할 작품이 별로 없다. 비록 짧은 대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디테일한 표현을 찾아보고 싶었고, 어디까지 스스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나 보고 싶었다.

“무대에선 감이 떨어지면 큰일 난다”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유준상│“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1
그것은 배우 유준상이 앤더슨에게 입힌 것일까.
유준상 : 뮤지컬을 하며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연극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를 뮤지컬에서도 보여주는 거다. 연극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 볼 수 있는 디테일이 있는데, 대극장 뮤지컬 무대에선 디테일한 것도 없어지고 동작만 커진다는 얘기가 듣기 싫었다. 이번 의 경우, 폴리가 ‘사랑해 정말’이라고 할 때 눈물을 흘리고, 나중에 폴리 이름을 외칠 땐 눈물 콧물 다 흘린다. 그런데 사실 대극장이라 멀리서 보면 이런 디테일이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디테일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하는 공연에선 어떻게든 그런 걸 하려고 한다.

혹 연극으로 데뷔한 영향이 있는 걸까.
유준상 : 그건 상관없는 것 같다.

그럼 처음 뮤지컬을 할 때부터 그랬나?
유준상 : 그랬던 거 같다. 의 대니 역을 맡았을 때, 왜 예전 대니들은 폼만 재는 걸까 싶었다. 그건 외국 대니이지 않나.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니는 어떡해야 하나 싶어서 폼 잡는 걸 빼고 좀 재밌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렁뚱땅한 그러면서 재밌는 대니를 만들었다.

그건 본인의 감수성 때문인 것 같나, 아니면 일종의 연기관인 건가.
유준상 : 그건 모르겠고, 그 순간 느끼는 것 같다. 대니 역을 처음 할 때도 자료를 안 봤다. 따라하게 될까봐. 그러면 재미없을 거 같고. 그래서 다른 대니를 만들어본다고 했고 연출님도 오케이해서 그런 과정들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 게 쌓여가면서 아까 말한 것처럼 연극에 던져도 손색없을 디테일한 요소들이 점점 생긴 거지.

배우로서의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뮤지컬 자체가 변화하길 바랄 수도 있겠다.
유준상 : 크게 보면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을 움직이길 바란다. 물론 노래로 움직이게 해야 하고, 그래서 노래 훈련을 계속하는 거지만 그렇게 움직인 다음에 정서적인 부분을 자극할 땐 연기적인 것과 작품 전체적 요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걸 하고 싶다. 그러려면 내 역할을 잘해야 하는 거고, 다른 배우들도 잘해야 하고, 또 연출이 잘 만들어 가야 하는 거고.

그건 전체 그림을 본다는 건데, 처음부터 그런 눈이 있었던 것 같나.
유준상 : 뮤지컬 을 할 때, 어느 날 저 멀리서 내가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연기를 하는데 또 다른 내가 그걸 보는 느낌. 순간 스친 기분이었는데 혼자만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전체가 있는데 내 연기에만 매달려서 작품과 상관없는 것들을 하면 아무리 웃겨도 작품을 망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객이 웃어준다고 그 줄을 탁 넘어버리면 그 순간만 웃어주지 끝나면 냉정해진다. 그런데 관객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 줄까진 안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슬쩍 관객을 움직이게 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무대에서만 십 몇 년 동안 있으며 항상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재밌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아, 이거 오늘은 반응 안 나와, 그러면 바로 몸에서 그걸 바로 접는다. 그러다 반응 오면 조금 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가고. 커튼콜과 마찬가지다. 커튼콜에서 마음껏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인사할 거 다 하면 그 순간에는 다들 ‘와!’ 할지 모르지만 거기서 끝이고 나중엔 다시 안 온다. 할 거 딱 하고 들어와야 여운이 남지. 그런 리듬 템포를 잡아야하고 그래서 감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한다. 감이 떨어지면 큰일 난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