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방송가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월드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월드컵을 보기 전에 그만큼이나 치열한 수목 드라마의 경쟁을 보고 있다. KBS , MBC , SBS 는 같은 날 시작해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시청률, 배우들의 연기력, 완성도 등 세 작품에 대한 비교가 끊임없이 이뤄진다. 각각 충분히 화제작이 될 요소를 담고 있던 세 작품이 동시에 방영을 시작한 것은 지금 한국 드라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 세 작품을 아직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또는 세 작품을 비교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10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기다리기 전까지 읽으며 웃을 수 있는 픽션 하나를 준비했다.

대길이는 죽었다. (KBS ) ㅅㅞㅂ은 횡단보도에서 유경이와 키스를 했다. (MBC ) 세경이는 시간을 멈춰 버렸다. (MBC ) 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도 드라마의 시간은 여전히 간다. 특히 수요일과 목요일, 같은 날 같은 시간 시작한 , , 는 최근의 온갖 사회적 이슈들 속에서도, 혹은 방영 첫 주 예능 프로그램 결방이라는 뜻하지 않은 지원을 받으며 숱한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 작품에는 복귀하는 톱스타가 있고, 능력을 검증받은 배우와 제작진도 있으며, 동화 의 이야기를 뒤집는 독특한 설정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어떤 흐름이 있다. 방영 첫 날 무슨 드라마를 골라야할지 모를 시청자들의 두근거림,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집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기자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이야기들.

세 개의 드라마, 세 개의 시간
수목 클리닉│오늘 밤에 뭐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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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이 시작하면 왁자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이 세 작품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작품들 앞에는 KBS , MBC , MBC 이 있었다. 는 사극의 세대를 구분 지었다 할 만큼 과거의 사극과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었고, 는 그토록 많은 트렌디 드라마가 외치던 ‘주인공의 일과 사랑’을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융합했다. 마지막 회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은 시트콤의 장르적 한계를 어느 정도 돌파했다. 그리고 다시 세 편의 드라마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수목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같은 날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단지 우연일 수도 있고, 월드컵 전에 승부를 봐야 하는 공중파 방송사의 이해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 편의 수목 드라마뿐만 아니라 이병훈 감독의 MBC , 김수현 작가의 SBS 가 방영되는 2010년 4월의 TV가 가리키는 것은 자명하다. 근래 들어 이만큼 드라마에 대해 재미있게 말할 수 있던 때는 없었다. 그래서 세 편의 수목드라마가 모두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은 MBC 로부터 시작된 연애 못하는 여자와 멋진 남자의 동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고, 는 일과 사랑이 공존하는 직장을 배경으로 하며, 는 상반된 캐릭터를 가진 두 여자가 대립하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은 여기에 게이라는 설정을 더했고, 와 는 착하지만 여성적인 매력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캔디나 신데렐라 대신 아름답지만 톡톡 튀거나 강한 성격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웰메이드와 막장 사이를 가르다
수목 클리닉│오늘 밤에 뭐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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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들은 기존 드라마의 대중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정들을 보여준다. 이는 문근영이 를, 이민호와 손예진이 을 선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 작품에는 화제성을 가진 배우들이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대중성과 새로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 , 이 일종의 파격이었다면, 세 편의 수목드라마는 그 파격 위에서 요즘 한국 드라마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신선함을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다.

이는 한국 드라마에서 ‘웰메이드 드라마’의 시대를 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MBC 같은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지난 2년여 동안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막장 드라마’였다. 더 이상 MBC 이 제작될 때처럼 20%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정한 대중적 지지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MBC 처럼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대본과 연출로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드라마마저 종종 등장한다. 시청자들이 아니면 ‘막장 드라마’ 식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원하는 한국의 드라마들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 편의 수목 드라마의 완성도와 그에 따른 성패는 지금 ‘대중적’인 한국 드라마의 평균적인 수준이 어디 있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평균적인 연기력이 지금 문근영, 손예진, 김소연이 보여주는 수준이 될 수 있다면, 또는 전형적인 멋진 남자들이 등장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처럼 독특한 캐릭터와 조직 문화의 갈등을 재치있게 그려낼 수 있다면 어떨까. 또한 모든 수목드라마가 한 회 만에 모든 캐릭터와 설정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만큼의 내공을 가진다면 제작사들은 어떻게 변할까.

한국 드라마의 대중성에 대한 기준
수목 클리닉│오늘 밤에 뭐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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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어지는 기사들을 통해 수목 드라마 세 편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세 작품이 한국 드라마의 대중성에 대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세 작품은 톱스타 캐스팅부터 캐릭터의 설정과 조연들의 역할까지 기존 한국 드라마가 흥행하기 위한 요소들을 담고 있고, 그 토대 위에서 어떻게 대중에게 만족할만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 그들이 해결해야할 숙제일 것이다. 같은 작품이 세상을 뒤흔들어버린 그 다음 주에 시작한 이 드라마들은 과연 대중을 이끌거나, 혹은 최소한 대중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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