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지호가 스튜디오에 도착한 건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연을 펼치고선 인천에서 한 시간 만에 달려와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인상을 찌푸릴 수는 없는 없었다. “ 관객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에요. 아이들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어요. 그걸 보면 찌릿찌릿 하죠”라고 말하며 슬쩍 웃음 짓는 호랑이 눈썹 밑, 선하고 수줍은 눈빛을 본다면 더더욱. 아마도 그것이 KBS ‘드라이클리닝’의 청소년 전도사 ‘제길’의 반짝이는 선글라스 뒤에 숨은 개그맨 김지호의 얼굴일 것이다.

“윤형빈 선배에게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지고 있어요”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사실 ‘드라이클리닝’은 노래로 청소년을 계도한다는 점만으로도 자칫 공익광고처럼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코너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어”라고 시작되는 윤형빈의 부드럽되 조금은 느끼한 R&B 파트를 지나 ‘제길’ 김지호의 파트가 됐을 때 미리 깔아 놓은 웃음의 지뢰밭은 빵빵 터지기 시작한다. 과격한 졸업식을 하며 전통이라고 우기는 학생들에게는 “니가 말하는 그 전통이 이 전통은 아니겠지~”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꺼내들고, 친구에게 빵 심부름을 시키면서 빵을 사주려했다고 변명하는 불량학생에겐 “니가 말하는 그 빵이 선빵은 아니겠지~”라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제길’은 말 그대로 코너의 웃음 포인트다.

하지만 최근 잘 나가는 코너의 주인공치고 그의 태도는 여전히 수줍고 겸손하다. “(윤)형빈이 형이 음악 코너 짜고 있다고 하기에 좀 껴달라고 한 마디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해서 같이 하자고 부르시더라고요. 심지어 제 캐릭터까지 만들어놨고요.” 심지어 윤형빈이 복선을 깔고 웃음을 챙기는 건 그의 몫이었다. “천하의 윤형빈 선배가 저를 받쳐주잖아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지고 있는 거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마움과 조심스러움이 배어나오는 건, 아마 누군가를 받쳐준다는 것의 의미를 그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무대 위를 지키며 날릴 한 방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김지호│니가 말한 제길이 제일 웃기는 길은 아니겠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친구의 권유로 본 MBC 아카데미 오디션에 덜컥 붙은 이후, 대학로에서 배를 곯아가며 공연도 하고, KBS 공채 16, 17, 19, 21기 시험에서 낙방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고3에게 서울대 합격이나 다름없는” 공채 22기 합격 후에도 남을 웃기는 건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가 ‘키 컸으면’의 불량배, ‘도움상회’에서 썰렁한 개그로 편집의 위기에 처한 개그맨 등을 연기하는 동안 동기인 박영진과 박성광은 ‘박 대 박’, 박지선과 김준현은 ‘조선왕조부록’ 같은 인기 코너의 메인을 꿰찼다. “녹화 없는 날 집에서 TV를 보는데 어느 순간 같이 출근하고 회의하던 동기들이 연예인으로 보이는 거예요.” 주눅도 들었고 자극도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바탕으로 그가 여전히 무대 위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가 인기 코너의 메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보다 중요하다.

모든 코너가 그렇듯 ‘드라이클리닝’도 어느 순간에는 하향세를 그릴 것이고, ‘봉숭아 학당’의 세뇨리따가 할 수 있는 분장도 언젠간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주춤했을 때 남는 건 결국 노력과 끈기다. 선배 이수근의 레크레이션 진행을 배우고 싶어서 그가 2시간 동안 하는 모든 멘트를 받아 적은 뒤 따라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도 개그 연습할 수 있는 거”라는 손헌수의 충고를 아직도 새기고 있는 그라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말하자면 그는 혜성 같이 등장한 돌주먹 혹은 천재 파이터라기보다는 천천히 몸을 만들며 살얼음판을 걷듯 경기를 운영하는 타입이다. 그것이 눈부신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승리는 무대 위를 지키는 사람의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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