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 : 하고 싶은 게 없는 10대였다. 무작정 연극을 시작했다. 전문 연기자가 됐다. 단막극의 주인공이 됐다. 인기를 얻었다. 영화의 주연이 됐다. 그리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면서도 사랑받는 연기자가 됐다. 그렇게 이선균은 자신이 찾는 모습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이선균
이선균
사무엘 베케트 : 이선균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하 한예종) 입학 전 다녔던 대학 연극반에서 했던 첫 연극 의 원작자. 이선균은 고교 시절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 그저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신입생이 동아리방을 구경해도 말없이 바둑만 두는 연극반 선배들에게 “쿨한 매력”을 느꼈고, “어딘가에 몰두”해보고 싶어 연극반에 가입한다. 그 전까지 “나서기 싫어하던 성격”이었던 그는 연극을 하며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오만석 : 이선균과 서로 죽마고우가 아닌 ‘주마고우’, 우정이 아닌 ‘주정’이라 말하는 친구. 두 사람은 한예종 연극원 동문이다. 학창 시절 두 사람은 오만석이 술 마실 후배들을 모으는 ‘선발’, 이선균이 끝까지 술자리를 책임지는 ‘마무리’였고, 때로는 술을 마시던 곱창집에 홍수가 나도 계속 술을 마실 만큼 술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술만 마신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연극을 하며 연기력을 쌓았고, 함께 출연한 연극 는 “늘 무겁고 진지하고 심각한 연기”에 파묻혀 있던 이선균이 처음으로 가벼운 연기를 하고 싶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이후 이선균은 코미디를 많이 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익히기 시작했다고.

송창의 : 이선균이 출연한 MBC 을 연출한 전 tvN 대표이자 현 CJ미디어 제작본부장. 이선균은 에서 여주인공 중 한 명의 철없는 동생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선균은 당시 방송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친구들이 다 연극하는데 혼자 TV 출연을 해 “전학 가 왕따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이선균은 한 때 “TV에서 내 일은 그냥 가서 때론 리허설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개인기 굴리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고.

박지숙 : 이선균이 출연한 KBS 의 ‘연애’와 KBS 을 집필한 작가. 당시 TV 드라마에 열정을 못 느꼈던 이선균은 의 ‘반투명’에 출연하면서 당시 제작진의 열정에 감명을 받아 “처음으로 쫑파티에 참석”할 만큼 드라마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영화 에서 선배들의 치열함을 보고 “카드 값 메우려고 하는 게 연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연애’는 그 후 이선균이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한 작품. 다른 드라마보다 소재의 폭이 넓은 단막극을 통해 이선균은 일상의 연애를 하는 평범한 남성을 연기했고, 덤덤하게 보일만큼 자잘한 감정들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그의 연기는 보통의 멜로드라마 배우들의 연기와 차별화된 것이었다.

이윤정 : 드라마 감독. 이윤정은 ‘연애’를 보고 이선균을 MBC 에 캐스팅했고, 두 사람은 MBC 과 MBC 도 함께 한다. 이선균에게 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나왔으니까 보라고 한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에서 연기한 동경은 부동의 국가대표 수영 선수이자 자신의 연인에게 부드러운 남자라는 점에서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멋진 남성 캐릭터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경은 동시에 불안한 미래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때론 유치해질 수도 있을 만큼 현실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선균은 자신의 연인에게 보통의 남자들보다 좀 더 로맨틱하지만, 때론 뒤끝 있다 싶을 만큼 짜증을 내는 남자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집어냈다. 드라마에서 일상의 연애를 ‘멋지게’ 할 수 있는 연기자의 등장.

엄태웅 : 이선균의 친구. 하지만 두 사람은 한 때 서로의 이미지가 겹쳐 같은 작품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엄태웅의 매니저는 이선균이 엄태웅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잠든 것을 보자 농담 삼아 “형, 혹시 저 사람 형이 사는 집도 뺏으러 온 거 아냐?”는 말도 했다고.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며 스타도 됐고, 연기도 잘한다.

김명민 : MBC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선균은 처음에는 을 으로 잘못 듣고 “해군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이선균은 의 성공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연기한 최도영이 장준혁(김명민)과 술을 마시며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을 빼고는 “만족하는 장면이 없다”고 할 만큼 자신의 연기에 실망했다. 자신의 연기를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는 연기”라고 말하는 이선균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연기는 능숙했지만, 장준혁의 반대편에서 신념과 이상을 표현하는 최도영 같은 캐릭터는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연기자가 스타가 되고, 여러 작품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겪게 된 딜레마.

채정안 : 의 상대역. 이선균은 을 통해 확실한 스타로 자리 잡는다. 이 작품에서 이선균은 부유한 음악 감독이자 고은찬(윤은혜)을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는 이 캐릭터를 “집에서는 편하게 아무 옷이나 입는” 인물로 해석했다. 또한 자신의 연인인 한유주(채정안)에게 쿨하려 하면서도 때론 집착과 질투를 함께 보여주는 내면도 보여줬다. 그리고 이선균은 이후 SBS 에서 능력은 있지만 연애에는 서투른 부분이 있는, ‘평범하게 매력적인’ 남자를 연기하며 보다 현실적인 연애담을 보여줬다. ‘부유하고 멋진 두 번째 남자 주인공’이 이선균을 통해 보다 일상에 밀착되기 시작한 것. 이선균은 “심심하고 일상적인 멜로를 하고 싶다. 연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평상시 있는 것처럼 나른하고 소심하고 갱년기 연애 같은 그런 멜로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우 :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와 촬영 5년 만에 개봉한 영화 는 이선균식 연기의 시작과 완성이다. 는 이선균이 “처음으로 편하게 일상적인 연기”를 했던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에서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에도, 당하는 순간에도 모두 무심해 보일만큼 덤덤한 남성을 연기한다. 이는 여주인공의 시점으로 움직이는 에서 주체가 아닌 관찰 대상이 되는 남자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연기였다. 그리고 의 박찬옥 감독이 “그 어느 것도 과도하지 않은 배우”라고 말한 것처럼, 이선균은 에서 자신의 역할 범위와 일상성 내에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중식은 10여년 사이에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지만, 그는 그 사건들에 대한 감정 표현을 오버스럽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건들과 함께 10여년을 살아온 남자의 절제와 균열을 보여준다. 그가 절제를 통해 유지한 덤덤한 일상의 분위기는 중식이 후반부의 단 한 신에서 보여주는 약간의 균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선균은 드라마틱하거나, 작품마다 크게 다른 모습의 연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얼굴로 그들의 일상이 쌓이고 변하는 미묘한 순간들을 보여주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연기한다.

공효진 : MBC 에 함께 출연 중인 배우. 이선균은 과거 공효진의 연인인 류승범이 출연했던 영화 를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선균에게 가 영화에서 보여준 한 번의 정점이라면, 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새로운 시작이다. 이선균은 에서 처음으로 미니시리즈 ‘원톱’으로 출연하고,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고함치는 최현욱의 캐릭터는 그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에 비해 보다 드라마적이다. 그러나 이선균은 최현욱을 주방 바깥에서는 자신의 부하직원과 소주잔을 부딪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셰프로 소화한다. 이선균이 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격정적인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의 특징 속에서 누구나 납득할법한 일상성의 균형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선균을 통해 우리는 한국 드라마가 평범한 남자를 일과 로맨스 양쪽을 현실감 있게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연극반의 소심했던 청년은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주인공이 되고 있다.

Who is next
영화 에 이선균과 함께 출연한 탁재훈과 컨츄리 꼬꼬로 활동했던 신정환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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