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난다는 건, 그것도 그 시기에 가장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있는 스타를 만난다는 건 기자에게도 언제나 기대와 흥분을 일으키는 일이다. 의 기자들도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늘 “어때?” “최고야!” “생각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야”같은 말들을 주고 받으며 그 떨림을 되새김질 한다. 하지만, 의 기자들이 가장 떨리는 순간은 모두가 알고 있던 그 스타들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고유한 빛을 가진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들이 미디어의 스타가 아니라 나와 대화하는 사람으로 다가온 그 때, 그리고 그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들은 우리에게 No.1 인터뷰를 일이 아닌 어떤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 놓는다. 1년에 단 한 번, 의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들이 그 순간의 기억들을 공개한다.

2009 No.1│김범부터 원더걸스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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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 같은 동네 살았었네요? 그래서 나한테 관심 있었어요? (웃음)” 어린 시절 나는 김미숙과 같은 동네에 살았고, 덕분에 종종 김미숙이 TV에 나올 때 어머니에게 ‘여고생 김미숙’에 대한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내게 김미숙은 첫 번째 ‘여신’이었고, 김미숙과 인터뷰하는 동안 어떤 젊은 여배우를 만난 것 보다 가슴이 뛰었다. 거기다 그 우아한 목소리와 차분한 손짓이라니. 10살 때 부모님 눈치 보며 밤에 김미숙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기 잘했다.
2009 No.1│김범부터 원더걸스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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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MBC 출연 당시 김범은 앳된 얼굴과 달리 “아프면 괜히 진 것 같아서 아파도 티를 안 내요”라고 털어놓는 근성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그 후 ‘에덴’을 지나 ‘꽃보다 고운 남자’가 되었다가 ‘비상’하고 SBS 으로 주연의 꿈을 이루게 되었을 때 다시 만난 김범은 더 이상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여유로웠다.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텀이 조금 짧아 보일 수도 있지만 고민은 정말 많이 해요. 제 이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고,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뭔가를 선택하는 건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골라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인데 생각은 한 번에 깊게 하지 오래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결정은 빠르게 내려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일 욕심이 많아서이기도 해요.” 그래서 다시 생각났다. “지는 걸 정말 싫어해요”라고 몇 번인가 잘라 말하던 ‘하숙범’ 시절에도 김범은 “하지만 연기는 단판승부가 아니니까 멀리 본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무서운 소년이었다.
2009 No.1│김범부터 원더걸스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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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원더걸스를 인터뷰 했을 때, 소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소녀였다. 하지만 원더걸스가 빌보드 싱글 차트 진입하기 두 달 전 미국에서 소희를 만났을 때, 그는 묻지 않은 이야기도 먼저 말하고, “아직도 기다려주는 한국 팬이 너무 고맙다”며 한국 팬들을 그리워했다. 그 날씬한 다리를 더 가늘게 만든 미국에서의 강행군이 소희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소녀들은 변하고, 자란다. 언젠가 소희가 한국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수다쟁이가 된 소희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2009 No.1│김범부터 원더걸스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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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하균 사진 더보기
말수가 적어 인터뷰하기 참 어려운 배우라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인터뷰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신하균은 정말 말수가 적었다. 하지만 정말 그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활자라는 매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제 읽은 책 한 구절이라도 미니홈피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요즘에 그런 친구들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이라며 말끝을 흐리며 그 선한 눈웃음을 지을 때 그가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는 걸 남우세스러워 하는지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활자 자체로는 별 볼일 없는 내용이기에 기사에 포함되지는 못했다. 동영상의 힘에 기대고 싶어졌던 건 그때가 처음이다.
2009 No.1│김범부터 원더걸스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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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희 사진 더보기
한 때 최강희는 ‘4차원’으로 불렸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최강희는 ‘4차원’이라기보다는 그저 모범답안을 내놓지 않는, 그래서 대화의 재미와 긴장감이 몇 도쯤 올라가게 만드는 배우였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공간이 바깥세상과 잠시 차단된 이계(異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는 면에서 최강희는 흥미로운 차원의 인간이다. 그러나 서른 셋, 결혼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살며 일하는 딸로서의 최강희는 역시 우리와 별다르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전 엄마 없으면 안 돼요. 엄마 없으면 끔찍하죠. 지금 제가 막 자유롭게 살지만 그건 엄마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이거든요. 공지영 씨의 에서, 운동회가 열렸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지만 어디선가 우리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그렇게 엄마는 항상 제 곁에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배짱의 뿌리인 거죠. ‘엄마가 기도하니까 난 괜찮을 거야’라는. 그런데 를 찍으면서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 버린다면?’이라는 상황에 마주하고 상상해봤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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