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람 교향곡처럼 등장했던 이윤정은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유쾌한 씨의 껌 씹는 방법’이나 ‘딸기’를 외치는 빨간 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한다. 토탈 아트 퍼포먼스팀 EE의 첫 번째 정규 앨범 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놀랍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이고, 실체와 상상력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진 EE의 생산물들은 1980년대의 정서를 바탕으로 충분히 유쾌하고 즐겁다.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일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 두고 오래간만에 ‘내 음악’을 하는 이윤정은 우리의 기억과는 달리 유연하고 진솔하다. 과묵하지만 더 할 나위 없이 든든한 파트너, 설치미술가 이현준과 함께 “만화책처럼 다음 권이 기다려지는 재미있는 앨범을 많이 많이” 만들고 싶은 이윤정을 만났다. 헤어질 때는 조금 뭉클 했다. 서른넷의 나이가 내려앉기에 그녀의 작은 어깨가 아직도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 소닉’, 다음 주말에는 ‘글로벌 개더링 코리아’에 참여한다. 최근 주말마다 행사가 있는데, 힘들지 않나?
이윤정
: 주말마다 하니까 재미있다. (웃음) 주말에 일정이 없으면 허전할 때도 있다. 어디 클럽 가면, 막 “우리 지금 가능하다고 하면 공연 한다고 할까?” 그러고. 사실 공연을 한다기보다는 논다는 개념이 더 있다.

“내 음악은 정확한 음정보다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잘 노는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
이윤정
: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겠지만, 지향이 같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와 공통점이 많았는데, 성향적으로도 많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았고, 음악을 포함해서 뭐든 할 마음이 있다고 하길래 같이 팀을 꾸렸다.

듣기로는 이현준이 음악을 해야 한다고 닦달했다고 하던데.
이윤정
: 쇼핑몰을 하면서 전화도 직접 받고 밤새 포장해서 아침에 배송하고 저녁때는 하우스 룰즈 피처링 하러 다니느라 너무 바빴다. 나이도 들고, 일에 치어서 내 걸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에 현준이가 나를 본거다. 왜 음악을 안 하냐, 해야 된다, 그런 거지.
이현준 :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데 못하니까. 하는 상황으로 만들어라, 그런 거다.
이윤정 : 일을 줄이니까 마음의 평화는 훨씬 많이 얻었다. 얘가 그 얘기를 했다. 돈이 뭐가 상관이 있냐, 없으면 주워 먹으면 되고 배고프면 안 먹으면 되지. 하고 싶은 거 안 하는 게 더 배고픈 거 아니냐. 그래서 “야, 네 나이 때는 나도 그랬어!”그랬다. (웃음) 그런데 이 친구가 되게 검소하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나는 식탐이 장난 아니라 무조건 맛있는 거 먹어야 하는데, 얘는 빵 하나에 콜라 하나, 그렇게 버티더라.

앨범 기획이 상당히 즉흥적으로 됐다고 들었다.
이윤정
: 하고 싶었던 게 꽉 차있어서 만나고 나니까 너무 후루룩 진행 되더라. 2007년 12월에 처음 얼굴을 봤는데, 2008년 3월에 EE를 결성하고 9월에 싱글 나왔고 이번에 1집이 나왔다. 그 안에 전시회 같이 큰 일들을 치렀고, 계속 빨리 빨리, 또 하자 또 하자, 재미있다, 그러면서 왔다.

녹음 기간도 짧았겠다. 일 년씩 재녹음을 반복하는 가수들과 달리. (웃음)
이윤정
: 난 신경질 나서 그렇게 못한다. (웃음) 조금 틀리고 계획과 달라져도 하면서 웃고 그러니까, 이걸 듣는 사람도 그렇게 웃어 줄 거라는 생각으로 진행한다. 느낌이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노래를 정확히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이미 노래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나. 내용적인 부분이 중요했고, 정확한 음정 같은 건 애초에 생각도 안했다.

어쩐지 듣고 있으면 EE 공연의 가이드라인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이윤정
: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공연도 비슷하다. 올해 ‘지산 록페스티벌’에 갔었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언덕에 올라가니까 오아시스가 공연하는 게 보이더라. 소름 돋았다. 북한 같아서. 음악 페스티벌인데도 사람들 옷차림도 비슷하고, 다 따라 부르면서 같은 팔 동작을 하고 있는 거다. 물론 오아시스니까 그런 분위기였겠지만, 우리 공연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싶더라. 나는 노래 하다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들에게 즉흥적으로 “아무거나 뭐라도 해봐!”하고 마이크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런 게 경계를 허무는 퍼포먼스일 수도 있다.

“모든 장르에서 좋은 것만 쪽쪽 빨아내서 만든 곡이 재미있고 좋은 것”

앨범을 들어보면 ‘Boy’ 같은 곡에서 이현준의 노래 실력이 의외로 제법이더라.
이윤정
: 처음에 ‘Curiosity kills’ 녹음 할 때는 노래나 녹음을 가르치기도 힘들고, 일단 내레이션 위주로 시켰다. 그런데 목소리가 되게 특이한 거다. 저음도 아니고 고음도 아니고 이상한 소리가 매력적이길래 조금씩 시켜봤더니 나름 소화를 잘 하더라.
이현준 : 내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를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네.
이윤정 : 무대 올라가면 또 신나서 내 목소리까지 잡아먹는다. (웃음)

한편으로는 ‘보컬 이윤정’의 재발견이라는 생각도 든다. 10여 년 전처럼 불편하게 노래하는 곡이 거의 없더라.
이윤정
: 사실 삐삐밴드 때는 오빠들이 그걸 너무 강조 했다. 일단 차별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못난 걸 녹음하고, 찌그러트리고 그랬었다. 그리고 그 때는 스스로 펑크 정신 때문에 ‘니네 듣고 귀 찢어져라’ 그러면서 불렀다면, 지금은 내가 마음이 편안해 졌다. 옛날처럼 부르면 나도 힘들다. (웃음) 내가 부르기 편하게 녹음을 한 거지.

그렇지만 여전히 이윤정에게는 록스피릿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이윤정
: 장르로 가르는 게 사실 힘든 일이다. 우리는 음악도 패션도 편식이 없다. 일렉트로닉 펑크, 인디 댄스로 우리 음악을 분류하기도 하더라만, 이건 되게 펑크 록적인 요소가 있는 일렉트로닉이다. 리얼 악기로 연주하면 록이 될 수 있는 거고, 실제로 그런 구성의 무대를 준비 하고 있기도 하다. 장르랄지 형식에 대한 논의는 이미 해외에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것이 팝이고. 레이디 가가 같은 친구도 사실 인디 댄스 같은데, 목소리는 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알앤비 같기도 하다. 장르적인 요소는 허물고 거기서 좋은 것만 쪽쪽 빨아내서 만든 곡이 재미있고 좋은 거지, 장르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그렇지 않나?
이현준 : (끄덕)

솔로 앨범을 낼 때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을 해 왔는데, 그 당시에도 1집 <진화>와 2집 <육감>의 반응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윤정
: 2집의 ‘Seduce’? 그 곡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당시가 나의 여자로서의 정점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어릴 때부터 소년 취급을 받아왔었는데, 여자로서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했었다. 음악적으로도 그렇게 괴성을 지르기만 하는 아이도 아니고, 사실은 춤도 잘 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억울한 마음도 있었고. 내가 치마라도 입거나 까만 생머리를 하고 있으면 다들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라 그게 속상하고 스트레스였다. 사람들이 나를,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도 했어야 할 앨범이었다. 역시 나는 이건 아니구나, 그걸 깨달았지만 말이다.

“재해석된 80년대가 아니라, 진짜 80년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요약하자면 ‘복고적인 퓨처리즘’ 같은데.
이윤정
: 그런 단어는 기자님들이 잘 만들어 주신 것 같고. (웃음) 옛날부터 80년대 사운드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최근에 갑자기 붐이 일어나면서 이걸 계속 좋아해야하나 고민을 했었다. 꼭 트렌드에 맞춰서 한 걸로 보이진 않을까 해서. (웃음) 방송에서는 잘못된 일렉트로닉이 보란 듯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그런 오해를 바로 잡고 전자 음악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 80년대에 전자 음악이 처음 시작됐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다. ‘Curiosity kills’에서는 20년 전의 한 장면을 복원해 냈고, ‘기억속의 하이칼라’의 몇 장면은 보이 조지를 연상시키기도 하더라.
이윤정
: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Curiosity kills’는 재해석된 80년대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80년대 사람을 보여주는 건데, 그 당시에 완전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설정이었다. ‘기억속의 하이칼라’는 당시의 팝스타인데, 그 사람이 본 미래의 끝을 보여주려는 의도였고. 지금 바라보는 80년대가 아니라, 80년대에서 바라보는 미래인 거다.

뮤직비디오 스타일링도 물론 직접 다 했겠다.
이윤정
: 내가 누굴 해 줄때는 몇 번의 미팅을 거쳐서 피팅하고, 그러면서 진행을 한다. 그런데 우린 그냥 집에 있는 옷 다 가져가서 “다음 컷 찍습니다” 그러면 우리끼리 막 “야, 너 뭐 입을래”, “난 이거 입을까” 그러다가 바로 메이크업도 그 자리에서 하고 그랬다. 즉흥적인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둘이 의견 일치가 되면 되게 기쁜 거다. 마음 맞았다! 하면서.

사실 뮤직비디오, 공연, 전시까지 큰 덩어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앨범은 그 과정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한계가 많았을 것 같다.
이윤정
: 물론. 고민이 많다. 돈은 없고. (웃음) 우리끼리 가내수공업이라고 하는데, 앨범 재킷도 둘이 폴라로이드 찍어서 직업을 했다. 돈을 안 들이는 방식으로 뭔가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었던 거다. 너무 힘들다. 지원이 없으니까.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뭘 하고 싶어도 사거나 어느 장소에 가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들이 많다. 전시를 할 때도 협찬이 가능한 브랜드나 전시 공간이 있는 카페를 찾아서 그 매장을 빌려야 한다. 우리도 작업물을 묶어서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 여건이 안 된다.

부르주아적인 입지 위에서 예술을 한다고 오해 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상은 다른가 보다.
이윤정
: 뿐만 아니다. 영화제나 축제에서 퍼포먼스나 사운드 아트 작업을 했지만 미술관에서는 우리를 다 딴따라로 본다. 특히 나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가수가 감히 어딜” 그런다. 어떻게 보면 현준이에게 굉장히 피해가 가는 일이다. 그래서 현준이 개인전을 할 때는 내가 좀 빠지고 가려고 하는데, EE의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해서든 설득을 해야 한다. 공연을 할 장소도 클럽 밖에는 없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밤에 업소 뛰는 줄 안다. 이거는 이거, 저거는 저거, 정해놓은 사람들의 마인드 때문에 힘들다.

“가진 걸 아직 다 안보여 준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이현준은 외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한국 사회가 이렇게 폐쇄적인 걸 알고 발을 들였나?
이현준
: 외국 애들 하는 소리도 똑같다.
이윤정 : 영 제너레이션들은 항상 이런 시도를 한다. 항상 묵살 되지만. 알면서 하는 거다. 끼나 능력이 많은데 어디서 부려야 될지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나도, 이 친구도 그랬다. 우리가 그들에게 장치가 되면 좋겠다. 뭔가 만들어 놓지 않으면 문화적인 건 그냥 끝나는 거다.

Mnet <트렌드 리포트 필>을 다시 시작한다고 들었다. 물질적인 어려움 해결을 위해서인가?
이윤정
: 월세를 내야 하니까. (웃음) 앨범 준비 때문에 지난 시즌에는 빠졌는데, 새 시즌부터는 참여 한다. 일본에 촬영도 다녀왔다. 마침 현준이도 반달리스트 패션쇼에서 퍼포먼스가 있어서 다녀왔는데 내가 취재를 가기도 했다.

프로그램 하차 후에 특유의 진행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었다.
이윤정
: 에이, 방송 하면 또 욕 많이 한다. 여고생들은 지나가면 대놓고 욕하기도 하더라.

뭔가 툭툭 말해도 이윤정은 상처받지 않을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이윤정
: 그렇지? 사실은 막 펑펑 우는데.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을 고수 할 수 있는 비결은 대체 뭘까.
이윤정
: 약간의 ‘자뻑’도 필요한 것 같다. 겸손하려고 하지만 잘하는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는 거다. 내가 가진 건 다른 거니까. 나는 잘난 사람이야. 내가 가진 메리트는 다른 데 있어. 아직 안보여 준거야. 스스로 주문을 건다. 1등이 아니니까 다른 곳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다방면에서 2등을 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을 다 포용한 무엇을 만들어 내게 되는 거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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