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리듬이 있다면, 신세경의 성장 리듬은 아마 강렬한 당김음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앞질러 자란 표정과 성품 덕분에 갓 중학생이 되던 해 출연한 영화 <어린 신부>에서 고등학생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할 때도, SBS <토지>에서 겨우 열두 살인 서희를 당당한 당주로 그려낼 때도 그녀는 늘 제 나이보다 몇 살 쯤은 더 많아 보이고는 했다. 그리고 MBC <선덕 여왕>에서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그 나이쯤으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매, 그러나 끝내 울음을 참아내듯 꼭 다문 입술은 자신의 무력함을 감상적으로 슬퍼하는 천명의 소녀시절을 그대로 그려 낸 듯 적당히 연약했고, 적절히 불안했다.

나이를 앞서 자란 여인의 눈빛

그런 천명은 변하는 인물이었다. 낭군을 잃고, 아이를 갖고, 종국에는 그토록 두려워하는 미실에게 또렷이 대립하면서 그녀의 ‘소녀’는 급속도로 풍화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연기하는 신세경은 마치 번데기를 가르고 나온 나비처럼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어리광이 가신 눈빛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여인의 것이었고, 그제야 그녀는 제 나이를 찾은 듯 보였다. 어른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 만나서 술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 스무 살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아역 연기자들은 자신의 성년을 각인시키는데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작 본인은 “남들 자라듯 나이에 맞게 자랐을 뿐”이라고 털털하게 웃으며 말하지만, 베드신이 포함된 영화 <오감도>의 시나리오가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신세경에게 도달하기까지 주변의 누구도 그녀가 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전부 시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저는 늘 회사의 막내였으니까요. 다들 꼬맹이 세경이는 이런 역할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 하고 시나리오를 보여주지도 않으셨어요.” 그러나 “촬영 분량도 많지 않고 부담이 적어서 마냥 즐겁게 작업 했어요. 찍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정말 기쁘고요”라고 작품을 추억하는 그녀의 말투는 자못 어른스럽다.

“선배님들이 연기 지적을 해주셔서 정말 다행”

<선덕 여왕>을 찍으면서 남지현에게 도움 받은 일을 담담히 털어 놓거나, 고단했던 현장 상황을 꾸밈없이 전할 때 엿보이는 솔직하고도 담백한 태도 역시 스무 살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게를 가졌다. “아역이라서 선배님들이 편하게 연기에 대해 지적해 주셨던 것 같아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제가 가진 것만으로 연기 했다면 방영분처럼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때면 확실히 이 아가씨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 조숙한 태도가 스스로의 반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토지>를 찍을 때만해도 내성적이고 낯을 가려서 선배님들께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거든요. 악의가 없더라도 그런 모습이 좋아보였을 리 없잖아요. 그런데 일부러 밝아지려고 하다보니까 제가 얻는 게 더 많아지는 걸 알게 됐어요.” 앞질러 자란 마음으로 앞으로 자랄 만큼의 자리를 만들어 두는 그 여유로움은 신세경의 스물다섯, 서른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다. “제가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중학생일 때 그걸 읽었는데, 그땐 제가 터무니없이 어렸지만 여주인공이 참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그 소설을 한국에서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직도 제가 좀 어리니까, 한 오년 쯤 있다가 그 작품이 저한테 딱! 들어올 것 같아요.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그래서 감히 말한다. 어떤 작품에서 자리를 찾든, 아마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일 것이라고.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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