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 정일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MBC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의 말썽꾸러기 고등학생 이윤호였다. 대학교 1학년, 하지만 극 중에서의 교복이 더 잘 어울리는 해맑은 미소로 전국 여성 팬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던 그는 아직 자신에게 비춰진 스포트라이트가 낯선 듯 말수가 적었고 조금은 수줍어했다. 2년이 더 흘렀다. 그 사이 정일우는 청춘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와 옴니버스 영화 <내 사랑>의 여러 주인공 가운데 하나로 출연했고 반 년 이상의 사전제작 기간을 두고 만들어진 MBC <돌아온 일지매>의 일지매로 돌아왔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정일우의 걸음은 급하지 않다. 스무 살에 톱스타가 되었던 소년은 스물 셋의 청년으로 자라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웠을까.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부쩍 어른스러워진 정일우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정일우는 더 이상 수줍어하지 않았다.

“나도 장비 하나 메고 산을 걸어 올라가서 촬영한다”

그 사이 목소리가 좋아진 것 같다.
정일우:
고맙다. (웃음) 목소리가 변하긴 했다. 일지매 캐릭터가 굉장히 냉정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보니 거기 맞춰 연습을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좀 달라졌다. 다음 작품을 하게 되면 또 거기 맞춰 변하지 않을까.

<돌아온 일지매> 촬영이 막바지에 다다른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정일우:
23부 분량을 촬영하고 있다. 지방 촬영이 많아서 며칠 전에는 광양에 다녀왔고 완도에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전국에 안 가본 데 없이 다 돌아다닌다. 깊은 산 속에서 촬영하는 일이 많다 보니 휴대폰도 안 터져서 아예 꺼 놓을 때가 많고, 차가 못 들어가는 산길에서는 나도 장비 하나 메고 걸어 올라가서 등산하고 촬영한다. (웃음)

<돌아온 일지매>는 작년 여름부터 촬영에 들어갔는데, 황인뢰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나.
정일우:
내 개인적인 것들을 많이 물으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하는 것들.

그 전까지 이윤정 감독의 <트리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정일우:
계약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4개월 정도 계속 준비를 하고 있었다. 쇼트트랙 선수로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하루 7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하드 트레이닝이었겠다. 기록은 잘 나왔나? (웃음)
정일우:
링크를 한 바퀴 도는데 여자 국가대표 분들이 한 8초대 나온다면 나는 10초 초반대 정도가 나왔다.

그렇다면 <트리플> 대신 <돌아온 일지매>에 출연하면서 그동안 연습한 것들이 아까웠겠다.
정일우:
그렇진 않았다. 해놓으면 언젠가 쓸 수 있는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었다.

“영웅이라는 게 한 순간에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이킥>의 김병욱, <트리플>의 이윤정, <돌아온 일지매>의 황인뢰 감독은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연출가들이다. 좋은 감독들과 인연이 많은 편인데 직접 겪어본 느낌은 어떤가.
정일우:
일단 세 분의 공통점은 성격이 급하시다는 거다. 약간 욱하는 면이 있으시고. (웃음) 하지만 일에서는 세 분 다 최고고, 정말 좋은 분들이시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돌아온 일지매>의 원작인 만화 <일지매>를 읽어봤나.
정일우:
당연히 봤다. 처음에는 캐릭터 위주로, 다음에는 줄거리 위주로 읽었는데 그걸 보니까 일지매는 영웅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영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으로는 불쌍하고, 비참한 일도 많이 겪는데 그러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변해가는 인물이다. 영웅이라는 게 한 순간에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첫 촬영하던 날이 기억나나.
정일우:
작년 7월 23일이었다. 단양에서 찍었는데 일지매가 청나라에 살던 어린 시절 사부와 무술 훈련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날 비가 진짜 많이 왔는데 감독님께서 그냥 촬영을 강행하셔서 하루 종일 찍었다. 처음부터 고생 시작이었다. (웃음)

황인뢰 감독은 배우들에게 어느 수준 이상의 연기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편인데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그런 것들을 뽑아내나.
정일우:
화를 내신다. “똑바로 해라!”라고 하시면서. (웃음) 그런데 여자 분들에게는 화를 안 내신다는 걸 나중에 발견했다. (웃음) 초반에는 특히 정일우가 아니라 일지매가 나와야 한다고 하셔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를테면 촬영장에서 웃지 말라거나, 다쳐도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거나 하는 것들도 포함됐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서 일지매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감독님도 화를 별로 안 내신다. 지시를 많이 하지도 않으시고, 전체적으로 ‘이렇게 해 봐라’ 라고 잡아주시는 정도다.

하지만 일지매라는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독특하고, 다른 누군가를 보고 따라할 수 없을 만큼 특이한 인물이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일우:
그것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감독님도 어떨 땐 웃지 말라고 하시고, 어떨 땐 웃으라고 하시고. 그런데 웃는 것도 미묘하게, ‘아리까리하게’ 웃으라고 하시니까. (웃음) 그래서 일지매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이뤄가는 과정이 13,4회 정도까지 계속됐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지매도 처음부터 영웅인 게 아니라 혼란을 겪고 사건과 만나면서 변해 가는 캐릭터니까 나도 작품과 같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일지매는 월희에게 나쁜 남자다”

액션 신이 많은 작품인데 한중일 삼국의 무술을 통달한 고수를 연기하는 건 어땠나.
정일우:
예전에 합기도를 좀 배웠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 달 동안 기초체력 훈련을 했다. 하루에 7km 정도 달리는 걸 포함해서 일곱 시간씩 운동을 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잠 못 자고 밤새는 걸 빼면 액션 신 자체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고 와이어 타는 건 오히려 재밌었다.

액션 못지않게 일지매와 월희(윤진서)의 멜로도 중요한 지점인데, 일지매의 월희에 대한 감정은 뭐라고 생각하나.
정일우:
원작도 그렇지만 사실 일지매가 사랑하는 여인은 관아에서 목이 잘려 죽은 첫사랑 달이(윤진서)인 것 같다. 일지매는 나쁘게 말하면 월희를 그냥 갖고 놀았던 건지도 모른다. (웃음) 그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몇 년을 월희와 같이 지내면서도 가끔 자기가 그리우면 와서 얘기하고 놀다 가고, 혼인 얘기를 했다가 뒤집어 버리고, 갑자기 월희를 어디다 처박아 두고 안 돌아오고. 진짜 나쁜 남자다. (웃음) 그래서 월희가 자살 시도까지 하는 거다. 감독님은 일지매가 월희를 좋아한다고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다. 음, 그러니까…좋아하긴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이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는 게 우리 작품의 특징이고 감독님도 원하시는 바인 것 같다. 상황은 극적이더라도 뭔가를 바닥까지 보여주지는 않는 거다.

원작에서 상당히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가 일지매의 여장이었다. 드라마에서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기생 연기를 하는 건 어땠나.
정일우:
연기는 연기니까 괜찮았는데 여자 한복을 입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가슴에서 치마끈을 꽉 조이기 때문에 너무 아프고 무거운 가체 때문에 불편하고, 메이크업도 한 시간 이상 걸리니까. 평생 다시 하기는 힘든 경험이었다. (웃음)

전신을 잡지 않을 때는 의외로 잘 어울렸다. 조선 시대에 키 184cm 짜리 여자는 물론 남자도 드물었겠지만. (웃음)
정일우:
아무리 예쁘게 찍으려고 해도 전신샷은 어떻게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안 어울리면 비호감으로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반응이라 다행이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글|사진|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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