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 "스크린 주연, 낯설고 부담스러워"
"가능성 확인하고 싶어 선택한 영화"
"분노연기 힘들어…침뱉는 애드리브 실패해"
"성인 로맨스물 출연하고 싶어"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 사진제공=IHQ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 사진제공=IHQ
"장편영화 주인공은 처음이어서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스크린에 제 얼굴이 크게 나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불도저에 탄 소녀'를 통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은 김혜윤이 이렇게 말했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 이후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김혜윤은 '분노'가 가득 찬 연기를 펼친다. 눈빛엔 시종 힘이 들어가 있고, 어른이고 뭐고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들을 향해 반말과 욕설을 퍼붓는다.

김혜윤은 "평소 시나리오를 볼 때 작품에서 어떻게 연기할지 상상하면서 읽는다. 혜영 역할은 상상이 잘 안되더라"라며 "쉽게 상상이 안 가는 이런 캐릭터를 연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박이웅 감독과 미팅했을 때도, 김혜윤은 자신이 혜영 역할로 뽑힐 거라는 확신이 없었단다. 그동안 보여왔던 이미지와 내면에 분노가 가득 찬 혜영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이에 김혜윤은 "마지막에 몰고 가는 불도저가 실제로는 제 키만 하다. 감독님께선 모든 면에서 저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그런 역설적인 부분이 좋았다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김혜윤은 그야말로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2013년 KBS 드라마 'TV소설 삼생이'로 데뷔한 이후 50여 편의 작품에 단역 및 조연으로 출연하며 충실히 연기 경력을 쌓았다. 2018년 방송된 JTBC '스카이 캐슬'로 연기력을 폭발시킨 김혜윤은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까지 받았다.

이후 MBC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첫 주연을 맡아 1인 3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또 한 번 호평 받았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차기작이 '불도저를 탄 소녀'였다. 10년 가까이 연기 하면서 주연까지 발돋움했는데도 '혜영' 캐릭터가 쉽지 않았단다.
[TEN인터뷰]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 "112분 '분노 연기', 화 못 내는 제겐 너무 벅찼죠"
김혜윤은 "처음에 대본을 분석했을 때, 혜영이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는 모습만 보여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며 "감독님 생각은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분노를 유지하라고 하셨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 그 분노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컷마다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연기 했다. 감독님이 잘 잡아 주셨다"라고 떠올렸다.

또한 김혜윤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참 벅차더라. 정말 어려웠다"라며 "시나리오상에 혜영이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선배님들과 감독님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체력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김혜윤은 "체력이 부족해서 힘이 드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더라. 관리를 못 한 것이지 않나"라며 "촬영 들어가기 전 나름 열심히 운동했다. 용 문신이 도롱뇽으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 돼 단백질도 많이 챙겨 먹었다. 그런데 팔이 그렇게 버라이어티하게 넓어지진 않더라"라고 말했다.

또 김혜윤은 "게다가 극 중 혜영이 끝까지 지치지 않아서 제가 너무 힘들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체력적으로 힘들 때 '에라 모르겠다'라며 '분노'하는 연기에 임했다. 현실적인 분노로 표현 되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애드리브가 있었어요. 결국 현장에선 사용하지 못했죠."

김혜윤은 극 중 최 회장이 직원들과 회식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시나리오엔 없었지만 최 회장에게 침을 뱉고 싶었다"라며 "마지막까지 못 뱉었다. 제가 실제로 살아가는 환경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욕설은 했는데 침까지는 못 뱉겠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장면을 찍은 곳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음식점이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현실에서 김혜윤은 '화'도 제대로 못 낸다고 했다. 그는" 화나는 일이 생기면 참을 때가 많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혜영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돌진하고, 최선을 다해 표현한다. 있는데로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부럽고 멋있다고 느껴졌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지만, 관객들이 보기에 극적인 재미가 넘치거나 스케일이 크지도 않다. 어찌 보면 작은 영화인데, 연기가 쉽지도 않았다. 김혜윤은 어째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그는 "제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저는 영화가 작건 크건, 연기할 때 재미있겠다 싶으면 한다. 할 때는 힘들겠지만, 해냈을 때 뿌듯하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라고 말했다.
[TEN인터뷰]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 "112분 '분노 연기', 화 못 내는 제겐 너무 벅찼죠"
'불도저에 탄 소녀'는 김혜윤의 첫 영화 주연작이다. 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전까지 주인공인 사실이 실감이 안 났다. 긴가민가했다"라며 "스크린에 등장한 제 얼굴을 봤는데 낯설었다. TV나 휴대폰에서만 제 얼굴을 보다가 스크린에 나오는 걸 보니 부끄러웠고,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라고 고백했다.

어떤 단점이 부각 됐냐고 물었더니 김혜윤은 "저는 연기에 대해 자존감이 낮다.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조금만 더 잘할걸'이라고 늘 자책한다"라고 했다.

침 뱉은 애드리브도 결국 못 해낸 김혜윤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발판 삼아 더 세고, 힘든 연기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 액션 연기나, 상상은 잘 안되지만 누아르 물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혜윤은 성인 로맨스물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밝혔다. 20대 후반인데, 잇따라 여고생을 연기했다. 그는 "성인 로맨스물엔 안 불러주시더라. 제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라며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보여 드렸던 아이 같은 이미지는 더 이상 보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첫 주연작인 '불도저에 탄 소녀'가 김혜윤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그는 "제가 연기를 했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혜영이는 주변에 있을 것 같지만, 없을 것도 같은 모순 있는 캐릭터다. 연기는 했지만, 아직도 뭔가 어려운 것 같은 저한테는 안쓰러운 친구다. 동생 같은 느낌으로 남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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