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앞둔 '미나리'
'미국영화'지만 '외국어영화' 분류된 아이러니
미국적 정서+한국적 정서가 혼합된 작품
작위적이지 않고 가족애 다뤄 보편적 공감 얻어
영화 '미나리' 포스터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포스터 / 사진제공=판씨네마
이름처럼 미약하지만 굳센 영화 '미나리'가 연일 수상을 이어가며 낭보를 들려오고 있다. 28일(한국시간 3월 1일 오전) 열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도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미국영화'인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현지 매체와 영화계 인사들도 골든글로브 측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미나리'는 왜 외국어영화로 분류됐을까.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에 따르면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나리'에서는 주로 한국어가 사용됐기 때문에 외국어영화로 간주된 것이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썼다고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사실 지금 같은 시대에 영화의 국적을 굳이 따진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같은 쟁점이 있는 영화니 한 번 쯤 얘기해봄직하다.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미나리'는 70~80년대 한인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다.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만큼 작위적이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일상적이고 담담하다. 평범함에서 오는 섬세함과 유려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지키려하는 모습, 꿈을 실현해나가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정 감독은 "내 개인적 이야기라서, 이민자 이야기라서,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보편적·인간적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이 극 중 가족이 겪고 있는 다양한 고충과 갈등에 공감해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헤쳐나가는 모습을 공감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함에 있어 특정 나라나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라는 '국적'을 달고 있는 '미나리'는 미국적 정서와 한국적 정서가 뒤섞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민 1세대인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과 달리 번번이 좌절을 맛보고, 한국 도시 생활이 더 익숙한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미국에서의 시골 생활이 애타기만 한다. 이민 2세대인 딸 앤(노엘 조)과 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한국인 가족 속에 살고 있지만 미국적 가치관이 더 큰 인물이다. 앤과 데이빗은 엄마, 아빠보다 영어에, 파스타에, 쿠키에 더 익숙한 모습을 보인다.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는 '토종 한국인'이다.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고 손주들에게는 화투를 가르친다. 영화는 이민으로 인해 가족 안에서도 일어나는 차이점을 조명한다. 이로 인해 이들 가족 간 작은 다툼은 있으나 결코 분열되진 않는다. 개척과 도전이라는 미국적 정서와 가족애와 공동체적 의식의 한국적 정서가 '미나리'에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송효정 영화평론가는 "미국 아칸소의 황무지에서 척박한 삶을 일구는 가족의 성장담은 미국의 고유한 내셔널리티와 맞닿기 때문에 굳이 '미나리'의 국적을 분류하자면 미국영화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주, 개척, 적응을 이야기한다는 점, 그리고 '미국인'이 돼가는 과정을 통해 결속하는 가족 등의 소재와 감독이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연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면서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 갭에 끼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더 결속한 것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미국' 국적의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가 된 것 역시 소속되지 못한 중간자의 고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 조차도 '미나리'가 보여주는 애환을 시사하는 듯하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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