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태양의 소녀들'입니다.
'태양의 소녀들'은 2014년 8월, 극단주의 무장조직 IS에 참극을 당한 야지디족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영화는 IS로부터 포로로 잡혔던 여성들이 극적으로 탈출한 후 그들과 직접 맞서기 위해 총을 들 여성 전투 부대 '걸스 오브 더 썬'의 이야기를 프랑스 종군기자의 시선으로 담아 세상의 억압과 차별에 굴복하지 않는 뜨거운 용기를 고스란히 전달해줍니다.
영화 '태양의 소녀들' 포스터 / 사진제공=더쿱
영화 '태양의 소녀들' 포스터 / 사진제공=더쿱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히려 뜬금없는 유머를 섞어 넣으면 더욱 슬퍼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정치범으로 체포돼 갇혔는데 우연히 화장실에서 같은 이유로 들어온 동지를 만났을 때 '야, 이번엔 라인업이 좋네!'라 한다면 잠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이 비록 고문과 폭력이 난무하는 독재정권의 감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태양의 소녀들'(감독 에바 허슨)의 주인공들은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비극적인 상황에서 농담을 곧잘 던진다. 잠꾸러기 아말에게 바하르(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차 한 잔 대령할까요, 아말 동지?"라고 묻자 "꼭 그렇게 해주세요, 바하르 동지"라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 있을 전투에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태양의 소녀들'이라는 부대 이름으로 모여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끔찍한 사연을 갖고 있다. 대장인 바하르는 본디 프랑스에서 공부한 변호사이다. 그녀는 고향에 돌아와 단란한 가정을 꾸렸는데 친정집에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ISIS(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 무장조직에 의해 아버지와 남편이 무참히 총살당했고, 아들은 전사로 키워지기 위해 '새끼사자학교'로 끌려갔으며, 바하르 자신은 2년 동안 성노예로 살다가 겨우 탈출했다. 탈출한 바하르는 야지드 족 군대에 자원입대했는데 적들과 싸우다보면 언젠가 아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영화는 그녀의 여정과 현재 벌어지는 전투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이라크의 야지드 족은 크게 보아 쿠르드 족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의 거주지역을 ISIS가 점령하면서 대대적인 인종청소가 잇따라 5000명 이상의 남자들이 며칠 사이에 죽었고 7000명의 여인들이 잡혀가고 말았다. 야지드 족의 종교가 이슬람 정통신앙에서 벗어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이로써 야지드 족은 삶의 근거를 잃었고 결국 바하르 같은 여인들이 총들 들게 된 것이다. 이들의 전쟁에 프랑스 여기자 마틸드(엠마누엘 베르코)가 관찰자로 동행한다. 마틸드는 전장을 떠돌아다니느라 오랫동안 딸을 보지 못했고 폭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까지 실명한 상태다.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마틸드가 관찰한 '태양의 소녀들'은 언제나 전의에 불타고 있다. 새로운 시대, 곧 여성과 생명과 자유의 시대를 열기 위해 마지막 총알까지 발사할 것이다. 그리고 전투에서 죽는다면 그 주검은 땅으로 가라앉아 거름이 되고 피는 모유로 솟아올라 대지에 생명이 피어나리라. 용감한 여전사들이 여기 모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녀들과 달리 야지드 군 사령관 지렉 장군은 소극적인 편이라 연합군의 공습만 하염없기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다.

야지드 부대와 대치하고 있는 마을은 한 때 바하르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ISIS의 손아귀에 넘어간 상태다. 외곽에서 마을 내부로 통하는 터널이 있기는 한데 적들이 설치한 지뢰 때문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오늘 사로잡은 포로의 말에 따르면 마을에 '새끼사자학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 적을 섬멸하고 아이들을 구하려면 터널을 통과해 선제공격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작전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양의 소녀들'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앞뒤를 재며 꾸물거리는 남자들의 판단만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혹 아는가, 바하르의 아들이 그 곳에 잡혀있을지.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태양의 소녀들'은 무엇보다 먼저 철저하게 짓밟혀지는 여성의 인권이 눈에 띄는 영화다. 여성들은 ISIS의 성노예가 되어 여기저기 팔아넘겨지고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굳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야만성이 낳은 결과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인류 역사에서 일어났던 모든 전쟁에서 이미 오랫동안 여성은 겁탈당하고 착취당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황을 일반적인 이슬람 혐오로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태양의 소녀들'을 인권·고발 영화에 한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전쟁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전투를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두에 선 여전사들이 어떻게 적들을 섬멸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하르와 태양의 소녀들은 글자그대로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었다. 전쟁영화로도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무기 상에 팔려간 여인들을 바하르가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시키는 장면이 특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 과정에서 심지어 어느 여인은 출산까지 한다. 주인공 바하르 역을 맡은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유난히 눈에 익었다. 그래서 살펴보았더니 아담 드라이버가 나온 '패터슨'(2016)과 부산영화제 초청작이었던 '어떤 여인의 고백'(2012)에서 만나본 적 있었다. 좋은 얼굴에 연기력도 상당히 뛰어난 배우다. '태양의 소녀들'에서 적역을 맡았다.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영화 '태양의 소녀들' 스틸 / 사진제공=더쿱
확신에 찬 바하르와 달리 마틸드는 회의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위험을 무릅쓰고 악마적인 모습을 보도해도 세상은 여전하고 폭군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습관처럼 자기만족이나 하면서 전쟁을 고발하고 있다. 그랬던 마틸드에게 태양의 소녀들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지프차 뒤에 타고 전쟁터를 벗어나며 하는 그녀의 독백은 참으로 들을 만한 것이었다. "나 마틸드는 여성전사들의 노랫소리에 전율한다. 임무를 수행하는 강렬한 노래이자 선구자의 노래. 우리가 나설 것을 요구하는 그 노래는 인간의 운명에 저항하는 희망이다."

'태양의 소녀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 'Les filles du soleil'에서 'Les filles'는 '소녀들'보다 '딸들'이 적합한 번역인 것 같다.

모든 여성과 생명과 자유의 시대를 위하여!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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