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호│까칠함의 미학
KBS <패밀리>의 차지호는, 꽤 흥미롭다. 운영하는 커피 가게 간판이 1도만 기울어져도 그냥 못 넘어갈 정도로 까다롭고 부스스한 머리에 매사 덜렁대는 열희봉(박희본)에게 “못생긴 게 성질도 더러운 아줌마”라고 대놓고 놀리는데도 밉지 않은 남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재밌는 건 그 차지호를 다른 누구도 아닌 심지호가 연기했다는 점이다. 벌써 14년 전, 유난히 큰 키에 이목구비가 넘칠 정도로 작고 하얀 얼굴로 각인된 KBS <학교 2> 한태훈처럼 여전히 까칠하고 짓궂은 모습이 어울리는 심지호라니. 자연스레 심지호란 사람의 맨 얼굴이 궁금해졌다. 캐릭터로 덮여 있던 진짜 얼굴 말이다.

14년간 변치 않은 몇 가지 것들

와 <패밀리>의 심지호는 다른 듯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sXf2rutyVUYrps3yUc.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14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심지호의 맨 얼굴을 마주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 설탕 커피는 잘 안 마셔서.” 인터뷰를 시작하며 준비된 음료수를 권하자 돌아온 이 말부터 한태훈이나 차지호가 아닌 심지호이기 때문이다. 좋고 싫은 건 분명하고 그걸 드러내는 데에도 스스럼이 없는 심지호는 돌아가는 법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까다롭고 완벽주의인 전체적인 성향이 차지호랑 비슷해요. 같이 노는 무리에서도 뭔가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건 제가 되게 잘 하거든요. 물론 다른 사람이 해도 되지만 제가 직접 하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거예요.” 배우들은 다 예민해서 비슷하다고 말을 하다가 방점은 결국 심지호가 생각하는 심지호에게 찍힐 만큼 스스로를 너무 잘 아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일관된 심지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화장실에서 수건을 쓰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그의 말에 보기에 안 좋긴 하다고 동의하자, 곧바로 동그란 눈과 함께 들어온 반론처럼 말이다. “어? 보기만 안 좋은 게 아니죠. (웃음) 누가 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좀 그렇잖아요.”



완벽주의에 까다롭고 주관이 뚜렷한 남자. 속을 추리할 것도 없이 분명한 심지호의이런 태도가 모난 고집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보이는 건 그의 성격이자신을 알기 위해,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는 노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에 두 편씩 보던 영화가 좋아 알아서 길을 찾던 중학생 소년은 <학교 2>로 기회를 얻었고 철없는 남동생 신지석 역을 맡았던 SBS <유리화>, MBC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바람둥이 한재민 역을 거쳐 지금까지 자신과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석해왔다. 특히 차지호가 정반대의 성격인 열희봉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사랑이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만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차지호는 남들과 같은 미의 기준을 적용해 열희봉을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차지호와 열희봉 커플이 판타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훈남, 훈녀의 기준도 모르겠지만 꼭 훈남, 훈녀가 만나란 법은 없는 게 세상 일이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란 것처럼 심지호 안에서 캐릭터에 관한 생각은 늘 확실하게 서 있다. 배우 심지호에게 ‘그냥’이란 단어는 없는 셈이다.

“더 넓은 연기를 하기 위해 팔을 이만큼 더 벌려야 한다”



심지호│까칠함의 미학

심지호│까칠함의 미학
차지호가 이상하게 끌리는 이유를, 심지호를 보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뭐든지 분명한 이유가 있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그의 진짜 얼굴이 차지호에게 투영되어서가 아닐까. 물론 심지호의 말대로 연기가 가장 좋아서 오랫동안 해 왔지만 그리고 스스로의 색깔을 찾아 봤지만 아직 뚜렷한 이름표가 없기에 더 분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 넓은 연기를 하기 위해 팔을 이만큼 더 벌려야”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자신감과 깐깐한 모습만으로도 심지호의 다음은 충분히 기대된다. 잘못하면 작품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패밀리> 감독의 농담 섞인 말에 “제가 그렇게 비호감은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던 그 자신감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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