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표 아저씨가 최홍만과도 싸웠던 밥 샙을 이겼는데 프로레슬링 선수는 원래 그렇게 강한가요? 그리고 그렇게 강하다면 왜 진짜 격투기 대신 각본이 정해진 쇼를 하는 건가요?

궁금한 게 있어. 프로레슬링 선수랑 격투기 선수가 싸우면 누가 이겨?
좀 갑작스러운 질문인데? 정답을 원하는 거라면 굉장히 간단해. 둘 중 싸움을 더 잘하는 사람이 이겨. 싸움 잘하는 프로레슬링 선수랑 싸움 못하는 격투기 선수가 싸우면 프로레슬링 선수가 이기고, 그 반대면 격투기 선수가 이기고.

그게 뭐야. 그런 건 누구라도 대답하겠다.
말했잖아. 정답을 원한다면, 이라고. 원래 가장 정확한 답은 단순한 거야. 극진 공수도를 만든 故 최영의 선생님께서도 ‘무도에 우위는 없다. 단지 개인의 기량차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지. 어때, 명확하지 않아?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이왕표라는 프로레슬러 아저씨가 밥 샙이라는 거인 격투기 선수를 이겼다고 하기에 궁금해서 그래.
아, 그 경기? 그런데 그 경기 결과를 가지고 어떤 답을 해주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지금 두 선수 모두 종합격투기 룰에 의한 승부였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격투 전문가들은 격투 시합을 가장했을 뿐 프로레슬링처럼 각본이 만들어진 경기로 보고 있거든. 판정에 대비한 채점 요원도 없었고, 경기 중간 중간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도 많았고. 가령 이왕표의 뒤차기 한 방에 밥 샙이 너무 주춤거리는 장면 같은 거. 물론 그걸 가지고 승부 조작 경기라고 단정 짓는 건 안 되겠지만, 의혹이 있는 시합을 근거로 그 질문에 대한 설명을 해주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럼 만약에 그게 각본이 정해진 경기였다면 격투기 선수가 더 센 거 아니야? 어차피 프로레슬링이 더 세다면 그런 게 필요 없을 거 아냐.
음, 승패가 정해진 경기라고 가정하고 격투기 룰에서 이왕표가 이기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각본이 있어도 실제 격투와 분간하기 어려운 프로레슬링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면 누가 더 세냐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야. 또 네 말대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그건 이왕표라는 프로레슬러가 밥 샙이라는 격투가보다 약한 거지, 프로레슬러 전체가 약한 걸 보여주는 건 아니야.

그럼 정말 어떤 사람들이 더 센지는 알 수 없다는 거야?
정말 궁금한가 보구나. 굳이 따지면 격투 시합에서는 거기에 익숙한 종합격투기 선수가 프로레슬러보다 유리하겠지? 박지성이 맨유라는 세계 최고 클럽에서 뛰는 축구선수라고 해도 우리나라 프로야구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긴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사실 프로레슬러가 격투 경기에 적응하는 어려움이 박지성이 야구를 못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 기껏해야 소프트볼 선수가 야구에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 물론 그것도 피나는 노력이 전제되는 거지만 기본적으로 프로레슬러들의 신체적 능력은 격투기에도 충분히 통할 거라고 생각해.

하긴 다들 근육질에 덩치들도 무지하게 크긴 하더라.
응, 대부분의 프로레슬러들은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잘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힘이 좋아. 또 단지 보디빌더처럼 근육만 늘리는 거라면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당겨서 오래 움직이기 어렵겠지만 프로레슬러들은 언젠가 말했던 컨디셔닝 능력도 좋거든. 프로레슬링 단체인 WWF에서 벌어졌던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전설적인 ‘아이언맨 매치’는 무려 60분 동안 벌어졌어. 생각해봐, 60분이야. 라운드별 휴식 시간 같은 것 없이. 현재 종합격투기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UFC가 5분 씩 3라운드로 진행하는 걸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 물론 잠깐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격투경기에서의 체력과 어느 정도 정해진 각본이 있는 프로레슬링에서의 체력을 동일하게 둘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런 건 말 그대로 그냥 가능성 아니야? 프로레슬러가 격투기 시합에서 우승을 하거나 뭐 그런 결과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론이지. 그런데 정말 각본을 짜 놓은 것처럼 이왕표와 밥 샙 경기 얼마 후에 프로레슬링 챔피언 출신인 브록 레스너와 UFC 챔피언인 랜디 커투어와의 경기가 있었어. 대부분 전미 대학교 레슬링 선수권을 우승할 정도로 힘과 레슬링 실력이 좋은 브록 레스너라 해도 격투기 경험이 풍부한 랜디 커투어를 이기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지. 나 역시 그랬고. 그런데 결과는 레스너의 승리였어. 그걸로 프로레슬러 출신인 브록 레스너는 종합격투기 챔피언이 되었고.

브록 레스너인가 그 사람은 프로레슬링을 하기 전에 아마추어 레슬링을 했다며. 그러면 그게 더 도움이 된 거 아니야?
맞는 말이야. 실제로 많은 격투 전문가들은 그렇게 분석하고. 그런데 말이야, 다르게 보면 브록 레스너에게 그토록 훌륭한 레슬링 실력이 있기 때문에 프로레슬링을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브록 레스너 뿐 아니라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커트 앵글이나 미국 아마추어 레슬링 대회 챔피언인 바비 래쉴리처럼 훌륭한 레슬러들이 프로레슬링을 하는 게 우연은 아닐 거야. 그렇게 단련한 신체적 능력이 프로레슬링에 적합한 거라면 프로레슬링 역시 격투기에 필요한 신체 능력이 요구되는 종목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각본대로 움직이는 쇼를 하는 거야? 아니, 왜 사람들은 그 쇼를 즐기는 거지? 경기 결과를 예상하는 재미가 없잖아.
재미가 없다고? 그럼 너는 설마 장새벽이 강호세랑 맺어질 걸 예상하지 못하고 <너는 내 운명>을 본 거야? 혹시 이동욱이 사시는커녕 9급 공무원 시험도 못 붙고 백수가 되는 걸 기대하면서 <에덴의 동쪽>을 본 건 아니겠지?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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