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 2012년 3월 발매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은 2013년에도, 2014년에도 그리고 2015년에도 음원차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도 활동을 접은 가수들의 음원이 차트를 역주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음악은 공간적인 제약도 초월한다. 90년대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는 우연히 아르헨티나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흘러나와 엄청난 반응을 얻으며 이후 꾸준히 오프닝 곡으로 사용됐다. 이처럼 노래는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여기 시공간을 초월한 노래의 힘을 믿는 프로그램이 있다. JTBC ‘투유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슈가맨’은 지난해 방송된 다양한 음악예능들 중에서 MBC ‘복면가왕’과 함께 유이하게 시즌제가 아니었던 음악예능이었다. 레드오션인 음악예능 시장에서 당당하게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슈가맨’은 초창기 국민MC 유재석의 첫 번째 종편예능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고, 매주 시청률을 검증받았다. 하지만 ‘슈가맨’은 흔들리지 않고 ‘슈가맨’만의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비지상파 동시간대 프로그램 중에서 시청률 1위를 달성하고,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관련 단어를 올리는 등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떻게 ‘슈가맨’은 JTBC를 대표하는 음악 예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공감확대 재생산 뮤직쇼 ‘슈가맨’이 작은 공감을 큰 공감으로 만든 비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슈가맨 방청객# 현장감을 살려주는 세대별 방청객 ‘슈가맨’에서 소환하는 대부분의 음악들은 지금의 3~40대들이 어린 시절 많이 소비했던 음악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슈가맨’의 노래들은 좋았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한다. 3~40대들이 슈가맨의 노래를 알고 즐거워하는 사이, 슈가맨을 모르는 세대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슈가맨’은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100인의 세대별 방청객이었다.
100인의 세대별 방청객은 그 존재만으로도 ‘슈가맨’을 빛낸다. 슈가맨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리치의 ‘사랑해 이 말 밖엔’(5회)이나 하이디의 ‘진이’(12회)처럼 ‘슈가맨’에 대한 세대 간 인지도가 확연하게 드러나면 그것대로 재미있다. 세월이 그만큼 지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노래를 알지 못하는 세대들은 어떻게 노래를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izi의 ‘응급실’(5회), 서주경의 ‘당돌한 여자’(11회)처럼 100불에 가까운 불이 켜지게 되면 모든 세대가 알고 있는 노래란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100인의 세대별 방청객은 정말 ‘슈가맨’의 신의 한 수였다. 나와 다른 세대들이 노래를 받아들이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슈가맨’을 즐길 수 있다.
JTBC# 역시 투유, 진행의 신 ‘슈가맨’의 스튜디오는 비교적 무대가 낮다. 사실상 ‘슈가맨’은 투유와 프로듀서, 쇼맨과 방청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다. 투유, 유재석과 유희열은 계단 아래 세대별 방청객과 소통하며 ‘슈가맨’의 재미를 높인다. 방청객들이 생각하는 오늘의 ‘슈가맨’이 누구인지 들어보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방청객들을 웃음을 만들어낸다. 간혹 방청객들이 조용필, 강수지처럼 여전히 활동하는 인물들을 언급하거나 아직 소환하지 못한 또다른 슈가맨을 언급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유재석과 유희열은 방청객뿐만 아니라 슈가맨과 쇼맨, 프로듀서까지 쥐락펴락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투유와 함께라면 비예능인인 프로듀서들도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 다소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외모의 돈스파이크와 용감한 형제도 투유만 만나면 완벽하게 무장해제가 된다. 필터, 스윗튠처럼 대중들에게 얼굴이 다소 생소한 모차르트들에게도 병아리 같은 캐릭터가 생긴다.
슈가맨 역주행송# 아는 만큼 들린다. ‘역주행송 PT’ 역주행송은 ‘슈가맨’의 마침표다. 2016년의 감각으로 편곡된 역주행송을 들으며 작은 공감을 큰 공간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그러나 MBC ‘나는 가수다’, KBS2 ‘불후의 명곡’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역주행송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역주행송’의 가치는 어떤 노래가 더 좋은지를 보는 것에 있지 않다. ‘슈가맨’은 역주행송을 소개하면서 최근 유행하는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소개한다. 이뿐만 아니라 두 개의 곡을 한데 섞는 ‘매시업 기법’이나 스윙과 하우스, 미디움 템포 등 편곡과 관련된 지식을 전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음악적 지식들이 역주행송 PT시간에 쏟아진다. 일반인들에겐 어려운 개념들이지만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함께 알아가는 재미가 크다.
편곡을 통해 원곡을 뛰어넘는 ‘역주행송’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윤현준 CP는 “꼭 역주행송이 원곡보다 좋아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 함께 새로운 노래를 알아가고, 그 노래를 통해 원곡이 궁금해지고, 찾아 듣고 싶어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역주행’의 가치를 실현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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