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만남의 광장>>

"일반 작사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죠"

"김형석 작곡가님께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꿈꾸던 김도훈 작곡가님과 데뷔작을 함께 했어요"

"SM 가수들과 많은 작업, 시작하게 된 이유가 특별하죠"
황유빈 작사가./ 사진=조준원 기자
황유빈 작사가./ 사진=조준원 기자
<<노규민의 만남의 광장>>

텐아시아 노규민 기자가 매주 일요일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가요, 영화, 패션 등 연예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합니다.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과 연예계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봅니다.

텐션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표정 변화도 크지 않았다. 마마무, 엑소, NCT드림이 부른 히트곡가사를 쓰며 데뷔 6년만에 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작사가 황유빈(32)은 예정보다 10분 빨리 서울 중림동 카페에 들어왔다.

피곤해 보이는 표정보다 눈길을 끈건 손에 들린 태블릿.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놓치지 않기 위한 보물 1호라고 했다. 곡 얘기를 꺼내자 무뚝뚝해보이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처진 눈꼬리로 자신이 가사를 쓴 여러 아이돌 앨범을 들고 말문을 연 그에게선 새벽 작업에 찌든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다.

황유빈은 2016년 가수 허각과 4인조 남성 그룹 브로맨스가 함께 부른 '벌써 겨울' 가사로 데뷔했다. 태민, 효민, 첸, 디오, 김우석, 비비지 등 6년간 그를 거처간 스타들은 20여명. 빠른 성공의 비결을 묻자 '몸빵'이라는 앳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두 번이나 돌아왔다.
황유빈 작사가./ 사진=조준원 기자
황유빈 작사가./ 사진=조준원 기자
영어통번역과를 졸업하고 작사가란 길은 걷는게 특이해 보입니다.

어릴 때 말을 잘 못 해서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미디어를 좋아해서 영화 자막 공부에 치중했는데, 정해진 글자 안에 대사를 넣어야 하는 게 작사랑 비슷한 작업이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폭풍 같은 사춘기를 보냈는데, 복잡한 감정에 맞는 노래를 장르 구분 없이 다 찾아 들었죠. 더 좋아하는 음악을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도전하게 된 거예요.

전공이 영어가사를 쓸 때 도움이 되겠네요

맞아요. 번역과에서는 '이 단어는 왜 썼느냐' 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어요. 4년 내내 공부하면서 단어 하나부터 말의 뉘앙스까지 굉장히 민감해지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작사가를 하기 위한 트레이닝이 됐던 거죠.

작사가가 되기 위해서 따로 공부는 안했나요.

김형석 작곡가님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다니게 됐어요. 3개월 정도 다니다가 김형석 작곡가님께 "오디션 볼 수 없냐. 열심히 곡 써 보겠다"라며 메일을 보냈죠.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몰라요. 그런데 웬일인가요. 작곡가님이 돈을 주고 제 가사를 사셨어요. 당시 한 곡에 50만 원 씩 두 곡을 사셔서 100만 원을 벌게 됐죠. 대학생 때여서 제겐 어마어마한 돈이었어요. 팝페라 곡이 아직 공개는 안됐지만, 지금까지 오게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데뷔는 김형석 아카데미가 아닌 RBW에서 하게됩니다

기존 곡을 개사하는 연습을 지속해서 했어요. 그것들로 작사 파일을 만들어서 기획사를 직접 찾아다녔죠. 아무연고도 없는 JYP, 큐브, RBW, 젤리피쉬 등 무작정 갔어요. 아카데미로 들어오는 의뢰를 기다리지 않고 '몸빵' 한 거죠. (하하) 그만큼 절실했습니다.

문전박대 당하진 않았나요.

문 밖에서 2시간을 덜덜 떨면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있으면 '작사가 지망생이다. 가사 좀 봐달라"라며 전해 드렸어요.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안 왔죠. 기회가 닿은 곳이 RBW예요. 어떤 분께 가사를 전달했는데 그분이 김진우 대표님이셨어요. 그리도 한 달 뒤 쯤 연락이 오더라고요. '회사에서 일 같이하면서 작사가 기회를 가져 봐라'라고 말씀 하셨죠.

인연이 닿았지만 데뷔 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RBW에서 1~2년쯤 지낸 이후 성사된 거예요. 주제넘게 보자마자 '곡 좀 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분들에게도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열심히 준비하고 기다렸죠. 그러다 우연히 김도훈 작곡가님 작업실 앞에서 어떤 곡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이 곡은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용기를 내서 '그 곡 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드렸죠. 말도 안 되게 제게 곡을 주셨고, 꿈꾸던 작곡가님과 데뷔곡을 함께 하게 된 거예요. 그게 '벌써 겨울' 이에요.

#황 작사가는 '벌써 겨울'을 시작으로, 마마무의 'I Miss You' '고양이' 등의 작사에 참여하며 커리어를 키웠다. 'I Miss You'는 마마무 데뷔 이후 첫 선공개 곡으로, 7개 음원사이트 1위를 차지했으며, 3개월간 차트인 하며 팬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곡이다
'마마무·엑소 히트곡 제조기' 작사가 황유빈, "'몸빵'과 비효율을 견딘 것이 성공 비결" [TEN스타필드]
데뷔 뒤엔 SM 엔터 소속 가수의 곡을 많이 작업했습니다만.

이것도 사람들이 잘 안 믿더라고요.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한국저작권협회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 연락처 좀 누군가에게 가르쳐 줘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SM 엔터 A&R 중 한 분이셨어요. 앞서 제가 그룹 업텐션 타이틀곡 '나한테만 집중해' 가사를 썼는데, 엑소 '으르렁'을 만든 신혁 작곡가님 곡이었거든요. 제 생각엔 그 노래로 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SM에서 가사 의뢰가 왔어요. 다섯 번 정도 의뢰해 주셨는데 다 안 됐죠.

# A&R은 신인 발굴팀이다. 회사 소속 아티스트의 앨범을 기획하고 곡을 수집으로, 가사를 의뢰하는 등 제작과 관련한 일을 한다.

안됐다는 건 무슨 뜻이죠.

해당 아티스트의 곡이 나오면 아주 많은 작사가에게 의뢰해요. 그중에 제일 잘 맞는 가사 하나를 뽑는 거죠. 제 가사가 선택 못 받은 거예요. 저는 '일단 픽스가 안 돼도 다음에 또 연락 올 수 있게 좋은 인상을 남기자'라는 생각으로 가사를 썼고, 10번 정도 시도 끝에 태민 노래를 쓸 수 있게 됐어요.

엑소의 인기곡 '전야'도 쓰셨습니다.

맞아요. 태민의 'Crazy 4 U'가 먼저 픽스 됐는데 일정상 '전야'를 먼저 선보이게 됐어요. 태민 이후에 엑소 팀에서도 연락이 와서 연달아 작업하게 된 거예요. SM 같은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은 일반 가수들과 작사 하는 방식이 또 달라요. 그런 부분에 적응해야 했어요.

어떻게 다른데요.

세계관이죠. 그룹의 세계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곡을 써야 해요. 작사가들의 감성을 풀어내는 가사가 아니라, 아이돌 이미지에 맞는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세계관 스토리텔링'이 돼야 해요. 아티스트에 맞는 기획 작사가 필요하죠. 다시 말해 감성보다 필요한 가사를 써줘야 하는 거예요.

# 황유빈 작사가는 엑소의 '전야'를 시작으로, 태민, NCT 드림, EXO-CBX, 유노윤호, 최강창민, 첸, 슈퍼M, 태연, 디오, 샤이니 등 수많은 SM 가수들의 곡을 썼다.
황유빈의 작사가의  필수품 '작사 노트'
황유빈의 작사가의 필수품 '작사 노트'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자요"

"보통 작사, 작곡하는 분들은 새벽까지 작업하던데 잠 좀 잤어요?"라고 묻자, 황 작사가는 "잘 아시네요? 중요한 날이어서 일찍 자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 자정부터 새벽까지 가사를 쓰고,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잠이 든단다.

후배 작사가도 키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프로창작소라는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에요. 작년에 시작해서 이 한 몸 다 받쳤죠.(웃음) 기획사에서 곡을 받으면 공모할 수 있는 반이 1, 2기까지 나왔고, 지금 3기째인데 태연, 김우석 노래를 쓰게 된 제자가 나왔어요.

슬럼프 극복 비결이 있습니까

안 그래도 작년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슬럼프가 왔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가사를 많이 보다 보니까, 다른 사람의 스타일에 휘말려서 제 가사를 쓰는데 혼돈이 오더라고요. 이후 다시 제 가사에 몰두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은 과제가 생기더라고요. 그저 열심히 가사를 써야 합니다. 그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연애나 이별, 일상 경험을 통해 가사를 쓰나요

경험이 가사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오히려 음악을 많이 듣고, 노래에서 힌트를 얻죠. 노래에 맞는 가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종류의 음악을 찾아 들어요. 특히 아이돌의 노래는 경험보다 머리로 생각하는 간접적인 경험이 더 중요할 때가 많아요. 판타지적인 사랑 이야기가 통하거든요. 팬들이 진짜 멋있는 오빠의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멋있는 남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상상해야 해요.

히트곡이 많은 만큼 수입도 대단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열악해요. 예전에는 작사가 50%, 작곡가 50% 였는데 지금은 한 곡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지분이 많이 줄었어요. 특히 외국곡들이 많이 들어 오는데, 그 쪽에서는 보통 가사도 얹여서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더 줄어드는 거예요. 또 저작권료는 앨범 판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좋은 앨범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죠.

작사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비효율을 견뎌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수도 없이 많은 가사를 써도, 현재 시장 구조상 선택받을 확률이 높지 않거든요. 먹고 사는 문제로 접근하면 아마 즐겁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안타까운 구조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저는 창작자들이 함께 만들어 갈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에필로그
"사실 제가 박효신 님 때문에 작사가가 되어야겠다고 목표를 세웠어요. 박효신 님에겐 왜 들이대지 않았느냐고요? 진짜 좋아하는 분인데, 진짜 잘 써서 드려야 하잖아요. 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더 수련해서 좋은 가사를 써 드리고 싶어요"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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