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래: “여기서 크게 외쳐주세요! Say Music! Say Music!”
윤미래, ‘검은행복’을 부르며 관객들에게.
인생, 힙합, 음악. 세가지가 일치됐을 때 나올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결과에 관한 이야기.
윤미래
윤미래
Natasha Shanta Reid Yoon: 윤미래의 영어 이름. 윤미래가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곤 했던 타샤(Tasha), 또는 t는 여기서 유래됐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 문제로 이곳저곳 옮겨다니다보니 태어난 곳은 미국 텍사스였고, 독일에서 살기도 했으며, 한국을 왕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고, 학교에서는 그의 정체성 때문에 안 좋은 일만 생기면 그를 의심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깜둥이”라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미국인, 한국인, 흑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그런 윤미래에게 힘이 된 것은 음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군이기도 했지만 DJ 활동도 했고, 돈이 생기면 옷, 신발, 음반만 산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해 무려 3만장 정도의 앨범을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윤미래는 아버지를 통해 마돈나, 프린스, 알그린, 템테이션스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그는 파워풀한 목소리는 아버지에서, 발라드의 감성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미래가 흑인과 같은 보컬로 한국인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이유일지도.

업타운: 윤미래가 한국에서 첫 음악 활동을 했던 그룹. 업타운의 멤버이기도 한 정연준이 그룹 결성을 위해 멤버를 찾다 미국에서 윤미래를 만나 멤버로 끌어들였다. 정연준이 작곡하고, 이현우의 ‘꿈’, 이승철의 ‘방황’, 윤희중의 앨범 등 한국 흑인음악의 파니오니어였던 프로듀서 김홍순이 제작에 나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업타운의 데뷔곡 ‘다시 만나줘’. 지금 이 순간에도 회자되고 있을 이 노래는 흑인 음악의 펑키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대중성을 가져 당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업타운과 솔리드가 계속 활동할 수 있었다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하지만 윤미래가 기획사에 들어간 건 불과 13세였고, 데뷔는 15세였다. 기획사는 윤미래를 19세로 속였고, 미국인 아버지를 할아버지로 바꿨다. 업타운은 인기를 얻었지만 그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 건 아니었지만 원하는 걸 100%한 건 아니었다”고 말 했을 만큼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화도 나고 슬플 때도 있고” 기획사나 작곡가의 요구로 인해 많은 것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던 시절.

타샤니: 윤미래가 활동했던 듀오. ‘하루하루’, ‘경고’ 등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곡들이 수록됐고, R&B와 격렬한 댄스가 모두 가능한 두 멤버의 결합은 기대를 불러일으킬 만 했다. 그러나 SES, 핑클 등이 대세이던 걸그룹 시장에서 타샤니와 같은 콘셉트는 관심을 받기 어려웠다. 또한 업타운은 멤버 전체의 역량이 잘 조화되면서 흑인음악 스타일이 잘 조화된 1집과 달리 점점 윤미래의 보컬을 중심으로 발라드적인 성향이 강해지며 그룹의 색깔이 모호해졌다. 누구나 실력은 인정했지만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포인트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나 어렸다. 한국에 왔는데 무엇 하나 속 시원히 안 되던 시절. 그리고, 2000년에 업타운의 멤버 중 일부가 마약을 복용했다.

Spandau Ballet: 윤미래가 솔로 1집에서 부른 ‘삶의 향기’에서 합법적으로 멜로디를 가져온 노래 를 부른 가수. 는 ‘끝이 없는 인생의 긴긴 다리 빛이 없는 삶 속에 아주 천천히 따뜻하게 불어오는 삶의 향기가 날 채워주지’로 시작해 ‘이제 더 깊어진 눈빛에 눈물이 고이고’, ‘마치 인생은 숨바꼭질처럼 꼭꼭 숨고, 3일후 비워질 내 방에 침대를 바라보며 주인아저씨를 원망하며 라면으로 텅 빈 마음을 채워가며’ 같은 가사가 담겨있다. 업타운 멤버들의 마약복용 사건 당시 윤미래는 조사 결과 결국 무혐의를 받았지만 조사 과정은 윤미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고, 당연히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삶의 향기’는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이겨내려는 윤미래의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외롭게 자라고, 기획사가 나이를 고치고, 노래를 못부르는 상황이 와도 ‘삶의 향기’를 맡는다. 말 그대로 윤미래의 ‘Soul’을 느낄 수 있는 노래. ‘삶의 향기’가 담긴 윤미래의 첫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을 거뒀다.

박근태: 윤미래의 1집 앨범과 힙합 앨범 < t- gemini >의 프로듀서. 박근태는 윤미래의 1집 앨범에서 R&B/힙합의 장르적 특징은 가져오되 심플한 비트로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오도록 했고, 윤미래의 보컬은 ‘시간이 흐른 뒤’에서 낮게 깔리는 후렴구만으로도 강한 임팩트를 주면서 일반적인 국내 발라드 멜로디에 기대지 않고도 대중적인 곡을 소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반면 < t-gemini >는 다양한 비트와 함께 윤미래가 영어 랩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면서 래퍼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일본가수 Double과 함께한 ‘Double troube’은 2011년 현재에도 가장 완성도 높은 랩음악이라 해도 좋을 정도. 윤미래는 두 장의 앨범으로 한국 R&B/힙합의 최고수에 오른다. 그러나 전 소속사는 뒤늦게 윤미래가 마약혐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5억 원의 위약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고, 윤미래가 인터넷에 ‘한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등 착취당했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결국 윤미래는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몇년간 음악 활동에 제약이 걸린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절, 가장 뛰어난 보컬/래퍼가 활동할 수 없었다.

타이거 JK: 윤미래의 남편. 힙합크루 무브먼트의 수장. 윤미래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지하철 승객들 앞에서 “한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가 될 거다”라고 소리치고, 윤미래와 싸울 때는 “너 나 누군지 몰라? 나 타이거 JK야”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윤미래가 그러했듯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수많은 사건을 겪었고, 상처를 얻었고, 척수염에 걸렸다. 무대에 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사마저 불투명하던 힙합 호랑이는 엄청난 의지로 결국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버렸고,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이며 연인인 윤미래와 결혼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외롭던 힙합 뮤지션들이 드디어 자신의 소속을 만들던 순간. 삶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Ann: 윤미래의 3집 앨범의 ‘What’s up! mr. good stuff’, ‘잊었니’ 등을 만든 뮤지션. 윤미래의 보컬 레슨을 했다. 정확히는 레슨이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소울 메이트. 믿을 수 없겠지만 윤미래는 자신이 래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고,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극심한 긴장감을 겪을 정도였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프로듀싱에 나선 윤미래는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앤, 타이거 JK와 함께 “우리끼리 잼 세션한다는 기분”으로 곡들을 작업했다. ‘What’s up! mr.good stuff’에서 과거보다 더욱 여유롭게 노래를 가지고 노는 소울 보컬이나 흑인음악과 한국식 발라드의 딱 중간점에 있는 것 같은 ‘잊었니’의 독특한 색깔은 이런 작업 과정에서 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윤미래는 3집을 통해 랩과 보컬, 흑인음악과 한국 대중음악이 한데 섞이며 한국 대중음악계 안에서 흑인 음악을 하는 것에 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끈적거리고, 깊고, 여유롭고, 구슬프고, 그럼에도 담담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소울 보컬리스트의 탄생.

Thomas J. Reid: 윤미래의 아버지. 3집의 ‘검은 행복’에 참여하기도 했다. ‘검은 행복’에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인해 주위로부터 구박받고,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난 내 얼굴을 씻어내 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던 어린 시절부터 ‘열세 살은 열아홉 난 거짓말을 해야’했던 데뷔 시절,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음악이 그립다고 탈출’한 소속사와의 문제까지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결론은 결국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나를 위로해주네’다. 전소속사와 법적분쟁을 겪던 윤미래는 극심한 심적 고통에 음악을 관 둘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걸 깨달았고, 3집 앨범을 발표했다. 아버지의 참여를 통해 윤미래는 세상과 화해했고, 자신의 외모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쩌라고”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삶이 음악과 합일하고, 그것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유재석: MC. MBC 에서 윤미래-타이거 JK와 ‘Let’s dance’를 부르며 또다른 MC로도 데뷔했다. 유재석이 곡을 만들러 두 사람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유재석에게 자상하게 랩을 가르치며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즐겼다. TV에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힙합의 대표주자인 그들이 보여주는 소박함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두 사람의 인생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세상을 공격할줄만 알았던 힙합 뮤지션들이 누구보다 온화한 모습으로 사랑과 평화를 실천한다. 이후 윤미래와 타이거 JK가 보여주는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삶과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갔다. 힙합이 진정 ‘Peace’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부부.

조단: 윤미래-타이거 JK의 아들. ‘남들에게 행운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라’(祚檀)는 뜻으로 타이거 JK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다. 조단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행운을 나눠줬다. 윤미래는 조단이 태어난 뒤 “타이거 오빠는 죽을 만큼 사랑하지만, 조단이 태어나고 나서 남편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윤미래는 “삐뚤어질 수 있었고 포기할 수 있었는데” 조단을 통해 힘을 냈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함께 살아갈 가족이 생기고,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을 가정이 생긴 지금, 윤미래의 음악은 이전과 또 다를 것이다. Mnet 에서 윤미래는 이승철이나 윤종신처럼 날카롭거나 디테일하게 심사평을 하는 편은 아니다. 대신 울랄라 세션의 무대에 대해 “지금까지 무대 중 가장 신났다” 같은 말로 자신이 함께 출연자의 흥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미래가 출연자들과 함께 리듬을 타며 즐긴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출연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울랄라 세션 같은 팀들은 힘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이겨냈다. 그런데 최고의 실력까지 가졌다.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이란, 윤미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Who is next
윤미래와 같은 무브먼트 크루인 타블로의 아내 강혜정과 에 출연한 신하균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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