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김연우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동료가수들에게 활기차게 농담을 던졌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5개월 동안 칼을 갈았다”는 그의 농담은 5개월 전과 다른 그의 위치에서 나온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30일, 그렇게 김연우는 MBC 의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우승했고, 같은 날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이하 ‘시월에’)의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인지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김연우는 ‘시월에’에서 종종 이런 농담을 던졌다. ‘나가수’를 계기로, 김연우는 요즘 전국투어를 전회 매진시킨다. ‘시월에’에서 그의 공연이 ‘나가수’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건 당연했다. 그는 발라드 가수였지만, 무대 위에서는 가장 활기찼다. 첫 곡으로 그의 곡 중 가장 신나는 ‘몽’을 불렀고, “이 노래 부르고 떨어졌다”며 ‘나가수’에서 불렀던 ‘나와 같다면’을 열창했다. 노래의 하이라이트에서 마이크를 얼굴에서 멀리 떨어뜨린 채 오페라가수처럼 육성으로 공연장을 채우는 장면은 김연우의 가창력을 새삼 증명했다. 김연우의 오랜 팬들은 그가 그러지 않아도 엄청난 보컬리스트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우는 ‘시월에’에 함께 선 이소라, JK 김동욱과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을 불렀다. 정확히는 ‘나가수’에서 YB가 발표했던 버젼에 가까웠다. 그 앞에는 김연우와 JK 김동욱이 MBC 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발표한 ‘압구정 날라리’를 불렀다. ‘나가수’의 영향 때문인지 올해 공연장에는 중장년층 관객이 유독 많이 보였고, ‘시월에’는 작년에 Mnet 의 출연자들을 초대했다. 예능과 음악의 결합은 음원 시장을, 다시 공연시장을 바꾸고 있다.

‘시월에’, ‘나가수’와 가 만나면
[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공연 첫 순서로 나온 이소라는 ‘제발’ 등 특유의 우울한 노래를 부르기 전 “저는 제 역할 하려구요”라고 말했다. 과거 ‘시월에’에서 이소라는 어떤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발라드가 곧 ‘시월에’의 전체적인 정서였다. 하지만 지금 이소라는 ‘시월에’의 과거와 현재, 또는 공연의 콘셉트와 트렌드를 연결하는 접점이다. 더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서늘하게 퍼지는 이소라의 목소리가 있기에 ‘시월에’ 특유의 차분한 감성이 유지된다. 반면 김연우와 JK 김동욱이 ‘압구정 날라리’를 부르면서 관객들이 익숙한 노래에 일어서서 즐길 시간도 마련해야 한다.

분명히 공연의 통일성은 떨어진다. 성시경과 박효신이 이소라와 듀엣을 하며 삼각관계 같은 분위기를 만들 만큼 호흡이 두드러졌던 초기에 비하면, 10년이 된 ‘시월에’는 김연우와 JK 김동욱, 이소라의 단독공연이 보다 두드러졌다. 관객들의 프로포즈 시간이나 인터넷 투표로 세 가수의 대표곡을 선정하는 등 이벤트적인 면도 강화됐다. 10여 년 전의 공연이 세 가수의 음악회처럼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평소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곡들을 접하게 했다면, 지금 ‘시월에’는 세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투표로 가수의 대표곡을 뽑아 부르게 하는 것은 그만큼 전체적인 흐름보다 곡 하나의 인상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다.

음악 리얼리티 쇼가 바꾸어 놓은 것
[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강명석의 100퍼센트] 더이상 열창을 원하지 않을 땐 어디로 가야하나
그러나, 같은 날 ‘나가수’에서 김연우는 ‘내 사랑 내 곁에’로 1위를 했다. 그가 부른 ‘내 사랑 내 곁에’는 화려한 스케일의 편곡과 폭발적인 가창력이 가미된,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내 사랑 내 곁에’였다. 반면 피아노에 맞춰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담담하게 부른 이소라는 7위를 했다. 이미 대중은 ‘나가수’의 1위가 반드시 최고의 편곡이나 노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나가수’에서 조규찬이 ‘이밤이 지나면’을 불렀을 때, ‘나가수’의 한 선정위원은 “곡은 좋지만 ‘나가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교한 화음이 돋보였던 이 노래가 그리 폭발적인 느낌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규찬은 이 날 7위를 했다. 또한 이 날 대부분의 노래에는 폭발적인 열창이나 흥겨운 분위기의 편곡이 들어갔다. 김연우, 이소라, 조규찬, 또는 청중 평가단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공연이자 리얼리티 쇼인 ‘나가수’의 특징일 뿐이다. 가수들이 각자 짧은 시간동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나가수’에서는 순간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Mnet 에서도 크리스티나가 솔로 중 유일하게 TOP4에 들어갔다. 크리스티나는 공연장을 꽉 채우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곤 했다. 반면 그룹들은 원곡과 전혀 다른 편곡으로 승부를 건다. 편곡이 파격적이거나, 보컬이 파워풀하거나. 음악 리얼리티 쇼가 계속 나오면서 유리한 출연자들의 성격도 명확해지고, 쇼의 영향력은 음악시장 전체로 확산된다. 리메이크를 통해 과거의 음원들이 주목받고, 원곡을 파격적인 편곡으로 바꾸는 것이 유행한다. 그리고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를 가진 공연에서 리얼리티 쇼를 연상시키는 선곡과 무대 구성을 마련한다.

대중적인 브랜드의 공연에서 관객이 바라는 바를 충실히 만족시키는 건 당연하다. 어쿠스틱 기타부터 브라스 세션까지 다양한 소리를 최대한 선명하게 뽑아낸 사운드 역시 공연의 기본을 지키는데 충실했다. 다만 ‘시월에’의 현재, 그리고 같은 날 ‘나가수’의 결과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시월에’와 ‘나가수’에는 여전히 이소라가 , 이소라가 부르는 그 담담한 토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관객을 위해서는 더 스펙터클 해진 ‘내 사랑 내 곁에’도 필요해졌다. 대중과 멀어졌던 가수들이 돌아와 옛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전과 다르다. 리얼리티 쇼로 음악을 접하는 시대에, 우리는 공연장에서 점점 담담한 사색의 시간을 지워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