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와 연륜이 깊어진 세종 역의 한석규, 진정성과 유머를 가진 강채윤 역의 장혁, 청초하면서도 은밀한 소이 역의 신세경” 지난 7월 SBS 의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주연 배우 한석규, 장혁, 신세경을 두고 한 말이다. 언뜻 보면 종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세 배우의 이런 모습은 지난 29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한석규는 세종 이도를 “임금이 아닌 한 사람으로 그리면서 좋은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확고하면서도 여유있게 설명했고, 세종을 암살하려는 위장노비 강채윤 역의 장혁은 “그 시대 백성들이 임금이 준 문자를 받고 정말 행복했을까”라며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실어증에 걸렸지만 세종의 마음을 가장 이해하는 궁녀 소이 역의 신세경은 촬영 고충을 털어 놓으면서도 선배들의 기에 눌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 집현전의 연쇄살인사건 속에서 이들이 보여줄 화학작용은 어떤 모습일까. 10월 5일 첫 방송되는 의 세 배우를 미리 만났다.

16년: 16년 만의 드라마 컴백, 그런 숫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해왔으니까. 라디오, 연극, 영화처럼 내가 해왔던 모든 게 어차피 다 연기다. 사실 처음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뮤지컬 때문이다. 그러다 연극 무대에 오르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성우도 했고 드라마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 차이, 이런 거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한 모든 게 다 연기로 관통된다.

욕 하는 세종: 이 작품으로 우리가 몰랐던 세종, 이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랑이란 감정에 증오처럼 나쁜 것부터 좋은 것까지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이 들어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특정 이미지로 강하게 남아있지만 그 분도 선과 악이 모두 들어있는 사람이었을 거다. 그래서 욕을 하는 세종의 모습도 나온다. 시청자 분들에게 “아, 저 분도 한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작품이 그런 점을 부각해서 개인적으로 기쁘다.

지도자: 욕심이 있다면 감히 시청자분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좋은 지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불행이랄까. “과연 좋은 지도자상이란 무엇인가” 이런 거에 대한 국민들의 아쉬움이 있지 않나. 되도록 그런 불만들을 이도를 통해 생각볼 수 있길 바란다. 그냥 연기를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이 끝나더라도 많은 분들이 “가장 괜찮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무언가를 남겨놓고 싶다.

연기: 연기를 하면 할수록 시청자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인물을 보여드릴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도도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살아있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다.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세종은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지만 가장 모르기도 한 분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으로서 “이런 개인사, 이런 가족사 속에서 왕이 됐고 한글을 만들었구나”를 생각하니까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했을까” 배우는 몸을 통해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이도를 내 몸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다.

실어증: 에서 맡은 소이란 인물은 실어증을 앓고 있다. 초반까지는 내가 영상으로 말하는 장면이 방송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감정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그만큼을 보충해서 표현해야 될지 걱정했다. 촬영 하면서도 어려운 게 소이는 필담(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는 행위)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한꺼번에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힘들었다. 대신 지금은 서서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익숙해진 것 같아서 좋다.

나이: 인물 소개에서는 소이가 32살로 나오지만 극중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이가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소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느낌이나 소이가 해야 되는 일들을 보면 분명 성숙한 느낌을 주는 친구다. 감독님도 처음에 나한테 그런 느낌을 원한다고 하셨고. 언뜻 보면 나도 성숙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계속 보다보면 내 나이가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최대한 배제하고 좀 성숙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꿈: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굉장히 좋았다. 내가 경험이 많거나 선배님들처럼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직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작품을 책임질 입장은 아니다. 아직은 많이 배워야 하니까. 멋진 드라마 속에 내 모습이 담겨 있단 것만으로도 설렌다. 이렇게 멋진 선배님들, 작가님, 감독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

액션: KBS 의 이대길 때문에 액션 배우로 내 이미지를 좀 한정시키시는 분들이 많다. (웃음) 이번 작품의 강채윤과 이대길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액션 스타일 등도 많이 다를 거다. 사실 액션 스타일은 배우인 내가 아니라 감독님이 연출하시면서 캐릭터를 묘사하는 거에 달린 것 같다. 촬영을 해 나가면서 수사의 포인트도 잡고 액션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채윤은 왕 암살을 계속 시도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배경 속에서 액션 스타일은 대길이와는 다른 강채윤 캐릭터와 같이 버무려서 표현되지 않을까.

강채윤: 처음 이정명 작가의 원작을 보고나서 강채윤을 할 생각이 없었다. 강채윤이란 캐릭터에 그만큼의 매력을 못 느낀 게 사실이고 원작에서 워낙 재밌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근데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니까 강채윤 캐릭터가 많이 각색됐더라. 원작과 달리 강채윤의 과거 시절 사연도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강채윤이 전형적인 화자였는데 이야기 부조리를 같이 느끼고 어떤 상황에서는 대립을 하면서 풍성해지는 지점이 생겼다. 이런 강채윤의 심리를 많이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디테일: 연기하면서 가장 키포인트로 잡은 것은 노이로제다. 강채윤에겐 어쩔 수 없이 미궁을 풀어가기 위해 수사를 해야만 하는 노이로제가 있다. 사실 왕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백성 입장에서는 뭐가 좋은 지 잘 모를 수도 있고 무조건 “감사합니다”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다. 강채윤은 왕이 만든 한글을 처음으로 모니터하고 받아들이는 역할인 만큼 그런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 과연 민주공화국이 아닌 그 시대에 백성들은 행복하게 살았을까? 신분제도가 강한 양반의 나라, 조선에서 양반이 아닌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 신분제의 꼭짓점인 왕에게 대항할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와 노이로제로 강채윤이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재밌다. 한글을 만든 이와 받아들이는 이 사이의 삶의 애환이 잘 담기도록 노력하겠다.

사진제공. SBS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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