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시간은 얄궂다. 무조건 쏟아 붓는다고 반드시결과를 보장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정성스레 투자하면 한 번씩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8년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단역을 시작으로 5년째 배우로 살고 있는 김영광에게도그렇다. MBC <트리플>부터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까지, 그는 소년과 남자 사이에 있는 여러 캐릭터를 연기했다.중간 중간 헤매기도 했지만 “잘 될 것 같은 느낌을 아주 잠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얄궂은 시간 속을 꾸준히 달린 덕에 드디어 <우결수>의 공기중으로 반짝반짝한 순간을 남기게 된 김영광.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텐아시아>가 2013년 주목할 만한 배우 두 번째로뽑은 김영광에게 그 반짝거림은 자주 오지 않아 더 소중한 순간의 희열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② 김영광 “보일락 말락 했던 실끝을 확 잡은 느낌”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남자. 김영광은끝내주게 멋진 남자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데뷔 때부터 남자보다는, 소년의 얼굴로다가왔다. 그가 <트리플>의 재욱, KBS <아가씨를 부탁해>의 허당 집사 정우성으로보여준 소년의 미소는 훤칠한 키만큼 시원했고,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화이트 크리스마스’ 조영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년의 에너지는 원래 김영광의 것인 듯 잘 어울렸다. 멋있는 남자처럼 수트를 입고 아련하게 한 여자를 바라보지만 이상하게 소년 같았던 KBS <사랑비> 한태성도 새삼 김영광의 그런 얼굴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든 생각을 비웃듯 김영광은 정말 남자가 되어 나타났다. 절대 소리치는 법 없고 사랑해 달라 외치지도 않지만여유롭게 동비(한그루)와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던 <우결수>의 공기중으로 말이다. 놀랍게도 김영광은 정말 ‘끝내주게 멋진 남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멋진 남자를 향한 김영광의 열망은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만나서 빛을 발했다. 틀에 갇히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넣어 연기할 때 살아나는 그에게 <우결수>는 날개가 됐다. “직접 느끼고 생각해서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연기 방식이 이미 정해져있으면 거기에 맞추기 너무 어려워요. 그런데 이번엔 감독님이 미리 준비하고오는 걸 안 좋아하셔서 재밌었어요.”카리스마로 무장한 게 아니라 힘을 빼서 매력적이었던 나쁜 남자 공기중은 다른 무엇보다 김영광의 “뻔뻔함”으로 완성됐다. 그리고 이 뻔뻔함은 마음대로 연기가 안 돼 배우 생활 4년 동안 “많이 울고 힘들어 하다 보니” 생긴 변화였다. “기중이 하는 말에 다 설득되지도 않았고 동비한테 이제부터 전에 니가 한 모든 키스는 무효다 라고 할 땐 으악! 정말 너무 오그라들었어요. 근데 이상하게 참 뻔뻔해지더라고요. 예전엔 벽에 부딪칠 때면 이것저것 해보다가 짜증냈는데 이번엔 이해 안 돼도 ‘이게 맞겠지’ 라고 생각하고 했어요.” 쉽지 않은 현실에 화도 치밀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부딪쳤던 덕분에 김영광은 소년의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보는 이를 끌어들일 수 있는 남자의 카리스마를 얻었다. 우연으로 스칠 수 있었던 한 작품을 운명으로 만든 진짜 힘은 김영광이 혼자 싸우며 이어 온 이 끈기였다.

끈기있는 소년에서 여유있는 남자로

반짝반짝 빛나는│② 김영광 “보일락 말락 했던 실끝을 확 잡은 느낌”
부족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도 뻔뻔하게 소화하는 건“기복이 심한” 김영광에게 무엇보다 의미 있는 무기다. “잘 하다가도 캐릭터가 틀에 박혀있는 걸 만나면 스트레스만 받아요. 그럴 때도 살아있는 연기를 해야 되는데 그 틀을 못 깨더라고요.” 틀을 깨려고 할 때마다 그를 붙잡았던 건 갈피를 잡지 못해 복잡했던 김영광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잊힐까 두렵고 빨리 성장하고 싶지만 어른처럼 얽매이고 싶지는 않을 만큼고민이 많았고 결국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어려웠다. 그런 김영광이 완벽주의는 잠시 잊고 숨을 고르게 됐다는 건 오기로만 부딪쳤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못하는 것도지금처럼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하다 보면 계속 잘 할 거 같아요. 한 계단 한 계단 아주 천천히 올라가고 있긴 한데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거 같아요.” 끈기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김영광이, 이젠 여유와배짱도 쥐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외치던 김영광의 파이팅을, 기중으로 보여줬던 것이상의 성장을 계속해서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배우로서 어디쯤 올라간 것 같은지 묻자 이제 막 훈련 마치고 자대 배치 기다리는 훈련병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본격적인 군 생활을 기다리는 훈련병처럼 앞으로가 지겹고 막막하다는 말은 아니다. “보일락 말락 했던 실의 끝을 확 잡은 느낌”처럼, 배우로서시간을 쏟아 부은 결실을 이제 맛본 김영광에겐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들끓는 순간이다. “굳이 세고 슬픈 캐릭터를 맡기보단 망하든 말든 마라톤처럼 한 번 철저하게 준비해서 연기해보고 싶어요. 계속나를 극한으로 몰아 부치고 시련을 견디면 내게도 행복이 오겠지, 하는 뻔한 스토리가 좋거든요.” 김영광이 배우로서 제대를 하고 돌아올 때 정말그렇게 될 지는 장담할 순 없다. 그의 바람대로 뭐든지 다 되는 남자가 되어 있을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재촉하거나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다리면 언젠가 김영광은 결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든 뻔하지 않게 말이다. 지금 김영광은‘끝내주는 남자’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