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디자인 조기교육 시대

‘아, 아아아, 아아, 아’ 우리말로 풀어보면 기껏 ‘가나다 송’ 정도일 것이다. 일본어 철자의 첫 번째 모음 ‘あ(아)’를 서로 다른 수십 개의 음으로 노래해 이어 붙인 이 노래는 친숙한 소리의 멀리 하기 작업이다. ㄱ, ㄴ, ㄷ의 ㄱ이 이렇게 생경한 소리였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림이다. 동그랗게 둘둘 말던 선이 사과가 되고, @마크가 되며, 주방의 주전자 모양으로 확대된다. 가장 친숙한 말이자 소리, 그리고 동시에 문양인 문자는 이렇게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꼴로 완성된다. 일본 NHK 교육방송의 디자인 조기 교육 프로그램 <디자인아>는 어린이가 언어를 배울 때 익히는 철자 하나 하나를 그대로 디자인에 적용했다. 그리고 디자인으로서의 언어 ‘あえいおう(아에이오우)’를 이야기한다. 참신하고 신선한 기획이다. ‘가나다 송’, ‘ABC 송’이 꼭 언어 교육만을 위한 도구일 필요는 없지 않나. 오히려 가나다, ABC야 말로 세상을 보는도구 즉, 디자인의 눈이어야 한다.



지난 11월 일본에선 ‘2012년 굿 디자인상’이 발표됐다. 이 상은 일본디자인진흥회가 매년 상품, 캠페인, 프로그램, 가수, 음식, 유행어 등 장르를 막론하고 디자인적인 가치를 보여준 것들을 꼽아 기념하는 행사다. 올해에는 운동 중 소모 칼로리, 스텝 시간 등을 측정해주는 나이키의 퓨얼 밴드, 혼다의 신형 경차 N시리즈, NHN 재팬의 채팅 어플리케이션 라인 등이 수상을 했다. 그리고 대상은 <디자인아>에 돌아갔다. 심사위원단은 “디자인이라는 테마를 어린이를 상대로 한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는 점이 혁신적이며, 일본의 디자인 교육이란 측면에서도 임팩트가 큰 작품”이라고 평했다. 크리에이티브한 시점을 사운드와 그래픽 요소를 적절히 활용해 표현한 점과 뛰어난 완성도도 높게 평가 받았다. <디자인아>는 11월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실시된 일반인 투표에서도 2248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외국어만큼 중요한 세상을 보는 눈의 교육
는 그래픽 디자이너, 뮤지션, 웹 디자이너를 기용해 크리에이티브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47tpJLCyborOJdJf.jpg" width="555" height="185" align="top" border="0" />

<디자인아>의 방송 시간은 단 15분이다. 그것도 토요일 이른 아침 7시다. 편성표 내에서만 보면 별 비중 없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하지만 <디자인아>는 확실한 콘셉트와 다양한 응용, 그리고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톱 아티스트들을 일선에 기용해 크리에이티브한 프로그램을 완성해냈다. <디자인아>를 책임지고 만드는 건 프로듀서나 작가가 아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우 타쿠, 뮤지션 코넬리우스, 웹 디자이너 나카무라 유우고 3인이 핵심 멤버다. 사토우 타쿠는 롯데의 민트 껌 시리즈,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모든 상품 등을 기획한 디자이너며, 코넬리우스는 시부야계 1세대라 불리는 뮤지션이다. 나카무라 유우고는 유니클로, 핸드폰 iida 등의 그래픽 아트를 담당했던 아티스트다.이 세 사람은 딱딱한 교과서적 지식에서 벗어나 일상의 물건에서 디자인의 팁을 찾았다. 하나의 사물을 여러 사람이 둘러싸고 데생을 해보는 기획이나, 주방 잡기의 선을 확장하거나 축소해보는 작업은 일상에서 디자인의 원형을 찾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 원형을 새로운 각도로 사고하는 방법이다. 외국어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세상을 보는 눈의 교육이다. 그 눈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조기교육이 필요한 범주일 것이다. <디자인아>를 보며, 그들의 ‘아에이오우 송’을 들으며 일본의 아이들이 몹시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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