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많이 들어본(것 같은) 노래가 좋은 거야.” MBC <무한도전>에서 동료들의 노래를 만들게 된 초보 작곡가 박명수는 자신의 부족한 작곡실력을 이렇게 변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작곡가 김도훈은 최근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노래’ 두 곡을 만들었고, 두 팀의 타이틀 곡이 됐다. FT아일랜드의 ‘좋겠어’(링크)1,2절에 깔리는 트럼펫 연주는 트레인의 ‘50 ways to say good bye’(링크)의 도입부에 나오는 트럼펫 연주와 비슷하다. ‘50 ways to say good bye’처럼 ‘좋겠어’도 라틴 기타가 이끌던 전반부에서 강한 록 사운드의 후렴구로 바뀌고, 후렴구의 ‘Lonely lonely’는 ‘50 ways to say good bye’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Help me help me’와 유사하다. 에일리의 ‘보여줄게’(링크)도 후렴구 일부와 느린 전개에서 댄스로, 다시 느린 전개로 돌아가는 구성이 푸시 캣 돌스의 ‘Hush hush’(링크)를 연상시킨다.

표절과 모방, 창조적 응용 사이



대중은 `보여줄게`와 `좋겠어`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고 그 판단이 곧 김도훈의 현재 위치를 정해주는 기준이다.
‘좋겠어’와 ‘보여줄게’가 표절이라는 뜻이 아니다. 두 곡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비교된 곡들과 비슷하지만, 멜로디와 편곡의 디테일은 매우 다르다. 전개와 편곡의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음악의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에는 다른 곡과 일부가 거의 같아도 어떤 방식으로 푸느냐에 따라 표절, 모방, 창조적 응용이 갈린다. 극단적으로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는 표절 소송에 휘말렸지만, 그래미는 이 곡을 ‘올해의 노래’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래미는 표절 소송을 제기한 뮤지션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이 곡을 판단한 셈이다. 작곡가의 양심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곡가가 우연히 비슷한 곡을 만든 것인지, 표절할 의도였는지는 당사자만이 안다. 전세계적으로 표절이 당사자들이 법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된 이유다. 지금 이 시점의 대중음악의 모든 요소들을 검토해 표절 여부를 따지는 것 외에는 판단할 방법이 거의 없다. 김도훈은 과거 CNBLUE의 ‘외톨이야’가 표절 소송에 휘말렸지만, 법원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 곡의 창작성을 논할 수는 있어도 표절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대중은 ‘보여줄게’와 ‘좋겠어’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다. 대중은 두 곡이 푸시캣 돌스와 트레인의 곡과 비슷해서 싫어할 수도, 그럼에도 장점을 찾을 수도 있다. 아예 비교된 곡들을 듣지 못하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 판단이 곧 두 곡 또는 김도훈의 현재 위치를 정해주는 기준이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디지털 음원사이트 멜론의 월간차트는 올 한해 가요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1위 팀들은 SM-YG-JYP 소속(빅뱅, 태티서, 싸이, 원더걸스)이거나 걸 그룹(씨스타, 티아라), 또는 리얼리티 쇼 출신(버스커 버스커)이 아니면 인기 드라마 O.S.T에 참여(린, 서인국&정은지)했다. 대형 소속사의 마케팅의 힘을 얻거나, 미디어의 지원이 있는 곡들이 오랜 인기를 얻은 셈이다. 공교롭게도, 에일리와 FT아일랜드는 이런 유형에서 벗어난다. 인지도는 높은 편이지만 곡이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않고, 대중과 미디어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에일리 같은 여성 솔로는 음악 마니아보다 디지털 음원만 듣는 일반 대중에게 소구되고, FT아일랜드는 열광적인 팬덤 중심의 아이돌 밴드다. 이들은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있는 셈이다.

김도훈이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갖고 이런 가수들에게 곡을 준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SM-YG-JYP가 김도훈에게 트렌드를 이끌어갈 댄스곡을 맡길 가능성이 낮다. 그들은 내부에 여러 프로듀서가 있다. 표절 시비를 겪어도 소속 프로듀서가 만든 곡에서 발생할 일이다. 필요하면 해외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을 수도 있다. JYP 소속이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매니지먼트를 맡는 2AM은 김도훈에게 ‘너도 나처럼’을 받았다. 하지만 조권의 솔로 타이틀곡은 세계적인 DJ 아비치가 만들었다. 또한 세 회사를 비롯해 씨스타나 티아라 같은 인지도 높은 걸 그룹은 해외 활동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게다가 인터넷은 인기 아이돌의 표절 시비에 민감하다. 인터넷도, 해외 진출도, 곡을 받을 수 있는 해외 작곡가도 없던 시절에는 정상의 인기 가수도 번안곡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인기 가수, 특히 인기 아이돌이 표절 시비로 치뤄야 할 대가는 점점 커지고 있다.

최대한 빨리, 가수에 맞춰, 유행에 벗어나지 않는 곡



대형 기획사와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되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김도훈 같은 작곡가가 살아남는 방법은 `with me` 같은 곡을 다시 만드는 게 아닐까.
에일리와 FT아일랜드 같은 팀들은 이런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대중도, 미디어도 곡의 창작성과 완성도의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리얼리티 쇼 출연자도, 인디도 아니기에 어느 정도 유행을 따라가며 일정 수준 이상의 반응을 얻어낼 곡이 필요하다. 김도훈 같은 프리랜서 작곡가들은 이런 시장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 최대한 빨리, 가수에 맞춰, 유행에 벗어나지 않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 파격적인 시도는 의뢰한 회사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있고, 여러 가수에 맞춰 곡을 쓰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그에 필요한 시간은 확보하기 어렵다. 에일리의 데뷔곡 ‘Heaven’(링크)이 비욘세의 ‘If I were a boy’와 리한나의 ‘Umbrella’(링크) 등을, FT아일랜드의 이번 앨범에 수록된 ‘Stay with me’(링크)가 오프스프링의 ‘You`re gonna go far, Kid’(링크)를 연상시킨다. 두 곡은 김도훈이 만들지 않았다. 두 팀의 노래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노래’이곤 하는 것은 그들 소속사의 책임도 분명하게 있는 셈이다. 최소한 소속사는 발표하는 곡이 해외의 유명 곡들과 비슷한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그래도 음원이 팔리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장은 점점 좁아지고 김도훈 같은 작곡가가 활동할 시장도 줄어든다.

용감한 형제는 씨스타를 통해 한 그룹에게 최적화된 곡들을 만들고, 아이돌 그룹을 직접 제작했다. 방시혁은 2AM의 타이틀을 김도훈에게 맡겼다. 프리랜서 작곡가들 중 일부는 그렇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팀을 꾸리거나, 경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장의 중심에 진입하려 한다. 그들의 방식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모든 작곡가에게 제작자로 나서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열이 뚜렷해진 시장의 법칙에 순응하라는 것 밖에 안 된다. 곡을 줄 수 있는 가수들은 점점 줄어들고, 대중은 `들어 본 (것 같은) 노래`를 아직 좋아하기는 해도 열광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김도훈 같은 프리랜서 작곡가는 대형 기획사와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되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것은 그들이 곡을 주는 회사의 운명과도 관계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이전처럼 새로운 노래로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까. 지금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김도훈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휘성의 ‘With me’ 같은 좋은 곡을 다시 만든다면 상황을 바꾸는데 좀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노래는, 많이 안 들어 본 것 같은데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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