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녁의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을 쓴 최희라 작가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고 씩씩한 농부고, 그래서 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 드라마가 드물게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돌직구처럼 묵직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중요한 문제를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질문했던 메디컬 드라마 SBS 를 통해 재능 있는 신인의 등장을 알렸던 최희라 작가는 두 번째 작품 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단순히 흥행한 드라마라서가 아니다. 중증외상의학이라는 생경한 분야를 통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과 시스템에 날카로운 메스를 댄 은 최희라 작가의 스승 김정수 작가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드라마” 였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탄탄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그래서 어쩐지 최인혁과 닮은 최희라 작가와의 대화다.

데뷔작이었던 에 이어 도 메디컬 드라마라는 장르의 지평을 넓힌 작품이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최희라: 작년 7월에 권석장 감독이 갑자기 연락해 왔다. 직업물을 하자고 하셔서 만났는데 결국은 메디컬 드라마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이재규 감독님한테 나를 추천받았는데 본인은 원래 메디컬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는 물론이고 국내외 어떤 드라마도 본 적이 없었다더라. (웃음) 처음엔 다른 아이템을 얘기했었는데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갖고 있던 다른 시놉시스 중에 한방병원에서 한량처럼 살다가 환자가 죽게 되면서 변화하는 민우(이선균) 같은 의사의 성장담과 인혁(이성민)의 캐릭터 정도가 잡혀 있던 것이 있었는데 좀 서정적인 분위기라 감독님이 좋아하셨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리자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골든타임> 최희라 작가 “최인혁처럼 돌직구를 던지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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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크게 민우와 인혁의 관계, 중증외상의학이라는 분야, 그리고 조직과 시스템,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최희라: 처음 시작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리자는 것.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사람, 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일을 할까 라는 질문에서 중증외상을 다루는 의사가 나온 거고 그 다음에 인턴의 성장까지 확장되었다. 시스템에 대한 건 우리나라의 중증외상 현실 자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시스템이라서 자연스레 연결된 거다.

인혁이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민우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2막이, 재인이(황정음) 이사장 대행을 맡은 뒤 병원 경영과 의료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3막 같았다.
최희라: 각 인물에게 모두 역할이 있었다. 민우는 인턴으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맡고 인혁은 외상센터를 조직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재인이를 통해서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된다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실패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나라지 않나.

은 개인의 선의와 헌신만으로 쉽사리 바꿀 수 없는 현실 안에서 어떻게 최선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기도 했다.
최희라: 재인이가 이사장이 되면 사람들은 이제 한 방에 외상센터가 세워지겠구나 하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더 험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 물론 작품 후반으로 가면서 관련 기관과 이런저런 충돌이 생겨서 그걸 해결하는데 시간을 많이 까먹다 보니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특히 리베이트 에피소드를 다루려고 했는데 사정상 못 쓰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정형외과 황세헌(이기영) 과장 후배의 교통사고 에피소드는 원래 후배가 아니라 리베이트를 하는 제약회사 직원이었다. 만약 이 사람이 죽으면 되게 큰 사건으로 비화되어 병원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되고, 그걸 막기 위해서 인혁은 환자를 무조건 살려야 하고 과장들은 재인이한테 무릎 꿇어야 하고 상황으로 가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자문을 도와주신 병원 측과 조금 민감한 문제가 걸려서 바꿨다.

인혁이 뛰어난 의사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사장이 된 재인이 계속 좌절을 겪는 걸 보면서 영웅적인 인물에 쉽게 기대는 타입이 아니구나 싶었다.
최희라: 판타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은 그러면 안 되는 작품이었다. 물론 나도 현실의 시스템을 몰랐으면 판타지로 채웠을 것 같다. 하지만 취재 하면서 시스템의 문제를 속속 알게 되니까 ‘이것도 재밌는데?’ 싶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삽질을 하고 여기서 이렇게 막고 있는 거구나, 그럼 그렇지, 하고 알게 되니까 판타지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쓸 수 있었다.

판타지를 딜레마가 대체한 셈이다.
최희라: 사실 인혁의 캐릭터는 약간 판타지이지 않나. 어느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 전국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의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이 드라마를 리얼하다고 말하는 건 나머지 부분들이 다 리얼해서다. 엄연한 현실 위에 인혁을 갖다 놓았기 때문에 리얼하다고 하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실제로 인혁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의 허구로 받아들여지는 거지.

리얼리티라는 건 취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데, 때의 취재 경험이 이번에도 유용했나.
최희라: 그렇지는 않다. 산부인과는 시스템과 그다지 충돌하지 않아도 되는비교적 독립적인 과이고 그 중에서도 분만실과 산과에 제한한 이야기였으니까. 게다가 윤리적 딜레마와 그로 인한 개인 간의 충돌의 문제가 더 첨예했다면 중증외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용어도 새로 외워야 했고 환자가 들어오는 시스템 자체도 달랐다. 게다가 이 일은 하시는 선생님도 별로 없고 외과 의사라고 해도 잘 모르기도 하고. 굳이 노하우라고 표현한다면 에피소드가 그냥 사건이 아니라 감정 덩어리일 수 있고 그 안의 희로애락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 정도? 멜로드라마 한 번 써봤다고 다음 멜로가 쉽게 써지는 게 아닌 것처럼 메디컬 역시 마찬가지다.

메디컬 드라마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기대치 자체가 높기 때문에 취재가 더욱 중요했을 것 같다.
최희라: 메디컬 드라마 시청자는 대사 하나, 자막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일곱 살짜리 조카가 있는데 “엄마, ‘어레스트’랑 ‘익스파이어’가 뭐가 다른 거야? 둘 다 죽는 건데 어떻게 다른 거야?” 이렇게 묻더란다. 애들도 이렇게까지 궁금해 하면서 본다. ‘이 의사들은 어떻게 살까’, ‘싸우면 어떻게 싸울까’, ‘저 시스템 안에서 환자를 살리겠다는 싸움을 할 때 그냥 감정으로 할 수는 없지 않나, 논리 대 논리로 싸워야 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흐르다보면 당연히 취재가 중요한 거다.

“너무 괄시가 심해서 취재하다 도망 나온 적도 있다”
<골든타임> 최희라 작가 “최인혁처럼 돌직구를 던지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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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 의사를 만나서 말을 거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최희라: 드라마 작가고 이런 작품을 하고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드라마를 안 보시는 분들이니까. 너무 괄시가 심해서 취재하다 도망 나온 적도 있다. 중증외상에 대한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삽질도 많이 했다. 의정부 성모 병원에 외상 환자가 많이 온다는데 그걸 모르고 여의도 성모 병원에 가서 한 열흘을 까먹고. 하지만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그 선생님들 중에 도와주고 싶어 하면서 능력도 갖춘 분들이 간혹 귀하게 계신다. 해운대 백병원은 마침 신생 병원인데다 외상외과 의사가 다섯 분이나 계셨다. 그곳에서 경규혁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중환자 케어를 제대로 하시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명인데다 본인은 수술 경험이 많지 않더라도 외과의들이 이렇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취재원으로 정말 좋았다. 또 응급의학과 과장으로 계신 조준호 선생님도 열린 마음도 갖고 있으면서 지적이고 코드가 맞는 분이셨다.

취재 비법 같은 것도 있나.
최희라: 내가 취재 태도가 좋은가보더라. (웃음) 말귀를 알아듣고 흥미로워하니까 처음엔 얼마나 알아듣겠어? 라고 생각하시다가도 나중에는 다 얘기를 해주신다. 사실 처음엔 환자 밀고 들어와서 수액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하나도 안 들려서 멍 하니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왜 필요하지? 아, 정말 필요한 건 다섯 명 정도인데 어중이떠중이 다 몰려와서 그런 거다 이런 게 보이더라. 갑자기 수술 보러 오라고 하면 밤에 택시 타고 가고 전남대나 부산에도 비행기 몇 번씩 타면서 다녔다. 취재비 엄청 쓰고 다녔지. (웃음)

원래 지적 호기심이 강한 편인가. 메디컬 드라마를 단순히 장르적 도구가 아닌 지적인 직업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최희라: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걸 보면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남녀일 경우 그 직업에서 나올만한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굉장히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래서 이야기가 훨씬 풍성해지는 거다. 이런 직업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만났어, 얘네들이 이런 입장 차이가 있고 이런 갈등을 해, 라고 할 때 그 사이의 것들을 다 채워주길 기대하며 극장에 가지 않나. 그걸 못 채우는 작품을 보면 실망하게 되는 거다. 스스로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치가 있고 그 정도가 안 되는 건 잘 안 본다. 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르를 불문하고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는 세계가 있어야 한다. 메디컬 뿐 아니라 가족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세계를 만들려다 보니 취재를 빡세게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최희라: 뭐랄까, 가장의 기분을 느꼈다. (웃음) 가장들이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걸 참으면서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구나 하는 마음을 많이 배웠다. 헬기 장면 찍을 때는 관련 기관이랑 얽혀서 그거 해결하느라 고생했다. 구성을 써서 넘겼는데 신원 확인이랑 공문 보내는 내용을 두고 소방 측에서 못 찍게 말리러 오고 있다는 거다. 이걸 현장에서 못 막으면 또 대본을 다시 써야 하는 거니까 담당 조연출한테 전화해서 소방 쪽 번호를 알아냈다.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냐”고 계속 말을 하니 “그런 일이 없다”고 그러시더라. 그래서 “신문에서 봤다. 지금 기사를 검색을 할 건데, 나오면 쓸 거다”라고 했더니, “아, 쓰세요. 나오면!” 이라고 하더라. 바로 기사 찾아서 “중앙일보네요” 라고 했더니 다시 “사실은 뭐 그게 아니었고…” 라면서 말을 바꾸시더라. 결국 헬기 요청서 공문으로 보내는 거 빼고 지역 바꾸고 신분증 보내는 것정도로 내용을 수정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작가의 취재와 집필의 영역 이상으로 되게 엄청난 감정노동과 정신노동을 한 거네.
최희라: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이 드라마는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했다. 원래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인간이었는데 방송국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작품을 만드는데 싶으니까 하게 되더라. 게다가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지 않나. 물론 내가 쪽 대본을 줘서 그들을 힘들게 한 부분도 있겠지만, 드라마가 개떡 같아서 이걸 왜 찍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찍는 건 얼마나 힘들겠나.

에서도 그랬지만 환자가 죽었다는 표현을 ‘놓치다’, ‘잃다’ 라고 얘기하거나 민우가 환자 침대에 누워보는 장면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가 다르게 보여졌다. 의식적으로 구성한 것인가.
최희라: 실제 의사들이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익스파이어’ 라고 했던 것 같다. 도 도 별로 구성을 안 하고 썼다. 특별히 이걸 이렇게 가야지 하고 계산하기보다 대충 큰 사건이 이렇게 간다는 정하고 맥이 잡히면 그냥 쓱쓱 쓴다. 이를테면 민우가 환자를 볼 때는 하나하나 다 계산하고 뜯어 봐야 하지만 인혁 쯤 되면 딱 봐서 알게 되는 지점이 있지 않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인혁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중간쯤이지 않나 싶다. 이미 학습되고 쌓여서 바쁠 때는 그냥 내공처럼 나오는 것.

“중증외상은 국가가 외면한 문제”
<골든타임> 최희라 작가 “최인혁처럼 돌직구를 던지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좋다”
최희라 작가 “최인혁처럼 돌직구를 던지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좋다”" /> 인턴부터 이사장까지 병원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의 캐릭터가 있고 많든 적든 모두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시스템과 조직에 대한 문제 제기가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최희라: 누구 한 사람이라도 단순히 거울처럼 반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 시스템이나 조직에 관해서는 예전엔 그냥 상식의 수준에서 약간 더 나아간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냥 당연히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접할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특히 중증외상의 경우 시스템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이건 의사가 싫어서 안 살리는 게 아니다. 과장들이 싫어서나 병원이 의지가 없어서 안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외면한 문제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는데, 결국 은 두려움과 책임 사이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최희라: 근원적인 두려움이라는 건 의사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학생으로서, 엄마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문제다. 그럴 때는 좀 더 가치 있는 걸로 두려움을 대체해야 한다. 인혁이 그냥 두고 봐서 환자가 죽는 것 보다는 다른 거라도 해보는 쪽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작가한테 두려움은 작품이 실패할까, 내 글이 재미없을까, 시청자들이 싫어하거나 아무도 이해 못 하면 어쩌지? 이런 문제겠지. 그렇지만 해야 하지 않나. 나 역시 첫 작품을 할 때는 좀 더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고 은 역경을 인정하고 좀 밀고 나간 것 같다. 재인이 할머니가 한 얘기처럼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에는 크든 작든 어떤 순간순간 마다 그런 때가 있고 닥치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려움을 느낄 때 주위 사람들의 평가나 조언에 기대는 편인가, 스스로 납득해야 하는 편인가.
최희라: 납득해야 한다. 그냥 외부에 의해 흔들리진 않는다. 그렇다고 남의 말 듣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3회에 방선우(송유하)가 환자로 들어오지 않았나. 감독님은 그 회에 넣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조금 빠른 것 같았다. 재인이한테도 의료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주고 난 뒤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에피소드를 쓰다보니까 그 회 대본이 한 3주 걸렸다. 재인이 캐릭터는 좀 더 정교하게 좀 더 만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최희라: 좀 더 스토커 기질이 있는 아이이길 바랐다. 100퍼센트 건강한 정신 상태는 아닌. 사실 처음 연애할 때 다들 쿨하고 사리판단이 잘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이 남자에게 올인 하는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다 속고 끌려 다니는 부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재인이도 조금 더 한심한 면이 있고 그만큼 성장의 지점들을 더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주위에서 말이 많았을 텐데 끝내 러브라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최희라: 은아의 경우 일을 선택할까 인생을 택할까 하는 고민이지 그게 무슨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만약 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면 약혼자와 인혁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 은아도 아니고 그 감정을 갖고 그 자리에 간다면 인혁이 아니다. 물론 멜로가 너무 없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갑돌이, 갑순이의 사랑 이야기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드라마를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정말 딱 그 수준에서 멈추는 이야기가 된다.

인혁과 비슷한 종류의 사람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생기는 갈등을 감수하면서 나아가는.
최희라: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돌직구를 던지면서 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대가만 치르면 다 할 수 있는데 왜 대가를 안 치르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한다. 솔직한 사람들, 자기한테 당당한 사람들이 좋은데, 자기한테 당당하려면 남한테 들이대는 잣대만큼 자기한테도 들이대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서다.

글, 인터뷰. 김희주 기자 fifteen@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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