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덴 쉬 파운드 미>│화병 직전의 여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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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에이프릴(헬렌 헌트)에게 남편(매튜 브로데릭)은 이별을 통보하고 길러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에이프릴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말을 뱉기가 무섭게 나타난 생모(베트 미들러)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신이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입양 보낸 딸에 관한 고백을 즉흥적으로 할 정도로 대책 없는 여자는 생부가 스티브 맥퀸이며, 가족의 반대 때문에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호소하지만 어쩐지 모두 거짓말 같다. 여기에 겨우 시작한 프랭크(콜린 퍼스)와의 연애도 서걱거린다. 에이프릴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을 둘이나 둔 학부형인데다 아직도 전 부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소심한 영국 남자는 쉽지 않기 마련. ‘세상 일에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지만 세상은 자꾸만 나를 흔들고, 늘어난 것은 나이와 주름뿐이라고 느껴지는 중년의 위기 한 가운데, 화병 나기 일보 직전의 에이프릴이 서 있다.
영화 <덴 쉬 파운드 미>│화병 직전의 여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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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감독 데뷔작으로 합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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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여물기도 전에 찾아오는 나쁜 소식처럼 엉뚱한 타이밍은 인생의 불청객이다. 새로 만난 남자와 잘 되어갈 때 걸려오는 전 남편의 전화나 그렇게 원하던 아이의 심장소리를 확인하려는 찰나, 알게 되는 아이의 부재는 환희를 단번에 절망으로 바꿔놓는다. 그러나 삶이 지탱되는 것은 비극의 연속 사이에 장난스럽게 끼어든 희극 덕분이라고 믿는 영화는 입 안에 쓴 맛이 고이는 순간에도 유머를 잊지 않는다. 이혼을 원하는 남편의 고백에 멋쩍게 식어버리는 뜨거운 밤을 위한 깜짝쇼, 감격 대신 허풍과 비난이 넘쳐흐르는 모녀상봉은 눈물에 웃음을 슬쩍 흘려 넣었다. 영화는 삶이 만들어내는 비극과 희극의 교차로에서 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무릎을 꺾어놓는 대신 웃게 만들고, 그 웃음이 인생의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공모자의 것이라고 증언한다. 그리고 공모자를 넘어 에이프릴의 지지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순간 또한 만들어낸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모성 신화에 기대지 않고, 남녀의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감독은 뛰어난 배우이기도 한 헬렌 헌트다. 마침내 비극의 그늘을 걷어 내고 마는 에이프릴을 보면, 그녀가 꾸려온 세월은 그녀에게 눈가의 주름만 준 것이 아니라 삶의 응달에서 한 줌 햇빛을 길어 올리는 혜안 또한 선사한 모양이다. 배우의 감독 데뷔작답게 연기 고수들이 적역인 캐릭터를 만나 활약한다. 자유를 찾아 떠나겠노라 선언하고도 어머니 집에 얹혀살 만큼 철없고, 덜 자란 남편에게 아직도 아이 같은 매튜 브로데릭의 얼굴보다 더 안성맞춤인 설정이 있었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베트 미들러 또한 수다스럽고 요란하며 거짓말을 숨 쉬듯 하지만 결국 어머니일 수밖에 없는 버니스를 사랑스럽게 육화한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친 애 딸린 홀아비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이미 보여주었던 콜린 퍼스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1월 5일 개봉.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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