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기고 섹시한 남자 찾으면 됩니다.” 자신의 인상착의를 묻는 말에 KBS <오작교 형제들>의 김제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잘생기고 섹시한 남자가 말해도 재수 없을 것 같은 말을 유능하고 유머까지 갖춘 영화제작자라는 ‘엄친아’ 캐릭터가 천연덕스럽게 하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김제하가 미워 보이지도, 극 중 적은 분량에 비해 깊은 인상을 남기기까지 하는 건 차가운 도시 남자보다는 땀내 나는 열혈 청년에 가까운 배우 정석원 때문이다.

MBC <네 멋대로 해라>의 정두홍 무술감독이 멋져 보여 액션 스쿨에 들어간 이 가슴 뜨거운 남자는 해병대 특수수색대 입대 또한 정두홍 감독의 조언으로 결정했다. 군대에서 훈련을 하면서도 “남들 어머니, 여자친구 이름 부를 때 ‘세계 최고의 무술 감독이 되겠습니다’라고 외칠”만큼 무술감독에 대한 꿈이 확고했던 정석원은 스턴트맨 시절 뚜렷한 이목구비로 주목받아 뜻하지 않게 연기를 경험하고 흥미를 느껴 배우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운동처럼 무조건 하면 늘겠지” 생각했던 연기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힘을 빼고 편하게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했더니 제 말이 들리지가 않는 거예요. (웃음) 발성 자체가 안 된 건데 연기에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걸 최근에서야 배웠어요.” 특히 SBS <닥터 챔프>의 유도 선수 유상봉과 <마이더스>의 경호 비서 재범 역처럼, 주로 남자다운 역할을 맡았던 그는 <오작교 형제들>의 김제하를 연기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 중이다. “귀여우면서도 따뜻한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어색했고 카메라가 움직일 때 시선 처리를 하는 것도 아직 자연스럽지 않아요.”

하지만 그에게 이런 시행착오는 “힘들지만, 꼭 필요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들이다. “540도 발차기처럼 어려운 기술을 익힐 때는 기본 동작을 계속 반복해야 하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되지 않아요. 연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기술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연기하며 부딪치는 벽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정면 돌파하며 이겨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스스로도 노력파라 자부하는 정석원이 힘들 때마다 자신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됐던 음악들이다.




1. 김동률의 < Shadow Of Forgetfulness >
정석원이 첫 번째로 떠올린 곡은 김동률의 ‘고독한 항해’다. “혼자 운동하고 인천 집에서 파주 액션스쿨까지 다닐 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시류에 편승하기보다 자신만의 감성을 세심하게 다듬어 음악을 완성하는 김동률의 목소리와 ‘불타는 태양과 거센 바람이 무거워도 그저 묵묵히 나의 길을 그 언젠가는 닿을 수 있단 믿음으로’ 등의 가사는 홀로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위로가 된다. 최근 1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김동률은 여전히 따뜻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쉽게 닿을 수 없는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이 필요할 때 제격인 음악이다.



2. Michael Jackson의 < Invincible >
우울할 때 슬픈 발라드를 들으면 오히려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정석원이 두 번째로 고른 故 마이클 잭슨의 ‘butterflies’가 바로 그런 곡이다. ‘All I gotta say is that I must be dreaming, can`t be real. You`re not here with me, still I can feel you near me’ 같은 가사처럼 이 곡에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며 혼자 읊조리는 듯한 쓸쓸함이 담겨 있다. 도입부부터 청량하게 깔리는 그루브가 특징인 이 곡은 마이클 잭슨이 5년 만에 내놓은 정규 앨범 타이틀 < Invincible >, 즉 ‘천하무적’이란 뜻처럼 그의 미성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마이클 잭슨은 누구나 좋아하잖아요. 이 곡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특히 외롭고 혼자 있을 때 자주 듣게 되더라고요”라는 정석원의 말처럼 쓸쓸함 그 자체가 매력인 곡이다.



3. Stevie Wonder의 < A Time To Love >
“스티비 원더 특유의 음색이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이 곡도 들으면 외로움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힘들었던 시절 정석원에게 힘을 줬던 또 하나의 곡은 스티비 원더의 ‘Moon Blue’다. 블루스가 가득한 배경에 묵직한 목소리만이 더해진 이 곡은 밤을 그린 풍경화를 닮았다. 그래서 자유롭게 선율 위를 넘나드는 스티비 원더의 음색은 ‘Moon blue, memories bind like chains. When will you come again I wait in darkness just for your bright to beam’ 등 시적인 가사와 만나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Moon Blue’ 가사가 반복되며 고독한 정서가 강조된 분위기는 스티비 원더 특유의 목소리만큼 명품이다.



4. 리쌍의 < HEXAGONAL >
“힙합곡도 즐겨 들어요.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 노래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정석원이 네 번째로 고른 음악은 리쌍의 ‘To LeeSSang’이다. 리쌍은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가사가 오히려 희망이 되는 음악을 만든다. ‘기억해라 주머니에 먼지밖에 없던 시절을. 기적을 꿈꾸며 지저분한 방 안에 갇혀 밤새 가사를 쓰며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했던 너의 그때 그 시절을’의 ‘너’가 음악을 듣는 내가 되는 순간, 이 노래는 나의 다짐이 되기도 한다. “리쌍 노래는 가사가 공감이 잘 돼서 모든 곡이 좋아요. 예전에 나도 어렵고 힘들 때 무작정 나만 믿고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라요”라는 정석원 또한 그 매력에 빠진 듯 보였다.



5. 백지영의 <천일의 약속 OST Part 1>
마지막 곡은 백지영의 ‘여기가 아파’.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SBS <천일의 약속>에 쓰이며 비극적인 정서를 한 층 더 끌어올리고 있는 곡. SBS <시크릿 가든> ‘그남자’, KBS <공주의 남자> ‘오늘도 사랑해’에서 돋보인 절절한 백지영의 목소리는 드라마 속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드라마도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래서 더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정석원은 해맑게 웃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그에게 특별할 이 곡은 백지영이 드라마 OST에 강한 이유를 보여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정석원은 누구보다 기본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배우다. 장서희와 함께한 영화 <사물의 비밀>을 준비하며 이영미 감독과 이우상 캐릭터의 머리 스타일, 피부 톤, 걸음걸이, 좋아하는 음식까지 디테일하게 분석한 과정은 미칠 뻔 했지만, 연기에 있어 디테일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다. “당시 <닥터 챔프>와 동시에 촬영하고 있었는데 이우상 캐릭터를 세밀하게 만든 만큼 두 캐릭터를 쉽게 소화할 수 있었어요”라며 웃는 정석원은 이런 과정을 거쳐 조금 더 성장한 듯 보였다. 그래서 힘들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연기를 배워가는 요즘이 정석원에게 ‘수영하기 전 몸풀기’처럼 꼭 필요한 순간이다. “준비가 안 됐는데 나를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면 저도, 시청자분들에게도 좋지 않을 거예요. 연기에 필요한 테크닉을 좀 더 익혀서 제 색깔을 확실히 보여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정석원의 다음이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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