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찰나의 누적이다. 그리고 가장 빛나는 찰나는 기록되어 역사의 아레나에 남는다. 그 때문이다. 오는 29일 새벽(한국 시간)에 열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대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의 2010-2011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봐야 하는 이유는. 박지성의 선발 출장을 바라고 응원하며 볼 수도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팀의 자국 리그 자존심을 건 대결로서도 흥미진진하다. 경기를 보는 대신 잠을 택한다고 해서 당신의 인생에 오점이 남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전설이 된 어제가 될, 오늘의 참관자가 되고 싶다면 졸음을 참고 보길 바란다. 어디가 우승하든, 당신은 메시가 참전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지켜본 역사의 증인으로 남을 테니.

오로지 필드 위의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플레이어
메시│21세기의 행복, 리오넬 메시
메시│21세기의 행복, 리오넬 메시
메시가 결승전에서 골을 넣고, 못 넣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느 순간 이 시대, 정확히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축구의 아이콘이 되었다.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이 통합된 FIFA 발롱도르의 첫 수상자가 메시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전문기자들의 분석을 통해 상을 수여하는 발롱도르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인터밀란의 스네이더였다. 하지만 유명 감독 및 선수들이 활약상과 인지도를 고려해 뽑는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 메시는 압도적 득표를 받으며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었다. 메시의 상징성은 가장 ‘유명한’ 축구 스타였던 베컴이 가졌던 상징성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가 인기뿐 아니라 실력에 있어서도 최전성기였던 시절에도 동시대 최고의 선수로 꼽혔던 건 지단과 피구, 혹은 호나우두였다. 하지만 메시는 해외 리그는커녕 국내 리그에도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동시대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가장 유명한 동시에 최고의 선수로 인식되어 있다. 호날두가 연예인과의 염문설 같은 필드 바깥의 이야기로 자주 기사화되는 것까지 떠올린다면 온전히 필드 위의 모습으로만 대중적 스타가 된 메시의 존재감은 더욱 특별하다.

다시 말하지만 메시는 탁월한 선수다. 발에 공이 붙은 듯한 드리블은 상대 수비수를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고, 어떤 위치에서든 어느 발로든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메시의 인기를 설명하는데는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그를 소비하고 찬양하는 동시대의 방식이 중요하다. 단언컨대, 바르샤 경기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 하이라이트 영상을 볼 수 있고, 케이블 혹은 위성 채널을 통해 프리메라리가 혹은 챔피언스리그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면 메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다. 1994년 월드컵에서의 이탈리아를 준결승에 올린 득점 능력이 아니었다면, 프랑스의 1998년 월드컵이나 2000년 유로 우승이 아니었다면, 원조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지오와 중원의 사령관 지단은 지구촌 스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뀐 미디어 환경에서 유럽 축구는 동시대적인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되었다. 이런 환경은 전설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든다. 오렌지 3총사가 있던 시절의 AC 밀란이 아는 사람끼리 구전되어온 기억 속 최고의 팀으로서 이제야 역사에 또렷이 기록됐다면, 이제 2007-2008 시즌의 맨유나 2010-2011 시즌의 바르샤는 그 발자취가 그대로 역사가 된다.

이것은 동시대 축구팬들에게 일종의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우리는 패스 마스터 샤비와 리버풀의 캡틴 제라드를 가지고 있고, 누가 동시대 최고의 미드필더인지 토론할 수 있지만, 토털풋볼의 창시자 요한 크루이프의 위대함에 대한 사가(史家)들의 찬양에는 동의하거나 침묵해야 할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리즈 시절’이란 말에 담긴 함의를 보라. 앨런 스미스의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을 직접 보고 즐겼다는 건 분명 축복이지만, 그것이 박지성과 함께 맨유 축구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을 깔볼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축구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시대, 챔피언스리그가 포털의 주요 메뉴로 따로 링크된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역사는 묘한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보아라, 그의 플레이를
메시│21세기의 행복, 리오넬 메시
메시│21세기의 행복, 리오넬 메시
그래서 시대는 이 시대만의 영웅을 원한다. 과거의 전설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지금 우리가 새로운 전설을 경험하고 있다는 벅참을 선사할 존재를.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이 시대는 메시를 가지게 됐다. 앞서 빛나는 찰나는 역사의 아레나에 남는다고 했지만, 최근 5시즌 동안의 메시는 찰나가 아닌 꾸준함 속에서 계속 빛나고 있다. 2007년 헤타페 전에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친 드리블이 자주 나올 수는 없겠지만 그에 준하는 환상적 돌파를 그는 매 시즌, 매 경기마다 보여주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축구에 있어 메시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심지어 그 퍼포먼스는 팀 승리와 우승을 결정짓는 순도 높은 골로 이어진다. 네덜란드의 전설적 골잡이 반 바스텐은 “9개의 환상적인 골과 10개의 평범한 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10개의 골”이라고 했지만 메시는 11개의 환상적인 골을 넣는 선수다.

언론 플레이나 스타성과는 거리가 먼, 성실함과 겸손함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를 시대의 스타로 만들었다. 라이벌 호날두와 메시를 나누는 가장 큰 격차는 이 지점이다. 메시에겐 호날두에겐 없는 어떤 믿음직함이 있다. 세계 모든 축구 클럽이 그를 탐내는 상황에서 “나는 바르샤와 가슴으로 계약했다”며 흔들리지 않는 충성도를 보이고, 호나우지뉴나 아드리아누처럼 인기와 술에 취해 스스로 망가지지도 않는, 오직 필드 위에서만 빛나는 이 축구선수에게 오직 이 시대에만 가능한 전설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선수는 스타가 되고, 스타는 현상이 되고, 현상은 역사가 된다. 그러니, 직접 보아라. 먼 미래,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할 기억 하나쯤은 만들고 싶다면.

사진제공. 메시 공식사이트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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