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2010년 KBS 연예대상도 그의 몫이 아니었다. KBS ‘달인’ 코너만으로 3년 동안 대상 후보에 올랐던 김병만은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상을 수상하며 다른 방송 2사 사장들에게 코미디에 대한 투자를 부탁하는 그의 존재감은 이미 상의 크기나 이름으로 평가할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하나의 프로그램도 아닌, 하나의 코너만으로 3년 동안 대상 후보에 오른 전무후무한 성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코미디의 상징적 존재인 안에서도 최장수 코너를 유지하는 김병만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다.

사실 굵직한 코너들 사이에 브릿지로 만들어진 짤막한 콩트가 부침 심한 코미디계에서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을 것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기꾼이 달인인 척 하다가 오히려 골탕을 먹는다는 콘셉트는 매번 재밌었고, 매운 맛의 달인으로서 고추와 고추냉이를 잔뜩 먹었던 순간은 경악스러웠지만 그런 충격의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달인’을 통해 안에서 가장 ‘핫한’ 개그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상한 합성 사진을 가져다 놓고 달인인 척 흰소리를 해대던 그는 이제 평행봉 위에서, 혹은 사다리 위에서 인간 한계를 넘은 듯한 곡예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매주. 요컨대, 현재 김병만은 진짜 달인이다.

달인은 천재와 다르다. 탁월한 신체 능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달인의 경지를 연 건 결국 그의 노력과 근성이다. 공중파 개그맨 공채 시험에 수도 없이 떨어지며 7전 8기를 이루고, 과거 ‘무림남녀’부터 ‘달인’, KBS 에 이르기까지 몸을 아끼지 않는 과격한 슬랩스틱을 시도했던 그의 과거사는 달인 김병만이라는 캐릭터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다음은 키는 작지만 거인의 존재감을 가지게 된 이 남자가 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이다. 역시, 대부분 사나이의 정서가 느껴지는 곡들이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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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얀의 < Virgin >
“애창곡 중 하나예요.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는 곡이죠”라며 김병만이 꼽은 첫 번째 곡은 얀의 ‘자서전’이다.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사는 거니까’ 라는 가사에 하고 싶은 모든 말이 응축되어 있는 이 곡은 과거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나 김기하의 ‘나만의 방식’ 같은 노래처럼 자유에 대한 남자들의 로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유독 남자 팬이 많은 가수로 꼽히기도 한다. ‘자서전’의 뮤직비디오를 봐도 그 특유의 정서를 잘 알 수 있는데 영화 의 영상을 편집해 만든 뮤직비디오는 마치 원래부터 OST로 준비한 것처럼 영화와 곡의 느낌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자서전’은 의 OST가 아니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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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상민의
김병만은 유독 박상민의 노래들에 대해 “영혼을 울리는 곡”이라는 표현과 함께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중 그가 가장 첫 손가락으로 꼽은 박상민의 곡은 역시 ‘하나의 사랑’이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불러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던 곡으로 박상민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멀어져간 사람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기 시작한 박상민 식 록발라드는 이 곡에서 하나의 일관된 정서와 색깔을 완성한다. 말하자면 그의 곡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이별을 아쉬워하되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는 성숙한 남자의 정서가 담긴 곡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노래의 맛을 살리려면 어렵지만 음역대 자체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도 많은 남자들이 이 곡을 사랑하는 이유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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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상민의
김병만은 추천 곡 다섯 개를 모두 박상민의 곡으로 채우고 싶어 할 정도로 강한 애정을 보였다. 평소에 노래를 즐겨 듣지는 않아도 몇몇 곡에 대한 애착을 느낀다는 그가 박상민의 곡을 유독 좋아하고 노래방에서도 즐겨 부르는 것이 꼭 “상민이 형이랑 친해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하나의 사랑’과 함께 추천한 이 곡 ‘울지마요’를 보면 박상민의 곡만큼이나 일관된 김병만의 정서적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울지마요’ 역시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사랑한단 말 안 할게요’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순정은 투박하되 마음을 울리는 지점이 있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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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문근의
김병만과 조문근의 ‘너라는 걸’의 인연은 각별한 편이다. 그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호텔 직원 역할로 등장하는데 그 수줍지만 순수한 모습은 앞서 추천한 박상민의 곡이나 ‘너라는 걸’의 가사와 분위기 모두를 관통하는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Mnet 에서 증명한 것처럼 조문근의 보컬은 흥에 겨워 리듬을 자유롭게 넘나들 때 가장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너라는 걸’은 젬베 없이 조금은 절제된 분위기 안에서도 조문근이 얼마든지 자신만의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의 목소리는 박상민의 그것처럼 애절하진 않지만 ‘지금 다시 이 길을 지날 때’ 같은 부분에서 보여주는 가성은 감미로운 동시에 절실하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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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캔의
우리나라 남자치고 친구들과 듀엣으로 캔의 ‘내 생에 봄날은’ 한 번 안 불러본 사람이 있을까. 꼭 SBS 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내 세상처럼 누벼가며 두 주먹으로 또 하루를 겁 없이 살아간다’라는 가사에서 거친 삶을 몸으로 부딪치는 청춘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듣거나 부를 때 왠지 남자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건 그 안에 담긴 수컷의 로망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김병만의 추천곡 중 박상민과 조문근의 곡이 사나이의 투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얀의 노래가 사나이의 거침없는 태도를 대변한다면 ‘비겁하다 욕하지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내 상처를 끌어안은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고 외치는 ‘내 생에 봄날은’은 그 모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김병만│평소 즐겨 부르는 노래들
“앞만 보고 갈 때는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 이렇게나 멀리 왔네’ 이런 느낌이에요. 미리 계산하고 이건 오래도록 하자, 이랬으면 못했겠죠. 가령 앞으로 너 3년만 더할래? 이러면 못하죠. 그냥 하는데 까지는 해보겠습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러니 그 끝이 다다음주가 될지 내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죠.” 앞서 말한 것처럼 김병만의 현재 모습에는 과거에 쌓아온 수많은 순간들이 겹쳐져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건, 어떤 장기적 플랜을 세우기보다는 매순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인으로서의 그에게 열광하고 감정이입하는 건, 이 평범한 남자가 오직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만으로 이뤄낸 현재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최근 트위터에 올린 자기소개로 대신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열심히 해서 잘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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