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좋은 날’은 ‘유행 종결자’였다. 2010년 가요계의 어떤 경향들이 ‘좋은 날’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걸그룹은 아니지만 예쁜 소녀가 노래를 불렀고, 소녀의 ‘3단 고음’은 Mnet <슈퍼스타 K 2>로 촉발된 ‘열창’에 대한 관심을 퍼포먼스화 시켰다. ‘좋은 날’ 이후 ‘그 남자’,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 다시 아이유의 ‘Someday’ 등 TV 프로그램 삽입곡이 번갈아 음원차트 1위를 했다. 한 시기의 유행이 끝나가며 더 인지도 높고, 팬층이 확실한 곡들이 발표와 함께 1위를 한다. 시크릿의 ‘샤이보이’처럼 가요계에서 흔치 않게 스윙리듬을 가미, 유행과 살짝 다른 곡으로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2010년의 트렌드는 떠났지만, 2011년의 트렌드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유가 승리의 첫 솔로 앨범 < VVIP >의 ‘I know’를 부른 건 재밌는 우연이다. ‘좋은 날’은 심플한 사운드로 곡에 여백을 두고, 그 공간을 아이유의 목소리가 채웠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상황에서 아이유가 트리플 악셀을 하듯 ‘3단 고음’으로 환호를 받는다. 반면 ‘I know’에서 ‘너는 나에게 물 같은 존재’를 부르는 아이유의 보컬은 물결처럼 곡 전체에 퍼진다. 승리의 목소리도 울림을 가진 채 퍼져 나간다. 둘의 목소리는 강하게 부각되는 대신 악기 중 하나처럼 다른 사운드에 묻어 들어간다. 목소리는 부드럽게 퍼지고, 어쿠스틱 기타가 찰랑거린다. ‘I know’는 특정한 멜로디나 보컬의 음색 대신 곡의 분위기로 승부한다. ‘I know’는 ‘좋은 날’의 반대편에 있다. 그리고 < VVIP >도 2010년까지 이어진 어떤 경향들의 반대편에 있다.

< VVIP >,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트렌드



승리의 ‘V.V.I.P’나 ‘어쩌라고’는 트렌드를 반영하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 VVIP >는 트렌드를 반영하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V.V.I.P’에서 힘찬 리듬과 함께 ‘내게로 와’의 ‘와’를 길게 늘이는 부분은 니요(Ne-yo)같은 뮤지션의 곡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곡 제목을 반복하는 ‘어쩌라고’의 후렴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V.V.I.P`에서 승리의 목소리는 밀도를 높이며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는 대신 울림을 가진 채 넓게 흩어진다. ’어쩌라고‘도 후렴구 멜로디가 반복될수록 승리의 보컬 대신 나른한 신디사이저 연주가 점점 커진다. 리듬은 힘차고, 춤을 출 수도 있다. 하지만 곡은 오히려 차분하게 느껴질 만큼 여유가 있다. 2NE1의 ’Go away‘의 멜로디를 일부 차용한 ’White love‘는 ’Go away‘처럼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한다. 하지만 ’Go away‘는 일렉트릭 기타가 곡 전체를 다이내믹하게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 반면 ’White love‘에서는 기타가 뒤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Go away‘가 멜로디의 강렬함을 강조했다면, ’White love‘는 조금씩 차오르는 어떤 분위기를 만든다.

‘창문을 열어’는 앨범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곡의 후렴구는 읊조리듯 부르는 ‘창문을 열어 니 맘을 열어 / 내게와 들어와’가 전부다. 어찌 보면 맥 빠질 정도로 힘없는 멜로디다. 하지만 멜로디에 나른한 건반과 작게 연주되는 기타가 곁들여진다. 지드래곤의 랩은 마치 꿈에서 속삭이듯 나직하게 울린다. 인상적인 멜로디나 사운드를 고르라면 어렵다. 하지만 그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질감은 명확하다. 사람의 숨소리나 발음이 주는 뉘앙스, 쭉 음을 늘이는 브라스가 만들어내는 나른하고 여유로운 느낌.

트렌드를 제시하는 자가 승리하리라



태양, GD&TOP의 곡들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것으로 승패가 갈릴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가요계는 최대한 빠르고 강하게 듣는 사람에게 임팩트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소몰이’는 더 굵고 더 진한 보컬로 어떻게든 사람이 노래를 듣게 만드는 창법이었고, 이른바 ‘후크송’으로 불리는 곡들은 짧고 단순한 후렴구를 곡 시작부터 반복했다. 일렉트로니카를 도입한 곡들은 대부분 강한 전자음과 리듬으로 시작부터 사람들을 제압했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부터 2AM의 ‘전활 받지 않는 너에게’까지 이어지는 프로듀서 방시혁의 곡들은 아예 곡 도입부에 다른 소리를 최대한 비우고 밀도 높은 보컬의 힘으로 승부했다. 멜로디에서 사운드로, 다시 보컬로. 대중음악계는 몇 년 간 마치 총을 쏘듯 강력한 한 방으로 대중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 끝에 ‘좋은 날’이 있었다. 반면 < VVIP >의 수록곡 중 ‘magic’은 아예 ‘오 오 오 오’하는 흥얼거림으로 후렴구를 채웠다. 욕조에서 노래를 기분 좋게 흥얼거릴 때의 기분, 어쿠스틱 기타를 튕길 때 가질 수 있는 어떤 느낌. 노래의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 멜로디나 보컬이 아니라 소리의 질감이나 곡의 분위기가 ‘후크’다.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곡의 느낌을 맛보기 위해 다시 듣는다. 트렌드의 끝물에서, < VVIP >는 임팩트를 없애는 것으로 임팩트를 만드는 방식을 제시한다.

승리만이 이런 선택을 한 건 아니다. GD&TOP은 ‘뻑이 가요’로 멜로디보다 사운드의 질감과 ‘빙글빙글’ 같은 발음의 뉘앙스가 먼저 다가오는 노래를 선보였다. 태양의 ‘I need a girl’ 은 R&B 스타일 안에서 강한 멜로디보다는 섬세한 보컬 디렉팅과 차분하게 감정을 차오르게 하는 분위기가 돋보였다. 태양, GD&TOP, 승리의 곡들은 대중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꿀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는 거대한 팬덤을 만들면 성공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범대중적인 히트곡을 만들면 성공한다.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는 트렌드를 제시할 때 성공한다. 휘성, 거미, 세븐, 빅마마가 동시에 나왔을 때, 빅뱅이 ‘거짓말’을 불렀을 때, 2NE1이 데뷔했을 때 모두 그랬다. 지금 빅뱅의 멤버들은 서로 비슷한 느낌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제시한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다 대중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기존 곡을 답습하다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완성된 트렌드에 의지해 곡을 만들면 웬만큼의 성적을 기대할 수 있던 ‘좋은 날’은 가고 있다. 이제 승자는 자신의 취향을 트렌드로 제시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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