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황해>,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는 그의 전작 의 다음 이야기처럼 보인다. 두 작품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과 구남의 차이가 그렇다. 의 연쇄 살인범 지영민은 ‘망원동 892-1’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신체적 문제로 섹스가 불가능했다. 반면 의 구남은 ‘강남구 논현동 99-1 김승현’을 찾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지만 면가(김윤석)의 배신으로 죽을 처지가 된다. 또한 그는 몸은 멀쩡해도 역시 섹스를 할 수 없다. 돈 벌려고 한국으로 떠난 그의 아내가 행방불명이 됐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성매매가 가능하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살해를 당해도 시체조차 찾기 어렵다. 살해범은 드넓은 망원동의 ‘892-1’번지로 숨을 수 있다. 이런 세상이 돈과 성욕을 위해 아무나 죽이는 사이코패스를 탄생시켰고, 조선족 여성들은 돈을 따라 사이코패스가 기다리는 세상으로 온다. 에서 생겨난 사회의 ‘개병’이 에서 중국까지 퍼지고, 아내를 찾아 ‘강남구 논현동’에 온 ‘개병’의 피해자는 모두를 죽게 만든다. 그 ‘개병’은 성욕으로 가득찬 남자들의 세상에서 생겨났다. 김승현(곽병규)의 살인을 청부한 김태원(조성하)같은 부자들은 분당에 집을 마련하고 불륜을 저지른다. 구남의 아내를 아는 수산시장 사장(염동헌)은 중국에 남편이 있는 조선족 여자와 동거한다. 반면 구남은 자의든 타의든 결혼한 아내와의 섹스만 가능하다. 그리고 김태원과 김승현이 공동 투자한 사업은 하필 성매매업소다.

슈퍼 히어로로 귀결된 마초 판타지
[강명석의 100퍼센트] <황해>,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돈으로 섹스를 사고, 돈을 벌려고 섹스를 상품화 한다. 이 ‘개병’ 걸린 세상에서 구남이 김태원처럼 자기 번지를 가진 집에서 살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할 지 모른다. 나홍진 감독은 에서 도끼, 뼈, 스패너 등을 액션의 도구로 사용한다. 칼로 몇 번 찔러 봤자다. 머리가 으깨지다시피 할 때까지 도끼로 내려쳐야 한다. 자동차 추격전에서는 차와 차가 부딪치면서 차체가 으스러진다. 쾌감은 없다. 인간들의 악다구니만 남았다. 는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남자가 중국의 조선족 택시 운전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시대의 풍경화다. 그들의 삶을 관객들에게 가장 생생한 방법으로 보여주면서, 는 처럼 잔인한 리얼리티와 대중적인 쾌감 사이의 접점을 찾는다.

그러나 의 엄중호(김윤석)는 지영민의 추격자 이전에 아픈 여성(서영희)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남자였다. 엄중호가 관객의 지지를 받은 건 그가 정의의 사도여서가 아니라, 여자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엄중호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반면 는 어느 순간부터 서울의 풍경 속에 있던 구남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구남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는 마지막 순간에야 그가 여자의 아이를 지켜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제시한다. 엄중호가 포주를 관둘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구남의 복수에는 김승현을 잃고 우는 여자의 복수도 포함된다. 가 에 가까웠다면, 는 어느 순간 에 가까워진다. 주인공이 겪는 현실은 생생하지만, 주인공 자신은 히어로처럼 행동한다. 물론 와 는 다르다. 구남은 의 태식(원빈)처럼 더러운 세상에 강림한 것 같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온 몸을 찢기며 복수에 나설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마초 판타지에 기반을 둔 영웅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은 같다. 구남은 피를 흘리며 황해 한 가운데서 죽는다. 상처투성이 남자의 비장한 죽음.

, 관찰을 그치고 감정을 드러내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황해>,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뒷심이 모자란 까닭을 말한다" />
마초 판타지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다만, 는 구남의 생존기에서 복수극으로 변하며 영화의 동력을 잃는다. 구남은 영화 초반 ‘강남구 논현동 99-1’ 반대편 건물에서 문제의 건물을 바라본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남자는 그렇게라도 건물을 살펴야 했다. 영화 후반에도 구남은 김태원과 관련된 마사지 업소의 반대편 건물에서 상황을 살핀다. 그는 별다른 실수 없이 계획대로 행동한다.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사람을 죽여야 사는 남자의 절박함은 사라졌고,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긴장도 사라졌다. 영화 종반에 이어지는 반전과 구남의 아내에 대한 암시는 이야기의 동력이 사라진 작품이 어떻게든 영화를 끌고 가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구남이 면가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신에서 나홍진 감독은 트럭 뒤에서 보는 시점으로 마치 CCTV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영상을 편집해 넣는다. 영화 내에서 이런 질감의 컷으로 변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관객에게 영화의 추격전이 실제 사건 같은 몰입감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리얼리티는 사라지고, 리얼한 느낌 자체가 ‘스타일’로 남았다. 그 스타일을 바탕으로 는 어떻게든 구남에게 비장한, 또는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자의 모습을 만들어주려 애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남의 아내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또는 회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내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한국에 온 남자의 슬픈 이야기. 김승현의 아내는 구남을 바라보면서 뜻 모를 눈물을 흘린다. 그건 나홍진 감독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는 최대한 세상을 관찰하려 했다. 반면 는 어느 순간부터 관찰을 그치고 감독 스스로 구남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에는 리얼리티와 남성판타지, 남자들의 악다구니와 남성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함께 있다. 나홍진 감독은 거대한 황해 속에 그 모든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는 나홍진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세상의 관찰을 넘어 자신의 스타일과 세계관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일 것이다. 다만, 그의 힘이 에서 목적지까지 도달하기에 부족했을 뿐이다. 마치 황해의 어느 한 곳에 머무르게 된 구남처럼.

글. 강명석 two@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