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월드컵│소녀시대, 시크릿, 애프터스쿨, 이효리 전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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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Oh!]의 동명 타이틀곡 ‘Oh!’의 뮤직비디오부터 강하고 반항적인 소녀시대의 출연은 예고됐었다. 전혀 다른 콘셉트의 후속곡이지만 정작 2집에는 실리지 않은 섀도우 타이틀곡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됐고,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이후 제한적으로 ‘블랙소시’의 이미지들을 공개했다. 2집 컴백부터 ‘Oh!’와 ‘Run Devil Run’의 대립항으로 콘셉트 변화를 예고한 SM의 전략은 지금 소녀시대만이 할 수 있는 시도다. ‘Oh’는 ‘Gee’ 이후 소녀시대의 곡 중 가장 극단적으로 귀여움을 내세웠고, ‘Run devil run’은 가장 강한 느낌을 부여한다. 마치 자신의 구위에 엄청난 자신감을 가진 강속구 투수처럼, 소녀시대는 대중에게 더 설명할 것도 없을 만큼 분명한 콘셉트로 직구를 던졌다. 그건 걸그룹 중 인지도에서 최고라 해도 무방한 소녀시대가 모든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는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Run Devil Run’이 그렇게 ‘Oh!’에서부터 띄운 애드벌룬을 보며 기대한 딱 그만큼만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후크송’처럼 초반에 멜로디를 제시하지 않고 기승전결의 구성을 따르는 곡에서 ‘You better run run run run run’이나 ‘넌 재미없어 매너 없어 Run Devil Devil Run Run’ 같은 후렴구는 곡의 승부처다. 하지만 두 멜로디는 이른바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가 아니라 강하고 나쁜 여자 콘셉트에 따라 보컬의 강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곡이 요구하는 섹시함과 저음에 모두 접근한 멤버는 태연뿐이고, 무엇보다 소녀시대가 한 목소리로 내는 코러스는 곡의 강렬하고 섹시한 느낌을 소화하기엔 다소 가볍다. 제시카와 써니 외에는 귀엽고 깜찍한 느낌에서 벗어난 여성의 얼굴 표정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부차적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9명의 호흡이 딱딱 맞는 군무는 여전히 탁월하고, 트렌디한 사운드는 없지만 곡의 진행은 안정적이다. 덕분에 코러스 파트도 안무와 함께 들으면 훨씬 리듬감 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문제는 그녀들이 소녀시대라는 사실 그 자체일 수도 있다. 2009년 걸그룹 전쟁의 ‘본좌’가 된 그들에게 대중은 괜찮은 범작 대신 ‘Gee’처럼 시장을 이끌 신선한 무엇을 요구한다. ‘소원을 말해봐’부터 계속 그들의 신곡에 대한 콘셉트와 곡의 완성도에 관심이 쏠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Run Devil Run’은 딱, 괜찮은 범작이다.
가요월드컵│소녀시대, 시크릿, 애프터스쿨, 이효리 전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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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어머하고 놀랄 걸’이라는 가사는 예언이었다. 시크릿의 ‘매직’은 이들에게 큰 기대를 품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놀라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곡이다. 지난해 발표한 데뷔곡 ‘I Want You Back’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이들의 컴백 시기가 음악방송 결방시즌과 맞물렸음에도 불구하고 ‘매직’이 꾸준히 온라인 음악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음악의 힘이다. 후크송의 마법이 끝난 지점에서 ‘매직’은 ‘여성아이돌’답지 않은 선택으로 오히려 돋보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멤버 한선화가 KBS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결정은 의외이지만, 현명한 판단이다. 그룹의 이미지가 아직 정확히 만들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한선화의 캐릭터가 백치미로 굳어지고 있으니 유사 팬덤을 공략하는 것보다는 일반적인 리스너들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가는 보컬은 펑키한 그루브 안에서 쉽게 기억되는 후렴구로 이어진다. 월등하지는 않으나 유아적이지 않은 멤버들의 가창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 보컬 디렉팅은 노련하고, ‘매직’의 이완과 ‘어머’의 긴장을 놓치지 않은 안무 역시 나쁘지 않다. 트렌드 맞춤형 노래로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잘 들리는’ 노래로 승부하는 작법은 최근 고유의 파워로 선전하고 있는 신사동 호랭이의 솜씨다. 그가 작업한 포미닛의 ‘뮤직’이 강렬한 일렉트로니카로 멤버들의 실력을 입증하는 초석을 다졌듯, ‘매직’은 시크릿을 시시하지 않은 그룹으로 인식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다만 펑키하면서도 탄력적인 곡의 섹시함에 비해 스타일링과 무대구성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방송 결방이 반드시 손해는 아니라는 말이다.
가요월드컵│소녀시대, 시크릿, 애프터스쿨, 이효리 전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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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섹시함으로 데뷔한 애프터스쿨에게 ‘너 때문에’는 성숙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로 변신하는 터닝 포인트였다. 그래서 여성적인 매력과 파워풀한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마칭 드럼과 치어리딩은 더할 나위 없는 아이디어다. 멤버들의 절도 있는 동작과 절묘한 호흡이 돋보이는 ‘Let’s do it’은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무대를 준비해왔는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바로미터이며, 드럼 비트를 기반으로 교태 없이 컨트롤 된 보컬이 콘셉트를 강조하는 ‘뱅’은 애프터스쿨에게 기대할 수 있는 판타지의 정점이다. 특히 유이, 박가희 등 몇몇 멤버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시점에서 팀워크를 강조하는 구성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그룹 자체의 수명을 연장시킬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융합되는 과정이 반드시 긍정적인 시너지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멤버들의 우월한 신체만으로도 볼거리를 만들어 내는 모델 워킹과 박가희의 장점이 부각되는 치어리딩 안무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연결이 부족하며, 이러한 구성적인 오류는 관습적으로 삽입된 보컬 파트의 어색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건조하게 진행되는 비트와 달리 세련되지 못한 멜로디는 무대 없이는 이들의 매력을 발산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함정이 되었다. 음악방송 결방이라는 예상 밖의 방해물을 만난 것은 틀림없는 불운이지만, 음원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웠던 데뷔곡 ‘Ah’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콘셉트를 위해 다른 부분을 무리하게 짜 맞춘 과정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고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도가 완전한 장점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진정 좋은 아이디어란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요월드컵│소녀시대, 시크릿, 애프터스쿨, 이효리 전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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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따라한 음악이 좋니?’(‘Bring it back’) 이 문장은 이효리의 앨범 < h.logic >에 수록된 가사다. 이건 신기한 일이다. 가수로서 이효리는 해외의 트렌드를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전달할 때 가장 큰 파괴력을 가졌다. 이효리는 ‘10minutes’로 클럽튠의 음악이 포장마차에서도 울리게 했고, 여성들의 트렌드를 이끄는 ‘유고걸’이다. 물론 < h.logic > 역시 여러 트렌드의 집합이다. ‘Chitty chitty bang bang’의 뮤직비디오에는 리안나와 레이디 가가 등을 연상시키는 여러 패션 트렌드가 겹쳐져 있고, 전자음으로 강한 파열음을 내는 힙합 사운드 속에서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로 몰아치는 곡의 초반은 ‘후크송’이 아닌 강렬한 사운드로 초반부터 듣는 이를 몰아붙이는 요즘 댄스음악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이효리 자신이 있다. 이효리는 이제 ‘Bring it back’처럼 애프터스쿨과 포미닛의 멤버들을 거느리고 노래하는 업계의 거물이다. 음악성과 별개로, 이효리가 이룬 대중적인 성과는 ‘강한 여성’ 콘셉트를 들고 나온 어떤 여성그룹들보다 ‘여기까지 혼자 왔어 나’라고 외치는 그의 외침에 동의하게 만든다. 이효리가 ‘100 percent’에서 ‘이젠 100percent 진짜가 된 것 같은 느낌이야’라고 노래한 것은 진심일 것이다. 이효리는 대중음악 트렌드의 한가운데에서 트렌드와 자기 자신이 서로를 설명하는 묘한 지점에 도달했다. 그건 상품이, 혹은 광대가 그 자체로 자의식을 가지는 기이한 사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딜레마의 시작이다. ‘Chitty chitty bang bang’의 뮤직비디오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효리의 춤과 이미지 컷만을 나열한다. 노래역시 1절부터는 곡 초반의 강렬함을 이어가지 못한 채 일반적인 가요 멜로디 구성에 의존한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Love sign’처럼 다양한 감정과 같은 톤을 들려줘야 하는 노래에서도 한 가지 톤으로 일관하고, 곡 중간에 운전 동작을 춤으로 표현한 안무는 걸그룹 후배들이 갑자기 다리를 찢는 춤까지 추는 마당에 그리 놀랍지 않고, 동작 역시 뻣뻣하다. 이효리는 < h.logic >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했으되, 그것이 얼마나 새롭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지 못했다. 10년 동안 온갖 ‘Scandal’을 겪으면서도 ‘Chitty chitty bang bang’하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 다음은? 아슬아슬한 이효리의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글. 강명석 two@
글. 위근우 eight@
글. 윤희성 nin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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