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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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과 연극의 만남, ‘감독, 무대로 오다’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연극 의 프레스콜이 지난 9일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열렸다. 영화 , 등의 작품으로 특유의 서정미를 그리는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연극 은 박민규의 동명 단편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 수줍음 많던 소년 영진과 만인의 별이었던 소녀 이선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황혼의 로맨스를 그려낸다. 은 허진호 감독의 연극연출 외에도 한영진 역에 이영하, 김창완, 오광록이, 소년 영진 역에 슈퍼주니어의 기범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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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영진(김기범·이주승)은 친구를 따라 여고 앞을 서성이다 소녀 이선(이세나·박하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영진은 비오는 날 이선에게 우산 하나 건네는 것도 서툴다. 세월이 훌쩍 흘러 영진(이영하·김창완·오광록)과 이선(서지영·이항나)은 고향의 한 요양원에서 재회한다. 수줍던 소년은 요실금과 당뇨, 심근경색을 앓고 있고, 하늘 위 별이었던 소녀는 치매를 앓는 중이다. 어수룩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느리고 잔잔히 펼쳐진다. 은 영진과 이선의 로맨스를 통해 ‘같이 있어준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 느리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행복과 잃어버린 서정성을 이야기한다. 1월 26일 시작한 연극 은 3월 28일까지 삼성동에 위치한 백암아트홀에서 계속된다. 다음은 “초짜” 연극연출가 허진호 감독과 “육십이 죽을 나이인가, 아직 청춘이다”며 팔딱이는 심장을 자랑하는 한영진들의 공동 인터뷰 내용이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 으로 영화가 아닌 새로운 장르의 연출을 맡았다. 연극작업을 해보니 어떤가.
허진호 감독 : 그동안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지도 않았고, 연극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해본적도 없어 완전 초짜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새로운 장르에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였다. 실제 작업을 해보니 영화도 물론 그렇지만 연극은 스태프와 배우들 간의 호흡이 더욱 중요했다. 작업하면서 소위 전우애 같은 것도 생긴 것 같고. (웃음) 매일 스태프, 배우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많이 했다. 영화에 비해 모두가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했고, 그런 부분에서의 행복감을 많이 느꼈다.

“생애 마지막 따뜻한 손 하나면 충분하다”
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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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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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한영진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연을 하면서 떠오르던 인물들이 있었나.
이영하 : 모두에게나 첫사랑이 있듯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고 공연을 하면 생각이 난다. 특히 그동안 나의 삶이 한영진과 걸맞은 삶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 나의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 극에 등장하는 소년 영진과 이선을 통해 나의 첫사랑도 떠올리고 찾아봐야겠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주변에서 모두 말리더라. (웃음) 다시 만나는 건 아니 본만 못하다고. 그래서 그냥 가슴속에만 간직하기로 했다.
김창완 : 첫사랑 생각을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이 작품을 통해 희미해져가는 첫사랑을 되살려보고 싶다.
오광록 : 초등학교 4학년 때 짝사랑한 아이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먼지 낀 길섶에는 풀들이 있고, 개울이 흐르는 길을 거닐며 소녀의 이름을 부르던 기억이 난다.

영진 역을 맡은 세 분은 영진과 비슷한 연령대다. 만약 요양원에 홀로 있는 영진과 같은 상황이라면 가족을 제외하고 마지막에 누구를 만나고 싶나.
김창완 : 영진은 마지막을 그의 첫사랑이 지켜주고 있지만,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구원의 의미로 다가오는 첫사랑보다는 따뜻한 손 하나면 되겠다 싶다. 그 손이 노파의 손이든 호스피스의 손이든 어린아이의 손이든 차가운 내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손 하나를 간절히 바랄 것 같다.
이영하 : 나는 작품 속 영진처럼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 황혼의 로맨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라면 좋겠다.
오광록 : 그간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동을 참 많이 다녔었다. 김창완 씨의 얘기가 참 많이 와 닿는다. 을 하면서 상심과 귀찮음 속에서 풋사랑을 만나는 꿈도 꾸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의 로맨스도 상상해본다. 마지막이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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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의 기범은 으로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데,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나.
김기범 : 태어나서 처음 도전하는 연극인만큼, 대본을 받았을 때 두려움이 컸다. 허진호 감독님처럼 연극을 배워본적도 특별히 즐겨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님의 연출하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감독님도 나도 처음이니까 같이 해나가면 재밌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중이다.

소년 영진과 자아 영진을 맡았다. 두 캐릭터는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인 셈인데.
김기범 : 소년시절의 영진과 현재 영진의 자아를 맡고 있다. 소년 영진은 그의 어릴 적 풋풋함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자아 영진은 친구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마음속에서 영진을 이끌어주는 수호천사로 설정하고 연기하고 있다.

“소설에 비해 동필의 비중을 늘리며 우정에도 초점을 맞췄다”
연극 <낮잠>│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무대 위에 펼쳐지는 호우시절" /> 박민규의 단편소설 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허진호 감독 : 연출제의를 받기 전에 을 봤는데, 재밌게 읽었었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참 좋았었다. 그래서 원작에 충실하려 많이 노력을 했지만 연극무대에 올리며 영진의 자아를 만들었다.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젊었을 때를 떠올릴 수 있고, ‘너 왜 이렇게 변했니’ 처럼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런 대화를 자아의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원작과 다르게 가져가려 했다. 또 달라진 점은 영진과 이선의 친구인 동필인데, 소설에서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닌데 연극으로 오면서 훨씬 더 가까워진 인물로 설정해 우정에도 초점을 맞췄다.

을 공연하면서 각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영하 : 오래전에 읽었던 가 떠올랐다. 황혼의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으로 하게 됐다. 작품을 하면서 앞으로의 삶이라는 게 여기에 적응하고 순응하기 보다는 남은 삶을 더욱 힘차게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김창완 : 은 최근 스스로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글로도 접해보지 못한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연습과 실제 공연까지 서너 달에 걸쳐 긴 책 한 권을 읽은 듯 한 기분이다.
오광록 : 이제는 나이 들어 요양원에까지 온 한 사내가 자신의 마음 속 별이 된 여인을 만난다. 은 그들의 만남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풋풋한 설렘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허진호 감독 : 연습이 다 끝나면 항상 막걸리를 마시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어떤 이야기인가에 대해 토론을 했던 게 기억난다. 행복한 작업들이었다. 이 나이든 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젊은 관객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첫사랑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관객들이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웃음)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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