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은 흔치 않은 배우다. 단순히 탁월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뜻만은 아니다. 그는 분명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선배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박수칠 때 떠나라>에선 주연배우였던 차승원 이상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그저 연기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신하균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종종 그의 실패작으로 거론되는 <서프라이즈>나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의 어색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하균은 대중적 네임밸류와는 별개로 독특한 B급 정서에 어울린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배우다.
아직까지도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이라는 외피 안에 사회적 약자의 반격을 담아낸 수작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한국형 스플래터 무비이기도 하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리미로 강 사장(백윤식)의 가슴을 지지고, 이태리타월로 발등을 벗겨낸 다음에 물파스를 바르는 장면은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그 상황에서 외계인 음모론을 늘어놓는 병구의 모습은 단순히 잔인함으로 환원할 수 없는 코믹함과 처연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예의 없는 것들>의 경우 비록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그다지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가 연기한 킬라는 세상의 예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노와 혀가 짧아 말을 하지 않는 콤플렉스의 불균일한 성격이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얼마 전 박찬욱의 <박쥐>에서 보여준 병약함과 마초적 성격이 공존하는 강우의 모습을 떠올리면 다시 한 번 그가 얼마나 기괴한 인물을 잘 연기하는지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피가 튀기고 살이 찢어지는 스플래터 무비를 즐겨본다는 그의 취향은 의외가 아니다.
다음은 배우 신하균이 추천하는 잔혹하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스며있는 영화들이다. 매끈하진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이 느껴지는 이들 영화의 B급 정서를 통해 기괴한 인물에서 최대치의 연기를 보여준 신하균의 비밀을 읽어낼 어떤 열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이치 더 킬러> (Ichi The Killer)
2001년 │ 미이케 다카시
“<고로시야 이치>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요. 잔인함만 강조된 만화책보다는 키치적인 유머가 느껴지는 영화가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스플래터 무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기니어 피그>처럼 그저 잔인하기만 한 영화는 싫거든요. 킬러인 이치가 발차기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나 야쿠자인 카키하라가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는 모습은 물론 잔인하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을 TV에 우겨넣거나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기괴한 인물들의 모습에는 웃음이 나와요.”
킬러인 이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한 카키하라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킬러 이치에게 보스를 잃은 카키하라가 범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이치의 정체와 과거가 드러나고 결국 두 사람이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구성이다. 선량한 표정의 이치를 연기한 오모리 나오도 베스트 캐스팅이지만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한 채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송곳으로 고문하며 쾌감을 느끼는 타다노부의 사도마조히즘 연기는 가히 발군이다.
2.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Gozu)
2003년 │ 미이케 다카시
“이것도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에요. 아마 보기 불편한 것만으로 따지면 이 영화가 더할지도 모르겠어요. 특유의 정신없는 스토리 진행은 물론이고 엉덩이에 국자를 꽂은 변태적인 야쿠자 두목이나 얼굴 반쪽이 하얀 인물을 비롯해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나오거든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떤 장면이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지만 이런 두서없는 사건의 연속 자체를 크게 따지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인 거 같아요.”
<오디션>을 통해 신체절단을 극도의 공포로 연결시킨바 있던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은 갈수록 정제되지 않은 컬트적 감수성으로 흐르는 듯하다. <극도공포대극장 우두>는 그 흐름의 가장 극단에 있는 작품으로 행방불명된 야쿠자 부두목 오자키를 죽이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겪는 황당한 일들을 그린다. 어떤 맥락도 제거된 채 등장하는 기괴한 인물과 사건들은 이 영화의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지만 쉬지 않고 몰아치는 사건의 연속에선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3. <고무인간의 최후> (Bad Taste)
1987년 │ 피터 잭슨
“장면 하나하나를 따지면 이것도 참 잔인하죠. 권총을 맞아 머리가 날아간 사람이 뇌를 쏟는 장면 같은 거요. 그런데 그런 장면도 뭔가 키치적인 느낌으로 연출이 되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지점이 있어요. 지구를 정복하러 온 외계인들의 모습도 뭔가 어설프고요. 그런 B급 특유의 정서가 참 좋아요. 내용 자체가 어떻게 보면 황당무계하잖아요. 외계인이 지구인을 해코지한다기보다는 외계인을 지구인 몇이서 학살한다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에야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으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 피터 잭슨이지만 그에게 영화적 명성을 안겨준 것은 기괴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스플래터 무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데뷔작인 <고무인간의 최후>는 휴일에 동네친구들과 짬짬이 찍어 완성한 작품으로 엉성한 연기와 조악한 분장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의 뇌를 자신의 머리에 넣고 벨트로 동여매는 장면처럼 독특한 상상력이 큰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4. <데드 얼라이브> (Dead Alive)
1992년 │ 피터 잭슨
“계속 얘기하는 거지만 전 그냥 잔인하기만 한 영화는 싫어요. 잔인하더라도 그 이후에 웃음으로 정화할 때 그 잔인함이 매력 있게 느껴지거든요. 마치 회를 먹고 난 다음에 생강초절임으로 입안을 헹구는 것처럼 말이죠.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과정은 입이 찢어지고 몸이 뚫리는 등 정말 징그럽지만 그 이후에 서로 눈이 맞고 아기 좀비까지 낳는 모습을 보면 그 잔인함을 잊게 되요. 그저 신체를 훼손하기만 하는 스플래터 무비가 배워야 될 점이죠.”
이제는 같이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 샘 레이미의 대표작 <이블데드>가 전기톱으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면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는 잔디 깎기 기계로 피의 홍수를 만들었다. 3000리터가 넘는 가짜 피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하지만 그저 피 튀기는 잔인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피에 미끄러져 제자리걸음하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코믹한 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식을 소유하려 하는 어머니의 집착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양한 풍부한 해석의 맥락을 가진 작품이다.
5. <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년 │ 데이빗 크로넨버그
“이건 앞서 말한 영화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네요. 코믹하다기보다는 좀 심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니까.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 역시 단순히 배에 구멍이 뚫리고 총과 손이 결합하는 기괴한 분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컬트적 감수성이 있어요. 가령 주인공이 TV 화면 속의 입술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며 황홀경에 빠지는 장면 같은 건 한편으론 섬뜩하면서 한편으론 굉장히 유혹적이죠. 어릴 적에 비디오로 본 영화인데도 아직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담은 인상적 장면 때문이겠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파리의 결합(<플라이>), 육체와 생체형 게임기의 결합(<엑시스텐즈>) 같은 하이브리드 이미지를 통해 과학기술의 위협을 은유해왔다. 주인공 맥스(제임스 우즈)가 뱃속에 비디오테이프를 넣거나 총과 손이 결합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비밀 신호가 있는 비디오드롬에 의해 환각에 빠진 맥스가 겪는 일들과 기계와의 결합은 단순히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미디어에 정신을 잠식당하는 현대인들 전체를 표현한다.
사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에게 메인스트림의 정형화된 연기보단 비주류 스타일이 어울린다는 것은 일종의 약점일수도 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더 잘 뛰어놀 수 있는 장르가 별로 없는 것이 한국 영화의 약점이다. B급 영화의 상상력을 좋아하고 본인 역시 비주류적인 감성의 영화에서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신하균 같은 배우가 특유의 불균일한 정서를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영화들이 더 많아질 때 콘텐츠의 종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현재 신하균의 복귀 예정작은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다. 비록 스크린을 통한 복귀는 아니지만 주인공 오복규가 물려받은 유산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이 벌이는 코믹하면서도 스릴러적인 작품이라는 면에서 다시 한 번 신하균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기대해볼만하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아직까지도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이라는 외피 안에 사회적 약자의 반격을 담아낸 수작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한국형 스플래터 무비이기도 하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리미로 강 사장(백윤식)의 가슴을 지지고, 이태리타월로 발등을 벗겨낸 다음에 물파스를 바르는 장면은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그 상황에서 외계인 음모론을 늘어놓는 병구의 모습은 단순히 잔인함으로 환원할 수 없는 코믹함과 처연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예의 없는 것들>의 경우 비록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그다지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가 연기한 킬라는 세상의 예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노와 혀가 짧아 말을 하지 않는 콤플렉스의 불균일한 성격이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얼마 전 박찬욱의 <박쥐>에서 보여준 병약함과 마초적 성격이 공존하는 강우의 모습을 떠올리면 다시 한 번 그가 얼마나 기괴한 인물을 잘 연기하는지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피가 튀기고 살이 찢어지는 스플래터 무비를 즐겨본다는 그의 취향은 의외가 아니다.
다음은 배우 신하균이 추천하는 잔혹하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스며있는 영화들이다. 매끈하진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이 느껴지는 이들 영화의 B급 정서를 통해 기괴한 인물에서 최대치의 연기를 보여준 신하균의 비밀을 읽어낼 어떤 열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이치 더 킬러> (Ichi The Killer)
2001년 │ 미이케 다카시
“<고로시야 이치>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요. 잔인함만 강조된 만화책보다는 키치적인 유머가 느껴지는 영화가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스플래터 무비를 좋아하긴 하지만 <기니어 피그>처럼 그저 잔인하기만 한 영화는 싫거든요. 킬러인 이치가 발차기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나 야쿠자인 카키하라가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는 모습은 물론 잔인하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을 TV에 우겨넣거나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기괴한 인물들의 모습에는 웃음이 나와요.”
킬러인 이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한 카키하라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킬러 이치에게 보스를 잃은 카키하라가 범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이치의 정체와 과거가 드러나고 결국 두 사람이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구성이다. 선량한 표정의 이치를 연기한 오모리 나오도 베스트 캐스팅이지만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한 채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송곳으로 고문하며 쾌감을 느끼는 타다노부의 사도마조히즘 연기는 가히 발군이다.
2.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Gozu)
2003년 │ 미이케 다카시
“이것도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에요. 아마 보기 불편한 것만으로 따지면 이 영화가 더할지도 모르겠어요. 특유의 정신없는 스토리 진행은 물론이고 엉덩이에 국자를 꽂은 변태적인 야쿠자 두목이나 얼굴 반쪽이 하얀 인물을 비롯해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쉴 새 없이 나오거든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떤 장면이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말하긴 좀 어렵지만 이런 두서없는 사건의 연속 자체를 크게 따지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인 거 같아요.”
<오디션>을 통해 신체절단을 극도의 공포로 연결시킨바 있던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은 갈수록 정제되지 않은 컬트적 감수성으로 흐르는 듯하다. <극도공포대극장 우두>는 그 흐름의 가장 극단에 있는 작품으로 행방불명된 야쿠자 부두목 오자키를 죽이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겪는 황당한 일들을 그린다. 어떤 맥락도 제거된 채 등장하는 기괴한 인물과 사건들은 이 영화의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지만 쉬지 않고 몰아치는 사건의 연속에선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3. <고무인간의 최후> (Bad Taste)
1987년 │ 피터 잭슨
“장면 하나하나를 따지면 이것도 참 잔인하죠. 권총을 맞아 머리가 날아간 사람이 뇌를 쏟는 장면 같은 거요. 그런데 그런 장면도 뭔가 키치적인 느낌으로 연출이 되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지점이 있어요. 지구를 정복하러 온 외계인들의 모습도 뭔가 어설프고요. 그런 B급 특유의 정서가 참 좋아요. 내용 자체가 어떻게 보면 황당무계하잖아요. 외계인이 지구인을 해코지한다기보다는 외계인을 지구인 몇이서 학살한다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에야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콩>으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 피터 잭슨이지만 그에게 영화적 명성을 안겨준 것은 기괴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스플래터 무비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데뷔작인 <고무인간의 최후>는 휴일에 동네친구들과 짬짬이 찍어 완성한 작품으로 엉성한 연기와 조악한 분장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의 뇌를 자신의 머리에 넣고 벨트로 동여매는 장면처럼 독특한 상상력이 큰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4. <데드 얼라이브> (Dead Alive)
1992년 │ 피터 잭슨
“계속 얘기하는 거지만 전 그냥 잔인하기만 한 영화는 싫어요. 잔인하더라도 그 이후에 웃음으로 정화할 때 그 잔인함이 매력 있게 느껴지거든요. 마치 회를 먹고 난 다음에 생강초절임으로 입안을 헹구는 것처럼 말이죠.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과정은 입이 찢어지고 몸이 뚫리는 등 정말 징그럽지만 그 이후에 서로 눈이 맞고 아기 좀비까지 낳는 모습을 보면 그 잔인함을 잊게 되요. 그저 신체를 훼손하기만 하는 스플래터 무비가 배워야 될 점이죠.”
이제는 같이 블록버스터 감독이 된 샘 레이미의 대표작 <이블데드>가 전기톱으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면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는 잔디 깎기 기계로 피의 홍수를 만들었다. 3000리터가 넘는 가짜 피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하지만 그저 피 튀기는 잔인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피에 미끄러져 제자리걸음하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코믹한 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식을 소유하려 하는 어머니의 집착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양한 풍부한 해석의 맥락을 가진 작품이다.
5. <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년 │ 데이빗 크로넨버그
“이건 앞서 말한 영화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네요. 코믹하다기보다는 좀 심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니까.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 역시 단순히 배에 구멍이 뚫리고 총과 손이 결합하는 기괴한 분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컬트적 감수성이 있어요. 가령 주인공이 TV 화면 속의 입술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며 황홀경에 빠지는 장면 같은 건 한편으론 섬뜩하면서 한편으론 굉장히 유혹적이죠. 어릴 적에 비디오로 본 영화인데도 아직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담은 인상적 장면 때문이겠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파리의 결합(<플라이>), 육체와 생체형 게임기의 결합(<엑시스텐즈>) 같은 하이브리드 이미지를 통해 과학기술의 위협을 은유해왔다. 주인공 맥스(제임스 우즈)가 뱃속에 비디오테이프를 넣거나 총과 손이 결합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비밀 신호가 있는 비디오드롬에 의해 환각에 빠진 맥스가 겪는 일들과 기계와의 결합은 단순히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미디어에 정신을 잠식당하는 현대인들 전체를 표현한다.
사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타에게 메인스트림의 정형화된 연기보단 비주류 스타일이 어울린다는 것은 일종의 약점일수도 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더 잘 뛰어놀 수 있는 장르가 별로 없는 것이 한국 영화의 약점이다. B급 영화의 상상력을 좋아하고 본인 역시 비주류적인 감성의 영화에서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신하균 같은 배우가 특유의 불균일한 정서를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영화들이 더 많아질 때 콘텐츠의 종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현재 신하균의 복귀 예정작은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다. 비록 스크린을 통한 복귀는 아니지만 주인공 오복규가 물려받은 유산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이 벌이는 코믹하면서도 스릴러적인 작품이라는 면에서 다시 한 번 신하균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기대해볼만하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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