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1년을 기준으로 크게 변화한다. 제작자들은 그간 공공연하게 불법 복제되어 온 해외 유명 뮤지컬의 정확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을 참여시켰으며, ‘라이선스’라는 합법적인 이름의 옷을 입혀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다. 이 모든 사안의 중심엔 200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와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성악-연기-안무까지 두루 섭렵한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예술가가 사업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또 하면 잘한다”는 그의 사업성적표는 <오페라의 유령> 이후 ‘거품’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성장한 뮤지컬 시장이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그 사이 <캣츠>, <뷰티풀 게임>, <아이러브유> 등 크고 작은 뮤지컬을 제작해왔던 설도윤 대표가 다시 그의 야심작 <오페라의 유령>을 들고 나타났다. 설도윤 대표를 8년만의 재공연을 이틀 앞두고 설앤컴퍼니에서 만났다.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젊어 보이는 그와 나눈 대화는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속도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에서부터 현재 뮤지컬 시장의 문제점을 따끔히 꼬집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이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오프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설도윤
: 15일 최종 드레스 리허설부터 현재까지 모든 프리뷰 공연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술적인 문제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몇몇 문제들이 발견됐다. 특히 라울 역을 맡은 홍광호는 본인이 가진 소리에 비해 중창에서 소리가 많이 묻힌다. 중창 같은 경우엔 워낙 개개인이 다른 얘기를 한꺼번에 하기 때문에 어떤 음향이든 제대로 잡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1막 8장의 ‘프리마돈나’ 신에서는 크리스틴에게 모든 것을 넘겨야 하는 칼롯타의 분노와 극장주 피르맹과 앙드레의 설득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함께 등장하는 라울의 목소리를 살짝 낮추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라울은 그 순간 중요한 얘기가 한마디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라울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의 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웃음)

“내년 1월,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팬텀을 만날 수 있다”

라울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다 있지 않나. (웃음) 작품 자체도 화제지만 양준모, 홍광호, 정상윤 등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들의 출연으로도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8년 전과 달리 이번 오디션에는 1,000여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던데.
설도윤
: 8년 전에 정말 딱 맞는 사람이 없어 너무 어렵게 뽑았다면, 이번에는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골라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1,000명이라는 숫자가 적게 들릴지 몰라도, 일반 뮤지컬의 1,000명과 <오페라의 유령>의 1,000명은 질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아예 오디션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뮤지컬배우는 다 봤다고 보면 된다.

각각의 배우들은 어떻게 선발되었나.
설도윤
: 오디션 때는 더블캐스트를 염두에 두고 4배수, 각 파트별 최종 8명씩을 물망에 올려놓는다. 각 배역을 연기하기에 모두들 부족함이 없지만 사실 순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당시에는 순위가 낮았으나 마지막에 뒤집힌 경우도 있다. 그리고 팬텀의 경우 정말 간발의 차로 떨어진 사람들은 커버로 다른 배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홍광호는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5월에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 홍광호를 내년 1월에는 팬텀으로 무대에 올린다고 공표했다. 그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많은 이들이 팬텀을 40대에 해야 되는 역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홍광호는 아직 스물여덟이다.
설도윤
: 개인적으로 조승우만큼 홍광호를 좋아하는데, 사실 그의 인지도는 실력에 비해 굉장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팬텀으로 도전해보자 생각했다. 오디션 당시 팬텀감이지만 너무 어려서 힘들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팬텀으로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년 1월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팬텀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도 수긍을 했다.

그리고 올해 크리스틴 역을 거머쥔 최현주는 일본 극단 사계에서 건너온 배우이다. 8년 전 성악을 전공했던 김소현의 등장만큼이나 놀랍다.
설도윤
: 최현주는 일본에서 이미 <오페라의 유령>을 하고 있었고, 고국에서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 배역은 사계에서 커버를 포함해 총 3명의 크리스틴이 왔고, 실제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성악가들도 많아 굉장히 치열했다.

새로운 얼굴 외 윤영석, 김소현, 윤이나, 서영주 등 초연멤버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설도윤
: 오디션 탈락 유무를 떠나 초연배우들은 특별히 관리상 문제가 없다면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에서 시작하자마자 새로운 배우들의 좋은 소리를 듣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초연배우를 안정적으로 배치하고, 실력 있는 뉴페이스를 함께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7개월간 진행했던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특별히 장기공연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설도윤
: 우선 40피트짜리 트레일러 20대 분량의 무대장치를 무대에 구겨넣는데만 한 달이 걸린다. 그리고 리허설을 맞춰보는데 또 한달. 기본적으로 극장에 200여명의 사람들이 투입되고 제작비가 240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초연 때도 초반 5개월은 사전제작비와 운영비를 맞추는데 정신이 없었고, 나머지 2개월의 공연으로 수익을 만들어 낸 거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 7개월은 공연을 해야 된다. 특히 올해 공연되는 샤롯데 씨어터는 1,000석 규모이기 때문에 더 장기공연을 해야 한다.

“흥행만을 위한 스타 캐스팅은 정말 문제다”

뮤지컬시장 변화에 크게 일조한 것이 바로 2001년의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현재 흥행이 되는 작품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는 작품 수는 해마다 수없이 늘어나는 등 ‘거품론’도 많다. 작품이 늘어나면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나 무대 경험이 적은 스타들이 출연하기도 하는데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설도윤
: 아이돌 멤버 같은 경우엔 타겟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스타 출연 자체가 아닌, 자격이 미달되는 스타를 기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아야 한다. 그 배역에 맞지 않는, 흥행만을 위한 캐스팅이라면 정말 문제다. 그건 제작자의 양심이고, 100% 제작자가 책임져야 된다. 물론 사전에 진단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다들 자각해야 된다. 그리고 공연의 거품만큼이나 관객의 거품도 많다. ‘2009년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해도 막상 뚜껑을 열면 안 본다. 아직 전반적인 저변확대가 덜 됐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제작자와 관객들 역시 그만큼 많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지나가는 과정이니 거기까진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타겟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많은 주요 배역들을 스타와 아이돌 멤버들이 맡고 있다. 일반 뮤지컬배우와 스타의 차이는 실력과 인지도뿐인데, 인지도 때문에 여러 배역에서 스타들에게 밀리는 것 같다.
설도윤
: 상대적으로 팬들이 갖는 불쾌감은 100% 이해한다. 개인적으로도 <오페라의 유령>에 조승우가 팬텀을 한다고 생각하면 10개월이 편할거다. 물론 물리적으로 지금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선배고 프로듀서 리더인 만큼 뮤지컬 배우들을 더 좋은 배우로, 스타로 만들어야 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오페라의 유령> 같은 좋은 작품들을 통해 그들이 실력이나 인지도 측면에서 더욱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돌 기용과 관련해서는 빅뱅의 승리가 출연한 뮤지컬 <샤우팅> 얘기를 빼지 않을 수 없다. 오픈이 되고 보니 지극히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를 위한 쇼였다.
설도윤
: 솔직히 얘기하자면 <샤우팅>은 YG에 맞춰 충실히 만들어진 목적 사업극, 콘셉트뮤지컬이었다. 체육관에서 2회, 전국투어 단 하루짜리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공연이기 때문에 내용이 많지 않고 쇼적인 부분이 부각된 공연이다. 그래서 당연히 대성, 승리가 안 나오는 <샤우팅>은 있을 수 없고, 다음에 한다면 또 다른 스타가 나와야지만 가능한 뮤지컬이다. 그래서 함부로 공연될 수 없는, (웃음) YG가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런 목적성 때문에 개인적 바람도 콘서트를 보는 관객들의 유입, 그게 전부였다.

스스로도 얘기했듯 대성과 승리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지극히 빅뱅에 맞춰 만들어진 극이었지만 공연 오픈 하루 전, 대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설도윤
: 승리는 정말 아이돌 스타지만, 대성이는 굉장히 팬 층이 넓었다. 사실 사고로 인해 환불표가 많은 걸 보고 대성이의 에너지와 힘을 느꼈다. 그런데 그걸 승리가 또 다 끌고 나가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앞으로 <샤우팅>은 어떻게 진행되나.
설도윤
: <샤우팅>은 YG에 있는 모든 스타들이 출연할 수 있는 목적극이다. 앞으로도 이 목적에만 맞도록 할 것이다. 더 개발할 부분은 체육관으로 갔을 때 대사를 얼마나 더 함축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가와 쇼적인 부분을 어떻게 더욱 부각시킬까 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올 연말에 한번 할지도 모르겠다.

“브로드웨이에서 창작을 준비하고 있다”

성악을 전공하고, 연극과 뮤지컬을 했고, KBS와 SBS에서 안무를 담당하는 등 창작을 주로 하던 사람이었는데 현재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뮤지컬 시장 자체가 부상하면서 이쪽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적다.
설도윤
: 공연기획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고, 있어도 굉장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고 있다. 가장 필요한 건 예술적 마인드를 더 가지는 것이다. 예술이 아닌 다른 파트에 있었다면 예술적 체험을 최대한 많이 하고, 그쪽 일에 관계를 많이 갖고 프로듀서를 하는 것이 좋다.

최근엔 뮤지컬 프로듀싱 뿐 아니라 SK와 함께하는 취약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해피뮤지컬스쿨 같은 사회공헌사업에도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
설도윤
: SK텔레콤과 함께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목표가 있다면 SK가 더 많이 투자해서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한 번씩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웃음) 지금 정부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프로그램은 화가 날 정도로 진정성이 없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많은 예술인들도 일회성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SK와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생각이고, 이러한 예술적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까지 할 예정이다. 그래서 지난 6월 사회적기업인 유니버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그들의 일부를 <오페라의 유령>에 투입시킨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에서 내가 할 역할은 우리의 재능을 사회 환원함으로서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본업은 프로듀서다. 지난 9월 9일 뉴욕에서는 <천국의 눈물>(Tears of Heaven) 2차 워크숍이 열렸다. 엠넷미디어의 김광수 대표와 함께 작업 중인 <천국의 눈물>은 어떤 작품인가.
설도윤
: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인이 현지에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는 미국에서 성공을 하게 되고, 운명적으로 다시 한국인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미 1년 전에 대본이 완성되었고, 5월 1일에는 브래드 리틀이 출연한 1차 워크숍을 가졌다. 그리고 리틀이 현재 <지킬앤하이드>를 서울에서 공연 중이라 2차 워크숍 때는 브로드웨이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하는 팬텀을 보내서 공연을 가졌다. 현지 프로덕션과 극장주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거의 3년 만에 막이 오르는 셈이다. 너무 고마웠던 부분은 이 작품을 하게 된다면 브래드 리틀이 모든 스케줄을 빼고 출연해준다고 약속한 점이다.

<천국의 눈물>은 결국 한국의 프로듀서가 만드는 창작뮤지컬이다. 국내에서도 할 수 있는 창작 작업을 왜 굳이 해외에서 하는 것인가.
설도윤
: 목표가 브로드웨이를 가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제작할 수가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려면 그쪽 스태프들이 아니면 어렵다. 미안하지만 최소 10년 안에는 우리가 만들어서는 죽었다 깨도 못 간다. 세계관객이 원하는 음악과 드라마, 가사가 한국에는 아직 없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에서 만드는 게 낫다. 우리나라에서 작품 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노력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요구사항이 브로드웨이 크리에이티브만큼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에서도 안 쓰는 경우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들 자제하고 작품에 좀 더 열중하면 좋겠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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